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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 Apr 14. 2024

영화 <키메라>

무얼 잃어버렸고, 어디서 그걸 찾으려고 하는가?




그는 무얼 잃어버렸고, 어디서 그걸 찾으려고 하는가? 




영화에서 한 남자(아르투)는 비범한 능력으로? 무덤을 파고 다닌다. 그는 이방인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한데 하나는 이탈리아 시골마을에 있는 영국인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산 사람이지만 죽은 사람들의 집(무덤)을 파고 다닌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대체 뭘 하던 인물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영화 중간에 나오는 노래 가사에서 추측해 보면 그는 고고학을 사랑했던 학생 혹은 학자였고, 그 배경으로 이 역사가 있는 마을에 온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그는 다 스러져가는 폐허 같은 곳에서 도굴꾼의 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사실상 제일 처음 영화에 등장했던 여인을 찾으려고 한다. 도굴을 한다는 의미가 그에게는 죽음 너머에서 그가 잃어버린 것을 찾고 싶은 욕망이다. 매번 땅을 파는 것이 그런 의미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오래된 벽화에서 무엇이 보이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사람들'이라고 답한다. 너무 당연한 거겠지만 거기 그려진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도굴꾼과 유물경매인에게 고대인이 남긴 부장품은 오로지 돈으로 가치가 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그 부장품에 가격을 매긴다. 여신상 머리 하나를 놓고 두 집단이 동물처럼 으르렁거리고 싸우는 장면이 웃겼다. 진짜 동물이 되었다.



아르투는 그 엄청난 값어치의 여신상 머리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이건 여기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만든 게 아니라고 하면서. (무덤에 있던 것이 아닌가. 공공장소도 아니고. 그걸 만든 목적 자체가 다르다)

살갑게 굴던 친구들은 그의 이용가치가 다하자 그를 외면한다. 



영화에서는 서로 다른 시점이 교차하고 땅과 하늘이 뱅글 돌고 보다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가 기차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어느 시점일지 모르는 시간에 등장해서 서로가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을 봤냐고 한다. 그들은 그 물건들을 봤냐고만 물어보지 찾아서 도로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는 두 개의 세계에 걸쳐 있다.






베니아미나(과거 여인)의 집에 가면 그녀의 어머니가 있다. 이미 죽은 딸을 살아있는 듯 이야기하는 그의 어머니도 지금의 삶보다는 과거에 산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집에서 추억이 깃든 그 물건들과 과거를 지낸다. 



그 집에는 또 다른 여인이 한 명 있는데 이탈리아다. 그녀는 생명력이 넘치는 인물이다. 못 부르는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고 다니고 버려진 아이들마저 챙기며 오늘의 삶에 충실하다. 베니아미나 어머니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정부처럼 지내지만 버려진 역을 포근한 보금자리로 만들어낼 만큼 삶의 열정과 활기가 있다. 이미 폐쇄된 그 역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에게는 여행을 좋아하던 딸을 기다리던 과거의 장소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게 된 그 역에서 다른 것을 본다. 사람들과 살아갈 미래를 꿈꾼다. 

어디서 온 건지 모르는 길거리의 아이들까지 다 모인 그 집에서 아르투도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르투는 새로운 사랑 대신 스스로 저승의 입구로 돌아간다. 








삶의 세계에서 그의 위치는 하인이다. (길거리 아이들이 그렇게 말한다) 저승의 일을 할 때는, 그리고 여인의 어머니의 집에서는 왕처럼? 행세하던 그가 삶의 세계에서는 정작 사소한 일을 도와야 하는 것이다. 그게 자존심이 상하거나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 삶이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줄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왜 무덤을 다시 연 걸까?

아이들, 여자들이 만들어낸 그 세계에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을까?




그가 잃어버린 건 뭐였을까? 


사랑하는 여인,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진정한 쓸모가 아닐까.  



내가 세상에 제대로 쓰이고 싶다는 마음, 자신의 쓸모. 



나의 쓸모를 알고 싶어. 



이 말을 들을 때 쿵-한다. 최근 각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두 번이나 들었다. 

나도 자주 말했던 거니까 더 잘 들린다.

사람들은 진짜 자신의 쓸모를 알고 싶어 한다.

이 말은 달리 하면 살고 싶어.다.




여기 주인공은 그 쓸모를

어쩌면 저승의 세상에서 더 잘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카드 뒤에 이렇게 쓰여 있네요.


누구 소유도 아니에요.

그냥 잠시 살다 가려고요.

인생도 그렇잖아요.





https://youtu.be/VoKlgC2VNdU?si=yb_Bh5LutTueNJ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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