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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un 05. 2023

뉴질랜드 이민 서러움에 울고 싶은 날

꼭 그런 날이 있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 날, 오늘 하루가 왠지 길어질 것 같은 그런 날.


아침부터 목이 칼칼해서 차 한잔을 마신다. 


어김없이 아주 잠깐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싱크대가 역류하고 있다.


한숨부터 터진다. 오늘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겨우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출발하려는 데


아이들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하태평이다.


아주 깽깽이발로 곡예 중이다. 



그런데 계기판에 이상한 게 떠있다.


(이게 무슨 표시지? 에어백인가?)


예전부터 떠있던 건지 갑자기 생긴 건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워셔액도 다 되었나 보다.



이런 날은 누군가 나에게 온갖 장애물을 걸어 놓고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것만 같다.


꼭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나는 기계치다.


운전석에만 앉으면 자신감은 사라지고 풀 죽은 강아지 마냥 낑낑 댄다.


길치, 방향치, 기계치.


운전대만 잡으면 바보가 된 느낌이다.



장롱면허만 20년,


뉴질랜드는 똥 손인 나에게 온갖 첫 경험을 선사했다.


(그 첫 경험 말고요 ㅋㅋㅋㅋ 나만 음탕한가요? ㅋㅋㅋ)



장롱면허 탈출은 물론이요.


톱질도 하고,


경첩도 달고,


비가 오면 하수구가 막힐까 마당도 쓸고 낙엽도 정리한다.



우리 집엔 4개의 시한폭탄이 산다.


얼마 전에는 자전거를 타다가 창고 벽을 부수더니,


지난주에는 문이 덜렁덜렁 고장이 났다.


사람을 부를 때마다 돈은 잘도 센다.


100불, 200불.


버는 건 힘들어도 쓰는 건 순간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보다 두려운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아이들이 아픈 거다.


아이들이 아프면 모든 일상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는다.


날씨가 좋아 오늘은 밖에서 도시락을 먹었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3호가 고열이 난다는 것이다.


급하게 학교로 향한다. 마음은 벌써 타들어만 간다.



서둘러 아이를 차에 태운다.


얼마나 급하게 내렸는지 창문을 닫는 것도 깜빡했다.


집으로 와 아이에게 해열제를 주고 옷을 갈아입힌다.


미지근한 물을 수건에 적셔 정성스럽게 몸을 닦아준다.


아픈 아이를 보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스친다.



아기들이 아플 때마다 처참하게 무너졌던 일상.


아기들은 꼭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이 아팠다.


노로 바이러스가 유행이었을 때


여기저기서 뿜어 나오는 토를 받아내느라


토사물로 온몸이 젖은 채 응급실로 달려갔다.


뜨거운 아이들의 이마, 계속되는 분수토,



병원에 자리는 없지, 졸린 아기들은 칭얼대지.


긴 기다림 끝에 가녀린 아기 몸으로 들어가는 그 주삿바늘은 또 얼마나 야속하던지.


아침이 다 돼서야 도착한 집은 여기저기 토밭이 되었고,


토로 얼룩진 이불들을 빨래하고 정리하느라 이틀은 자지 못했다.




제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러나 이 간절한 바람은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꼭꼭 숨어버린다.



그리곤 욕심이 하나 둘 시작된다.


남들만큼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리더십도 있고, 스스로 잘하고, 말도 잘 듣는,


나는 어느새 완벽한 아이를 원한다.


그리고 건강은 깨어지면 안 될 당연한 것이 되어있다.



잠든 아이를 확인하고 막힌 싱크대에 뚫어뻥 용액을 넣는다.


그런데 이번엔 독한 놈인가 보다. 단단히 막혔는지 용액이 듣지 않는다.


용기 내서 파이프를 분리해 본다. 하나씩 분리해서 막힌 곳을 찾아 제거한다.


시원하게 내려가는 물줄기.


나는 이렇게 또 다른 첫 경험을 한다.



오후 세시가 훌쩍 넘었는데 아이들이 집에 오지 않는다.


걱정되는 마음에 차를 끌고 아이들을 찾으러 간다.


(해열제 먹고 열이 내린 3호도 같이 – 뉴질랜드는 만 13세 이하의 아이가 혼자 집에 있을 수 없답니다_


씩씩한 하게 걸어오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반갑게 아이들을 태웠다.



근처 주유소에 들러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한다.


차의 경고등이 타이어 공기압 때문이라는 글을 보았다.



(아악 터질 것 같다)


타이어가 빵 하고 터질 것만 같다.


짜릿하고 강렬한 첫 경험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워셔액을 넣는다.


분명 예전에 넣었던 기억이 있는데 보닛을 어떻게 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30분을 낑낑대다 겨우 버튼을 찾았는데,


이번엔 또 보닛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낑낑대고,


이번엔 또 워셔액 여는데 낑낑댄다.


결국 한 시간 만에 워셔액 넣기 성공이다.  



어느덧 지난했던 오늘 하루도 끝을 향해 간다.


그러나 나의 하루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열이 오르는 또 다른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밤새 번갈아가며 아이들의 체온을 잰다.



(새벽 2시)


(새벽 4시)


(새벽 6시)



어느덧 동이 텄다.


창문사이로 새벽녘의 어슴푸레한 빛이 고요한 물결을 일으킨다.


지난했던 하루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는 열심히 아빠 몫까지 해내고 있다.


조금 느려도, 답답해도,


나만의 속도로 걷고 있다.



느닷없이 이런 말이 떠오른다.


..... 뉴질랜드에는 홍길동이 살아있다.


https://youtu.be/dQXOUPuaO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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