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건네는 응원 3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편>

by Iris K HYUN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파리 근교에 위치한 이곳은 파리에서 RER를 타고 쉽게 갈 수 있으며(단, 중간에 내려서 한 번 갈아타야 함), 나비고 교통카드 소지자라면 무료로 갈 수 있는 거리다.

고흐는 이곳에서 70여 일(1890.5.20-7.29)을 머물렀고, 37세의 짧은 삶을 마쳤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그는 권총 자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선 그가 마지막까지 지냈던 라부 여인숙, 작품 속 성당, 시청, 밀밭 등을 둘러볼 수 있고, 동생 테오와 나란히 자리한 그의 무덤도 찾을 수 있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내던 라부 여인숙 / 고흐가 머물던 방은 문을 닫아서 못 들어가봤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흐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그림은 까마귀가 날고 있는 밀밭이다. 낮고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요동치는 노란 밀밭과 불길해 보이는 까마귀 떼는 당시의 그의 외롭고도 불안한 정서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 이곳은 그 밀밭처럼 어두운 적막감과 헤어날 수 없는 우울함부터 떠오르게 하는 곳이었다. 고흐는 해가 제법 뜨거웠을 5월 중순 이후부터 7월까지 이곳에 있었다고 하니.. 대체 겨울의 이곳은 얼마나 더 삭막하고 우울할지.. 갔다 와서는 아 역시 괜히 갔어...괜히 갔어..를 반복하게 될 것만 같았다.



Vincent Van Gogh, Wheatfield with Crows, 1890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는 길부터 기분이 너무 좋은 것이다. 차창 밖으로 파리를 벗어나 한적한 교외 분위기가 펼쳐지는데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참고로 여기로 가는 RER 노선의 차량은 다른 파리 노선과 다르게 깨끗하기까지 하여 기분이 더 상쾌하다.) 고흐가 그렇게 아프게 고뇌하며 생의 마지막을 마주했을 곳이 내겐 어찌 이리도 평화롭고 따뜻한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추운 파리에서 한동안 얼었던 몸과 마음이 확 풀리는 것 같았고, 겨울 속에서 묘하게 봄의 기운을 느꼈다. 사실 그 전날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그냥 쉬자라는 유혹을 과감히 이기고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살 걸어 산책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동네가 있을까 할 만큼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늑했다. 프랑스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춥지 않았다.



겨울 햇살치곤 참 따뜻했다.




내가 느낀 고흐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꼭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못해서라기보다 자신이 진실이라 생각하는 가치들을 진정으로 함께 나눌 이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설령 주변에 사람이 많고 화려해 보이는 인생을 산다 해도 그 사람이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 줄 수도 있다. 매일같이 붙어 있다고 해서 외로움이나 공허함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했지만 단순히 풍요로워졌다고 한들 그 안락함에서 쉬이 만족감을 찾을 수 있는 인물이었을까. 비슷한 자리를 맴도는 그저 그런 위로나 대화, 관계가 궁극적으로 그의 영혼을 평온하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 같다.

특히나 정직하리만큼 타협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관이 뚜렷했던 고흐에겐 그의 내면을 깊이 이해해 줄 누군가가 절실했을 것이다. 아티스트로서 그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소울 메이트' 말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이 그 역할을 그의 동생 '테오'가 하지 않았나 싶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소는 고흐와 테오의 무덤이 있는 야외 공동묘지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그곳을 둘러보는 시간은 쓸쓸하다기보다 너무나 평화로웠다.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오래된 돌무덤, 프랑스에서 지역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전사자 묘역, 이런저런 형태의 특색 있는 가족묘를 지나 한 구석에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오히려 더 소박한 형제의 무덤이 있다. 고흐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테오도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렇게 나란히 같이 있는 형제의 무덤을 보니 좀 뭉클했다.



고흐와 테오의 무덤이 있는 야외공동묘지



이십 대 후반 방황 끝에 늦게 그림을 시작한 그는 화가로서는 정말 짧은 생을 살았다. 그러나 십여 년 동안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고, 그만큼 치열하게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소위 어느 대가 밑에서 줄서기 없이 독학으로 이뤄낸 성과이기에 이런 외로운 작업에 진심으로 힘을 보태는 테오의 존재는 그에게 참 중요했을 것이다. '형 그만하면 많이 했어. 집어치우고 딴 거 해'라고 말할 법도 했으나(실제로 한 번쯤 말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자신도 넉넉지 않은 살림에 형을 끝까지 지원하고, 그의 온갖 고뇌를 다 들어준 테오는 그의 영혼이 진정 쉴 수 있는,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반대로 수많은 편지 글들을 통해 보면, 테오에게도 형의 존재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비록 밥벌이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형일지라도 그의 많은 생각들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기에 그 역시 정신적으로 형에게 의지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앞선 글들에서 타인의 인정 없이 고흐는 어찌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했는데.. 자신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 봐 줄 수 있는 사람의 존재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음을 형제의 무덤을 바라보며 느꼈다. 특히 창작자는 자신이 하는 것의 의미를 끊임없이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데, 불행히도 많은 이의 지지가 없다면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공감할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일까.


사람들은 이따금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지. 끔찍한, 아주 끔찍한 세상과도 같은 무언가에 갇혀서. -중략- 이 감옥을 사라지게 하는 건 뭘까? 그건 바로 깊고 진지한 사랑이야.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한다면 그 숭고한 힘과 강력한 마력으로 감옥의 문을 열 수 있겠지. 그런 게 없는 사람은 생명을 잃은 채 살아가는 거야.


Vincent van Gogh, A self-portrait in Art and Letters 中


밤이 된 오베르 쉬르 우아즈, 등이 참 이뻤다.



공동묘지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 붉은 기운이 점점 크게 번져 묘지 전체를 감싸는가 싶더니 어느덧 어둠이 내렸다. 컴컴한데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형제의 무덤을 지나 여러 사람들의 묘역을 보며 너도 나도 예외일 수 없는 마지막을 새삼 생각했다. 어제까지 살아 있던 누군가도 한 줌의 재가 되어 이곳에 잠들어 있다. 나는 생의 마지막에서 무엇을 정말 하고 싶었다고 후회할까. 비록 고흐처럼 멋진 작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진실한 삶을 살다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야외묘지




며칠 전에 찾고 싶은 사진이 있어 혹시나 하고 백 만년 만에 추억의 '싸이월드'에 들어가 봤다. 패스워드를 못 찾아 이거 저거 한참을 눌러보다가 겨우 접속했다. 대학 때 웬만한 건 거기 다 있을 정도로 온갖 사진의 저장소였던 그곳에서 난 우연히 친구가 남긴 오래전 일기를 보게 되었다.


그 글의 제목은 "짤려도 행복합니다. 진짜를 보여줬으니까"였다. 그 친구는 과거 '나가수'를 연출한 김영희 피디의 인터뷰를 다음처럼 인용하고 있었다.


'진짜가 별로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잖아요. 다 껍데기에 둘러싸여 사는 것 같아요. 그런 허식과 가상에서 살다 보니까 더 '진짜'를 갈망하는 거죠. <나가수>는 진짜 노래를 들려줬잖아요. 가짜에 둘러싸여 살지만 진짜에 대한 동경이 있는 그 지점을 딱 건드려준 것 같아요.'


그리고 글의 말미에 본인의 생각을 이렇게 써 놓았다.


'진짜'라는 것은 오관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직관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진짜'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희망의 증거가 된다.



캬. 멋지다. 그 당시 난 이 친구가 이런 생각이 있는지도 몰랐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로 채워졌던 그 시절 유치 찬란한 내 일기장을 불살라 버리고 싶었다.

사진을 찾으러 갔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친구의 일기에서 감동을 받고 나왔다.



진짜의 힘은 이렇게 큰 거구나.

다른 시대를 살았던 한 아티스트의 삶 자체가 현재까지도 이렇게 큰 울림을 주는 걸 보면.


Thank you, Vincent!

고흐 편 The end/

해가 지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너무 아름다웠다.




https://www.youtube.com/watch?v=vp5qJlr4go0&list=LLRgnyW4gJeyBs6tKF6hywVw&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