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섬의 기억_무명 4

Cuba 쿠바 (3)

by Iris K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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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名) 4

Cuba 쿠바



그녀의 형광 연둣빛이 좀 강렬하게 번쩍였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그 색깔이 그녀의 골반과 함께 눈앞에서 왔다 갔다-했다. 별안간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특별히 힘든 동작도 없는데 땀은 왜 이리 나는지. 이마로 등줄기로 연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시 가장 정직한 자세로 돌아왔다. 실수할까 봐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있다. 닉이 말하는 이완의 상태는 이번 생애에 내가 춤을 추면서 경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의 파트너 피비는 매번 인자하게 웃어준다. 친절한 그녀는 긴장을 풀라는 뜻으로 맞잡은 손을 자주 살랑살랑 흔든다.


굿


베뤼 나이스


피비는 세상에서 가장 너그러운 파트너일 거다. 잘하는 것도 없는데 자꾸 굿이라고 해주는 걸 보면 그렇다. 닉은 하찮은 나의 몸짓 하나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하게 베뤼 나이스를 외쳐댄다.


아주 잘했어요. 너무 훌륭하니 이제는 턴을 배워볼게요.


닉이 피비와 먼저 시범을 보였다. 보기엔 지극히 단순한 동작이다. 그저 남자가 신호를 주면 여자가 정해진 스텝을 밟으며 잡은 손 안쪽으로 한 바퀴 휙 도는 것이다. 정말 별것이 없다. 심지어 남자는 정말 하는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해보려니 온몸에 긴장이 들어가 불과 십여 분 사이에 녹초가 되었다. 정작 턴을 돈 것은 피비인데 내가 한 백 바퀴는 돈 것 같다.


수고했어요. 오늘 처음인데도 아주 잘했어요.


닉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눈을 찡긋했다.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


그는 넋이 반쯤 나간 나의 눈을 집요하게 맞추며 말했다.


내 안에 저항을 없애는 거예요. 실수할까 봐 두려운가요?


.......


어차피 대답을 들으려고 물어본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처음 하는데 두려움이 없을 수 없죠. 당연하죠. 그런데 인생에 실수 안 하고 배울 수 있는 게 있던가요? 조금씩 나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 보는 겁니다. 그냥 시도해 보는 거예요. 컴포트 존을 갑자기 확 벗어나기에는 당연히 엄청난 저항이 있겠죠. 마음에서 이건 아닌 거 같다며 싫어, 어색해, 무서워, 난리를 치겠죠. 그러나 내가 완벽하게 안정감을 느끼는 것에서 평생 벗어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됩니다. 한 발 밖으로 디뎌 보고 너무 불안하면 다시 중간 지점쯤으로 돌아오면 돼요. 대신 조금씩 자꾸 가보는 거죠. 나의 컴포트 존 밖으로. 아마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겁니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나의 존이라는 것이 아주 커져 있을 거예요. 그리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할 자리에 서 있어도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거예요. 와우-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이 더 소란스럽게 박수를 친다. 우리의 대화가 지루한지 연신 하품을 하며 벽에 기대 있던 피비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였다. 나도 좀 놀랐다. 자신의 인생에는 춤밖에 없고 배운 것 하나 없는 무식한 놈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무척이나 지혜로운 놈인 것 같다. 박수만 안 쳤으면 훨씬 더 감동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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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사진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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