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섬의 기억_고양이의 꿈 4

이집트 사막 Desert (1)

by Iris K HYUN





> 고양이의 꿈 4<

이집트 사막 Desert (1)




꿈을 꿨어. 거기서 난 또 사람 여자였어. 이번엔 너무 컴컴해서 어떻게 생긴 지는 잘 모르겠고 긴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 대략 알겠어. 고양이인 내 시각으론 내 거보다는 훨씬 길고 제법 튼튼해 보이는데 나만큼 잘 뛰어다닐 수 있는 느낌은 아니라 좀 의아했어. 여하간 나는 지금 그 다리를 가진 여자고 사막인 듯 보이는 길을 걷고 있어. 그리고 어떤 남자가 있어.




이집트에서 만난 이 남자가 이곳은 사막이라고 내게 말을 해준 기억은 나. 기괴하고 커다란 암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그곳은 내가 책에서 봤던 일반적인 사막과는 좀 달랐어. 굉장히 다른 행성 같았어. 처음 그곳을 인지했을 때 너무 컴컴해서 대체 어딜 향해 걷는 건가 싶었어. 그리고 누군지도 모를 그 남자는 지척에서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걸어가는데 그를 왜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었고. 묻는다고 딱히 시원한 답을 해줄 것 같지도 않은 그 남자에게 그저 다 와 가느냐고만 물었어. 너는 이 컴컴한 곳에서 대체 길을 알고나 가는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 말은 하지 않았어. 왠지 그가 모른다고 하면 더 절망적일 거 같았으니까. 그리고 아까부터 상처가 난 발이 너무 아픈 거야. 신발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은 더 이상 걸을 수 없겠어.라고 말했고 그런 나의 아픔을 외면하듯 묵묵히 걷고만 있는 그가 너무 얄미웠어.



발이 너무 아파. 빨리 걸을 수가 없어.



참다못해 남자에게 말했는데 남자는 뒤를 돌아보더니 말없이 내게 왔어. 그리곤 내가 들고 있는 짐을 받아서 자신의 어깨에 둘러멨어. 이미 그는 많은 걸 들고 걷고 있었는데도 말이야. 그의 이름 모를 악기들과 침낭과 매트 같은 짐들에 내 짐까지 둘러메고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어. 짐은 꽤 무거워 보였는데 그의 발걸음은 희한하게 가벼워 보이더라고. 오히려 더 힘이 나는 듯 걷고 있었어. 그 모습은 어쩐지 내 미안한 마음까지 덜어주었고.



힘들면 내가 업어 줄 수도 있어.



그는 뒤를 돌아다보며 가끔 이렇게 말했는데 내 귀엔 너 혼자 잘 걸을 수 있는 거 알거든. 하는 거 같았어. 엄살이 아니라 진짜 발이 아프긴 한데 따지고 보면 그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어. 설령 내일 발이 완전히 망가지더라도 지금 당장 난 걸을 수 있는 건 사실이었거든. 그리고 그를 따라갈 힘이 충분히 있고. 이 여정을 지속할 수 있다는 건 이미 내가 알고 있다고 느꼈어. 그런데도 난 지금이 아니라 미래가 불안해지면 자꾸 그에게 말했어.



발이 아파.



그는 내가 아주 가볍게 들고 가던 마지막 짐 하나마저 본인이 받아 들었어. 그리고 다시 걷는 거야. 그 모습을 보는데 뭐라 더 말할 수가 없었어. 뭔지 모르지만 낯선 그를 믿고 선뜻 따라나선 내가 나를 믿고 싶으면서도 너 완전히 정신 나갔구나 하는 거 같았으니까. 그리고 여기까지 이미 와 버렸는데 뭐 별다른 수도 없잖아.라고 되뇌었어. 그를 따라 다시 걸었지. 어둠 속에서 나보다 더 뚜렷하게 인지되는 그의 실루엣을 보면서 난 생각했어. 난 너라도 보면서 걷지만 넌 뭘 믿고 그 어둠 속으로 걸어가니. 심지어 핸드폰도 의지할 불빛도 이정표도 없는 곳에서 넌 뭘 믿고. 계속 그런 생각들이 연거푸 쏟아지니 발이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곳에 그가 닿길, 아니 우리가 닿길 염원하는 쪽에 더 에너지를 쓰게 되더라고.









금방이면 닿을 것 같은 그 길이 길어지면서 의심이 몰려오긴 했어. 모르는 사람을 믿어서 나는 또 안 겪어도 될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냐.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자 암흑 같은 그 길이 밝아지는 거야. 별빛에 어둠이 촤-악 소리로 양쪽으로 쪼개지며 열리는 느낌이랄까. 가시거리가 딱 그 남자의 등과 움직이는 두 다리 정도만 분간하는 정도였다면 암석의 기괴한 형태도 별안간 눈에 들어오고 짐작조차 어려웠던 지척보다 멀리 떨어진 지형이 여기저기서 솟아나는 거야. 놀랍더라고. 어쩌면 아까부터도 볼 수 있었는데 일부러 덜 보았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면서. 암흑에 누가 손수 여기저기 불을 밝혀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게 다 보이는 거야.

조금 앞서 묵묵히 걸어가는 그 모습이 내게 말했어.



이 길을 계속 걸어도 돼. 너는 혼자가 아니야.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사진만 씁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