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섬의 기억_무명 4

Cuba 쿠바 (4)

by Iris K HYUN




무명(無名) 4

Cuba 쿠바




무명 4는 윤이라는 이름의 남자의 기억에서 자신을 보았다. 말도 안 되는 것이겠으나 기억 속 남자가 자신 같았다.



닉을 다시 만난 건 천운이다.

연락처를 받았지만 그건 그의 집 전화번호였다. 대가족이 같이 사는 그의 집에는 (-그만 살지 않는 것처럼-) 전화할 때마다 그를 제외한 다양한 사람이 돌아가며 받았다. 심지어 그의 남자 친구라는 사람도 그보다는 그 집에 오래 머무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 남자 친구가 수업 시간과 장소를 전달해 준 덕분에 무명 4는 푸른 눈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닉은 볼수록 눈이 참 예쁘다. 아주 투명한 수정공 같다. 남자가 속눈썹도 어쩜 저렇게 길고 자연스럽게 말려 올라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푸른빛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고양이의 질문지를 서둘러 꺼냈다. 분명히 질문지라고 해서 받았는데 거기엔 짧은 글이 쓰여 있다. 고양이가 썼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또렷한 필체다.



타인의 눈에서 내가 읽는 건

자신이다.

정확하게 자신을 읽는다.

그의 상황일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이며 관점이다.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잘 되는 상황에도 문제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은 관점이고 태도이다.

그것이 다이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쿠바 트리니다드에서 춤추는 닉입니다.


당신의 존재의 의미는 무언가요?


존재의 의미라니.. 너무 심각하잖아요. 춤을 추고 사람들을 만나고 전 그게 좋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닉은 대답 대신 웃는다.


왜 웃죠? 제 질문이 우스운가요?


아니요. 당신 표정이 재밌어서요. 뭐가 그리 진지해요. 질문하는 거보다 나랑 춤을 춰요. 그럼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하하.


당신은 소원이 있나요?


사람들과 춤을 더 많이 즐기고 싶어요. 그래서 제 공간을 따로 하나 마련하고 싶고요.


당신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느끼나요?


사랑스러운 사람이요. 웃으니까 너무 예뻐요. 나는 당신이 더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고양이는 나무에서 내려와 비에 젖은 풀밭을 꾸욱꾸욱 눌러 밟으며 살랑살랑 리드미컬하게 걸었다. 발에 힘이 들어가는데 몸의 움직임은 한결 가볍다.

햇살이 나무 사이로 기분 좋게 내린다. 한층 맑아진 공기를 느끼며 나무 기둥 중턱에 (-고양이 영역에-) 누워 곤히 잠든 무명 4를 올려다봤다. 굳이 깨워서 그 눈에 대해 묻지 않아도 노트에 무엇을 남겨야 할지 알 것 같다.



나뭇잎이 가지에서 사르르 내린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떨어진다. 바람에 저항하거나 거꾸로 향하는 일은 없다. 바람 따라 빙빙 돌다가도 언젠가는 땅에 닿는다. 그런데 유독 하나의 잎만 공중에서 이리저리 맴돌며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심지어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어느 순간은 위로 세차게 붕 떠서 하늘로 솟구치기까지 한다.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바람을 타는 움직임 하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바람에 실려 오는 새소리를 들었다. 발을 사선 옆으로 기이하게 뻗으며 엇박자로 걸어 본다. 쿵쿵 발을 구르는 모양으로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아보기도 한다. 한참을 바람과 놀던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졌고 고양이는 노트를 펴고 문장을 적었다.



당신의 존재는 나의 기쁨입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동영상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것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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