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린 May 16. 2021

검정치마, 난 아니에요


이제 막 성인이 되어 20살이 되었을 때의 나는 무엇에 그리 쫓겨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내가 바랬던 어른이 된 - 아니, 어쩌면 어른으로 보이는 나이라는 숫자만을 채웠을 뿐 - 지금의 나는 다시, 이제 막 성인이 된 과거를 가끔 생각한다.




내 시대는 아직 나를 위한 준비조차 안된걸요



일상과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나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다이어리를 꺼내놓고 아무거나 끄적이곤 한다. 미처 다 기록하지 못하고 기억에 묻어둔 스케줄들과, 미루고 미루었던 해야 할 일들, 지나간 말과 시간들 속에 기록해두고 싶은 것들 등등. 그마저도 모두 끄적이고 나면 좋아하는 노래의 좋아하는 구절을 적거나,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보며 인상 깊었던 것들을 적는다. 그럼 마치 다이어리로 대변되는 나만의 공간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나의 것들을 모아 정리한 기분이 들어 편안해진다. 



비가 어정쩡하게 보슬보슬 내리던 날, 약속이 있을 때만 마음먹고 갔던 한남동에 무작정 가서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다이어리를 펼쳤다. 비가 오는 평일 오후, 세상은 구름과 빗방울로 흐릿했고 주말이면 매번 북적이던 한남동 거리도 꽤나 한적해 카페 안에도 제법 조용했다. 내가 그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거친 콘크리트 벽면에 커다랗게 뚫린 창문 때문인데, 그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한남동의 풍경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서울임에도 뻥 뚫린 시야로 하늘이 가득 들어오고, 그 가운데 롯데타워가 있다. 그 아래로 능선을 따라 각각의 지붕을 덮은 집들과, 높낮이가 모두 다른 건물들. 카페 안에서 그 창을 바라보고 있으면 창 너머의 서울이 문득 낯설고 생소해진다.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꺼진 불 속 조용한 관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주세요



나는 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이제는 제법 쌓인 몇 권이 다이어리에 그에 관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나. 애석하게도 나는 그 어린 시절의 내가 마땅히 어른이라 생각했던 서른을 목전에 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던, 아는 것도 없던 스무 살의 나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분명할 줄 알았던 것 같다. 한치의 흔들림이 없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완벽한 준비를 마친 내 시대. 나에게 어른이란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때의 내가 바랬던 어른일지도 모를 나이가 되고 보니 아무리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더라도 많은 것들이 혼란스럽고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나는 어른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왜 그때, 미래의 나에게만 질문을 던졌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소중하고 빛날 스무 살의 나에게 그때의 나는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았을까.




난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기 싫은걸요

그대 알잖아요, 우린 저들과는 너무 다른 것을.


난 배고프고 절박한 그런 예술가 아니에요.

내 시대는 아직 나를 위한 준비조차 안된 걸요.



서울에 올라와 대학을 다니고 회사에 취업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 내가 그토록 바랬던 어른이 되어가는 와중에 -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심지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 오기 위해 선택했던 대학과 전공, 난 아니에요, 라는 말을 하기가 무서워서 적성에 맞는 줄 알고 서둘러했던 취업과 버텨야만 했던 회사생활, 그 모든 것을 박차고 나왔을 때의 나는 스물일곱이었다. 


그저 가벼운 타인의 시선과 말, 언제고 스쳐 지나갈 인간관계들, 그저 보여지는 것을 위해 소비했던 나의 많은 것들. 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아닌 내 밖의 것들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정성을 쏟고 쏟다 받은 것은 없어 텅텅 비어버린 나를 그제야 겨우 돌아보았다. 텅 비어버린 나는 무엇이었을까. 그제야 깨닫는다.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내가 전부라는 것을.


어쩌면 스무 살의 내가 그것을 깨달았더라면, 깨닫는 것도 아니라 그저 내가 나를 조금 더 많이 사랑했었더라면 답을 알고 있을 어른이 되기를 바라기보다, 그때 답을 찾기 위해 조금 더 애를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물아홉, 내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서른을 앞두고 나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기 위해 아를 쓴다. 나를 사랑해서 나의 삶의 답을 스스로 찾으려고 한다. 그토록 바랬던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답을 찾는다. 그 답은 결국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스무 살의 나에게 너무나 말해주고 싶어.





비가 오는 날, 카페에서 다이어리를 끄적거리다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검정치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힘 빠진 검정치마의 나른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그의 독백을 듣다가 창 밖을 보았다. 칙칙한 콘크리트 벽 사이에 드넓은 서울이 보였다. 창문에 부딪혀 맺힌 빗방울과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인 흐릿한 하늘 아래 내가 사는 세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선.


이제야 내가 나를, 조금 알 것 같아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꺼진 불 속 조용한 관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주세요



지금의 나는 -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바랬던 어른이 되어가는 나는 - 결국 이 삶에서 나에 대한 답을 찾는다. 세상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 대해 답을 찾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또 많은 것들이 있겠지.


마마, oh 마마.

나의 맨발을 봐요.

마마, oh 마마.


나는 이제 내 시대를 위해 뛰고 있어요.




국화 향이 물씬 나는 날, 해랑사 을신당는 나



예전에 걱정과 조언이랍시고 나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있을 때가 있었다. 영화 속에서 슬로모션을 건 장면처럼 내 주변에 앉아 말을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릿하게 보이고 그들의 목소리는 점차 흐릿해져 웅웅 거리며 들렸다. 그때의 잔상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다른 지인에게 그때 많이 상처 받았다고 얘기했을 때, 그 지인이 나에게 왜 한마디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냐는 것도 마치 한 영화처럼 같이 기억되곤 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살면서 아주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모두가 맞다고 할 때, 난 아니에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나는 답을 찾는다.

해랑사 을신당는 나.


(p.s 여기서 당신은 나야, 나)

매거진의 이전글 다이나믹 듀오, 겨울이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