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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 Sep 11. 2022

다름을 인정하다- 베네치아, 이탈리아

리도 해변에서

  

한여름에 더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지중해 도시들은 5월부터 이미 한여름이나 다름없다. 는 언제나 딸아이 학교 일정에 맞추어 여행을 떠나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성수기와 맞물렸다. 날은 더웠고 사람은 많았다. 비행기 삯과 숙박비도 제일 비쌌다. 세상에 무엇이든 하지 않을 핑계는 차고 넘친다고 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떠나지 않았다면, 딸아이와의 기나긴 여행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결심한 그날이 가장 적당한 때였다. 누군가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나중에 기억도 나지 않는데, 고생하지 말고 더 커서 가는 게 낫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나만의 방식대로 부딪혀 보았다. 여행이라는 공간 속으로, 고생이라는 현실 속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다.

결과적으로 어려서부터 여행으로 체득된 ‘다양성’과 넓어진 ‘시야’가 딸아이 스스로 유학이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된 원인이 아니었을까, 지금에야 생각이 되어진다.

 

딸아이와의 ‘뚜벅이 여행’은 언제나 짐과의 씨름이었고 살갗을 파고드는 자외선과의 싸움이었다. 게다가 울퉁불퉁한 돌길을, 캐리어를 끌며 호텔도 찾아다녀야 했고, 수도 없이 기차역을 드나들었다. 여행은 늘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행복함과 고생의 반복이었다. 멋진 풍경에 감탄하다가도 길을 잃는다거나 물건을 잃어버려 곧 마음이 힘들어지기도 했다. 별별 일을 다 겪었지만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딸아이가 안쓰럽고 고마워서 일정 중에 한 번쯤은 어떻게든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물살을 가르며 베네치아로 달리고 있는 기차 안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장기간 여행으로 많이 지쳐있는 딸아이를 어떻게 즐겁게 해 줄 수 있을지,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베네치아 기차역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나오자 바포레토(수상버스) 터미널이 보인다. 베네치아는 수상도시답게 육지로 다니는 교통수단이 없다. 걷거나 배를 타야 한다. 섬을 오가는 수상버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 ‘Lido’ 섬으로 가는 표를 샀다. 계획에 없었던 일, 아이들은 한여름에 물놀이가 최고니까, 하루를 온전히 해수욕장에서 보내리라 다짐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질 만큼 낡아 보이는 바포레토에 올랐다. 수상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멀리 보이는 오래되고 중후한 건물들이 수상버스의 거친 움직임으로 물 위에 떠서 출렁이듯 보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경쾌하게 두드린다. 우리는 난간에 얼굴을 내민 채 얼굴에 튀어 드는 물살도, 큰 웃음소리와 함께 기꺼이 맞아준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2012년)

 

“엄마~여기 이상해요!”

리도 해수욕장에 발을 내딛자마자 딸아이가 입을 손으로 막고 비명을 지른다. 나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아이의 눈을 가리기 바쁘다.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상의를 벗은 여성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프랑스 니스 해변과 이탈리아의 이름 모를 해변에서 지나가며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노골적인 상황은 나에게도 쉽지 않았다. 딸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부랴부랴 아이 손을 이끌고 탈의실로 갔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서 조금씩 적응할 시간을 가져보자고 생각했다. 우리도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니 조금은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상의 탈의한 채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여성들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 바다 가까이로 갔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은 곧 사람들의 피부를 다 태울 것만 같았다. 모두가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는 듯했다. 가족과 연인들은, 우리의 당혹스러움과는 아무 상관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딸아이와 물속으로 들어갔다. 바닷물은 차가웠다. 파도에 몸을 맡기니 그간의 피로가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옆에서는 상의를 입고 있지 않은 엄마가 아이와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이를 안았다가 물속으로 던지기를 반복하며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딸아이와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민망해하던 생각에서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시간이 지나자, 당황스러웠던 우리의 눈이 리도 해변에 맞추어져가고 있었다.

유럽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 연인들의 거침없는 길거리 애정표현에 딸아이가 당황해했었다. 그때도 곧 익숙해졌던 것처럼 리도 해변에서도, 힘겹게 문화의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미국에서 생활한 지 벌써 6년이 지나고 있다. 수많은 인종과 다양한 문화 안에서 더 많은 ‘다름’에 대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여행노트에서 꺼낸 추억 이야기 11.

                              -2012년 열 살이던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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