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지 않은 어른의 '미친 내기' 속 '진심' 찾기
* 이 영화를 앞으로 보시려고 하는 분은 리뷰 보지 마세요. 아주 약간의 스포가 있어서요. ^-^
"뭐 이 딴 영화가 다 있어" , "둘 다 완전 정신병자지 저게 할 짓이야"
당시 이 영화를 보고 난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공사판 씬은 하다 하다 아주 끝장을 보는구나 하는 그런 경악스런 반응들이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곱게 포장을 한.. 민폐의 끝장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런데 나는 20대 초반 불어를 배우기 위해 이 영화를 보았다가 그냥 이 영화가 좋아졌다.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건만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일단 프랑스 영화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화면 구성도 이뻤지만 말도 안 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서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을 캐치할 수 있어서라고 할까. 물론 현실에서는 정신이 온전하다면 결코 두 주인공처럼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영화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이용해서 만든 허구이기에 상황 전개만으로 말도 안 된다고 폄하한다면 영화를 너무 다큐로 보시는 것은 아닌지 싶다. 단 포스터만 보고 평범한 로코물이려니 하며 선뜻 선택하기엔 다소 충격이 오실 수 있으므로 미리 각오하고 보시길 알려 드린다.
'사랑해 볼 테면 해봐라' 식의 도발적 제목의 이 영화는 지금은 유명해진 마리옹 꼬띠아르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원제는 사랑을 다루는 여느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난감'(Jeux d'enfants)인데 영화를 보면 주인공만큼 비중 있게 등장하는 것이 회전목마 상자인 그들의 장난감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 장난감을 서로 주고받으며 내기를 한다. 어린이다운 유치 찬란한 장난이라고 하기엔 도를 넘은... 다소 불건전하고 다소 위험하고 다소 반사회적인 장난으로 점차 그 스케일과 다루는 내용들이 진화하는데.. 남이사 어떻든 간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놀이다. 서로에게 내기를 걸고 미션을 수행하면 그 상자를 다시 건네받고 다시 상대에게 새로운 미션을 주기를 반복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은 '내기와 진심' 사이를 오간다. 심지어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고 각기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그들은 끝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약처럼 그 내기에 중독이 되어 있다. 그게 뭐라고.
혹자는 이 영화가 로맨스 영화가 맞냐고 묻는다. 그렇긴 한데 정상적인? 사랑 영화의 구조를 따르고 있지 않기는 하다. 철들지 못한 어른인 남녀는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지 못한 채 '내기'라는 그들이 만들어 낸 이벤트로 서로에게 상처 주기를 반복한다. 영화에서는 이것이 좀 과장되고 극단적으로 그려지지만 우리네 일상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의 마음은 이러이러한데.. 자존심, 혹은 어떤 환경의 영향으로 진심보다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엇나간 표현 방식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떨 때는 내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라 헤매는 과정에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며 뒤늦게 진심을 알지만 때는 이미 늦으리라는 머피의 법칙에 버금가는 타이밍의 법칙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마치 도서관에서 재회한 그들의 서툰 표현 방식처럼 말이다.
여자는 남자가 사랑을 내기로 한다고 생각할 때부터 마음이 완전히 상했다. 도서관에 찾아갔지만 냉담한 남자의 반응에 자존심이 더 상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헛소리만 하며 상대를 자극한다. 생뚱맞게 도서관에서 열공 중이던 애먼 사람만 소피(여주인공)의 고백을 받고 감동을 받는다. 남자도 뒤늦게 달려 나오지만 상처되는 소리만 또 늘어놓고 여자가 버스를 타고 떠나니 그제야 냅다 뛰며 사랑해를 외친다.
내가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몇 가지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
#1. 병원에서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소년(남주의 어린 시절)이 뜀 뛰기를 하던 장면.
죽음을 앞둔 엄마의 병실을 지키던 소년에게 소녀는 1시간 동안 뜀 뛰기를 제안하고 엄마 침대 근처에서 소년은 불안한 시간을 그렇게 달랜다. 정사각형의 희고 검은 타일의 연속인 병실 바닥에서 소년은 한 칸, 두 칸, 세 칸... 보폭을 점점 크게 해서 뛰는데... 자신의 바람을 그 행위 자체에 투영한다.
'두 칸 뛰면, 엄마가 낮는다. 세 칸 뛰면, 자신의 생일날 엄마가 퇴원해서 집에 간다. 네 칸 뛰면 오늘 밤 엄마가 퇴원한다.'
우리도 살면서 이렇게 해 본 적이 몇 번은 있지 않을까. 어릴 때 나도 종종 이런 식으로 소원을 투영한 무언가를 내 방식대로 정해했던 것 같다. 사실 커서도 간절한 일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혼자만의 주술을 쓰곤 했는데...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일이 거짓말처럼 이루어지기를. 자신이 뭐라도 해서 엄마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을.. 소년의 그 순수한 마음이 전해져서 굉장히 뭉클했다.
#2. 장례식 중 꽃을 뿌리며 노래하는 소녀.
소년의 어머니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엄숙하고 슬픈 분위기에서 난데없이 소녀가 등장해서 꽃을 뿌리며 본인 느낌대로 'La vie en rose'(장미빛 인생)를 부른다. 그 높은 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모르지만 소녀의 어이없는 추모 퍼포먼스에 소년의 아버지는 눈살을 찌푸리고 다른 사람들도 동요하지만 소년만 눈물을 그치고 정말 천사같이 해맑은 얼굴로 웃고 있다. 소녀의 이런 비상식적 행동이 적어도 소년에게만큼은 심각한 상황을 좀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빛과 같은 역할을 해낸다.
(이 영화에서는 에디트 피아프가 부른 'La vie en rose'가 꽤 여러 차례 서로 다른 버전으로 사용된다. 신기한 것이 여주인공인 마리옹 꼬띠아르는 훗날 이 노래를 부른 에디트 피아프 역을 맡아 인생 연기를 보여주었고 이듬해 프랑스 여배우로서 당당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3. 남주의 거짓 프로포즈
영화에서 남녀는 참 다양한 이벤트로 서로의 마음을 할퀴는 짓을 반복한다. 그중의 대박은 남자 주인공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여주인공에게 프로포즈를 할 것처럼 온갖 분위기를 다잡다가 마지막에 제대로 뒤통수를 치는 장면이다. 정말 그럴듯하게 바람을 잡아서 이제 뭐 진심을 말하기로 했나 하며 관객인 나도 깜빡 속았다. 여자가 반지를 받으며 승낙하자 남자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호들갑을 떨더니 (와이프가 아니라) 결혼의 증인이 되어 달라며 뜬금없이 진짜 결혼할 사람을 그녀에게 소개한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진심으로 받아들였다가 한순간에 지옥을 맛본 여자에게 다가온 그의 피앙세는 그때 여자가 도서관에 신경 써서 차려 입고 갔던 그 옷을 입고 있다. -.-
#4. 남주의 오밤중 자동차 추격신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남자는 아내와 자식 둘에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지못해 사는 그런 얼굴에 일상의 활력이라곤 전혀 없어 보인다. 어느 날 10년이 지난 걸 기가 막히게 기억하는(둘은 10년 동안 만나지 않기로 내기했었다.) 여주로부터 '우리 게임을 다시 시작하자'라는 상징의 회전목마 상자를 받고 무척 설레어한다. 여자는 십 년 만의 재회의 기념으로 한층 스케일이 큰 게임을 준비해 두었고, 남자는 그녀와 재회하자마자 졸지에 집을 때려 부순 스토커가 되어 경찰차의 추격을 따돌리며 오밤중에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무법의 질주 씬은 여주인공의 남편인 축구선수 세르게이의 경기와 함께 교차 편집되면서 보는 사람도 신이 난다. 남주의 울분이 터지듯 분출하는 속사포 랩?은 이 게임이 본인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 것인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데... 지루한 일상에 어마무시한 활력과도 같은 그들만의 게임... 그렇게 좋을까 싶다. 결국 큰 유조차에 들이박는 것으로 질주가 마무리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계기판이 210까지 있지만 60으로 밖에 달릴 수 없는 것'
#5. 마지막 장면 (스포 있으니 주의!)
이 영화가 막장, 엽기 스릴러로 끝나지 않게 도와준 건 아마 마지막 장면 덕택일 것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된 그들의 미래는 어릴 때처럼 장난기 넘치고, 여전히 사랑스럽다. 그들은 여전히 내기 상자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당신은 착하니까 파란색 줄게라며 사탕을 골라내는 할머니의 귀여움과 할머니에게 Je t'aime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따뜻함이 이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의 사랑이 한결 편안해졌구나 안도하게 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그들의 방식대로 오늘을 살다 죽겠다는 이들 커플을 보고 있자니 알프레드 드 뮈세 님의 딱 아래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 유일한 진실은 이성을 잃은 사랑이다.
(Il n’y a de vrai au monde que de déraisonner d’amour.)
- 알프레드 드 뮈세
https://www.youtube.com/watch?v=8IJzYAda1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