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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 Sep 15. 2022

여의도에서  인터라켄을 떠올리다-인터라켄, 스위스


불꽃이 검은 하늘을 형형색색 물들인다. 한강 위로 우렛소리와 함께 휘황찬란한 꽃잎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사라진다. 몇 초면 사라져 버릴 예술작품이 탄생을 거듭한다.

매년 가을,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세계 불꽃축제가 열린다. 불꽃이 터지는 순간, 가족과 혹은 친구와 함께 한 사람들이 서로 끌어안고 탄성을 지른다. 군중 속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딸아이 또래 아이들이다. 남편과 같이 갔지만, 한쪽 옆이 허전한 것은 딸의 빈자리 때문이다. 남편이 ‘한 몸’이라고 별명을 지어줄 만큼 나는 어디를 가든지 늘 딸과 함께였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나이에, 얄미울 정도로 좋은 가을날,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걱정 어린 그리움이 밀려온다. 무심한 듯, 그렁거리는 눈물을 훔치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꾹꾹 누른다.

사람들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방향을 따라 구름 떼처럼 분주히 이동한다. 불꽃을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모두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다. 나는,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떨어지기라도 할까, 고개를 뒤로 떨어뜨리며 하늘과 눈 맞춤한다.

 

몇 해전 여름, 우리는 스위스 쉴트호른(Schilthorn)에 오르기 위해 인터라켄에 있었다. 융프라우에 가려고 거쳤던 이곳에 몇 년 만에 다시 오니 마음이 들떴다. 더운 나라들을 거쳐 온 탓인지, 산 깊숙이 위치한 탓인지, 오랜만에 시원한 공기가 코끝에 닿았다. 기차역에서 빠져나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볼 것이 즐비한 도심에서 벗어나 산을 곁에 둔 자연경관에, 딸아이도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끼는 듯했다.

호텔로 걸어가는 거리에, 사뭇 특별한 분위기가 감돈다. 조용할 것 같은 마을이 몹시 분주해 보인다. 경찰들도 바삐 움직인다. 무슨 일일까? 꽃으로 장식한 마차가 거리를 행진한다. 사람들이 스위스 국기를 흔들며 마차 뒤를 따른다. 사람들의 표정이 환하다. 관광객들은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마차 행렬을 즐겁게 바라본다.

이보다 더 파랄 수 없는 하늘과 산허리에 걸친 하얀 구름, 초록 가득한 마을은 축제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궁금해서 지나가는 경찰에게 물어보았다.

“오늘은 8월 1일 독립기념일이에요. 저녁에 공원에서 불꽃놀이가 있답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이 축제일이었다. 2~3일이면 짐 싸서 이동하는 우리 같은 배낭여행자들에게 이런 일은 뜻밖의 큰 선물이 되기도 한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인터라켄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 공원만 한 자그마한 곳에 사람들이 질서 있게 둘러 서있다. 누구 하나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까치발을 하고 있으면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다. 우리는 작은 마을에 모인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구경하며 큰 기대 없이 사람들 속에 서 있었다.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불꽃놀이 정도로 생각했다.

8시가 되자 휘파람 소리는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불꽃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이렇게 가까이서, 눈앞으로 쏟아지는 불꽃을 보는 것이 신기했다. 한강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 규모를 작은 마을에서 보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훨씬 생동감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인터라켄에 폭죽 소리가 계속해서 메아리친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감동 어린 탄식이 울린다.

“엄마, 너무 예뻐요.”

처음 보는 불꽃놀이에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불꽃축제는 절정에 다다른다. 사람들의 호흡도 절정에 다다른다. 설경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 인터라켄의 밤하늘은 아름다운 고운 빛깔로 물든다.

                               축제준비가 한창인 인터라켄(2012년)

 

며칠 전부터, 곧 다가올 딸아이 생일이 내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잠시 다녀간 여름방학에, 생일에 먹을 거라며 챙겨간 인스턴트 미역국이 눈에 어른거린다.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 대신 인스턴트 미역국을 생각해 낸 것조차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생일이 얼마나 쓸쓸할지에 대해 미리 슬퍼했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 생일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서양인들의 화려한 생일파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았을 뿐, 아직은 이방인에 불과한 딸아이가 어떤 생일을 보내게 될지 상상조차 안 되었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때로는 외롭고 힘든 것이 삶인데, 어린 나이에 혼자서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하는 딸이 안쓰러워진다.

 

불꽃이 한강 위로 꽃도 만들고 나비도 만든다. 그리고 은하수가 되어 내려온다.

오늘 밤 유난히 인터라켄이 생각난다. 길바닥에서 내뿜는 분수 사이를 고함치며 달려 가로지르던 모습, 호텔에서 끓인 설익은 라면을 세상 행복하게 먹던 모습, 그리고 불꽃을 바라보던 초롱초롱한 딸아이 눈망울이 그리워진다.

여의도에 모인 군중 속에서, 인터라켄의 불꽃놀이를 바라보고 있는 눈에 고인 눈물이, 화려한 불꽃을 수채화로 물들이고 있었다.

                      *2017년에 썼던 일기장에서 꺼낸 글

  

                          여행노트에서 꺼낸 추억 이야기 12.

                                  -2012년 열 살이던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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