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관문/미국 입국에 관하여 –디트로이트, 미국
“Thank you! Thank you!”
빠르게 보안검색대를 통과시켜 준다는 말에 환하게 웃으며 공항 보안관을 뒤따라갔다. 그러나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미국에 왜 왔는지 돈은 얼마를 가져왔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를 으슥하고 구석진 방으로 데려갔다. 좀 전에 미국 입국심사를 다 마쳤는데 내가 왜 끌려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네가 한 말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딸이 있는 필라델피아에 가려고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환승을 하려던 과정에서 일이 생겼다. 나는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미국에 있는 딸을 만나러 왔고, 캐나다 여행을 할 거고, 돈은 800달러 가져왔다고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8,000달러 가져왔다고?” 그녀는 볼펜으로 숫자까지 쓰면서 보여주었다.
“아니, 800달러라고.”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지갑 안에 800불 말고 따로 1,000불을 봉투에 넣어 핸드백 깊숙이 넣어 온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그때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설마 지갑을 열어 돈까지 세어볼까......
그녀는 다른 남자 직원에게 내 여권을 조회하도록 시키고 가방 수색을 시작했다. 비장한 각오를 한 얼굴로 라텍스 장갑을 손에 밀어 넣었다. 그녀는 핸드백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가 한 말에 조금이라도 착오가 있으면 가만두지 않을 태세였다. 핸드백 지퍼를 열어 주려고 하니 사나운 얼굴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내 가방을 건드리지 말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방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를 뒤지고 꺼냈다. 비행기 리턴 티켓, 캐나다 여행을 위한 비행기 티켓, 지갑, 소소한 잡동사니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설마 했던 지갑을 열어보더니 진짜로 돈을 세어보는 것이 아닌가? 돈이 그것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이리저리 뒤집어 보고 있었다. 하지만 도난을 우려해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돈 봉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꺼림칙한 얼굴로 이번에는 캐리어를 열어 속옷, 양말 주머니까지 이 잡듯 수색하기 시작했다. 정성스럽게 포장해 간 선물까지 다 뜯기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선물 가격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봐주는 거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까지 말했다. 불법은 아니지만 잘못 말한 1,000불 때문에 빨리 위기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관공서에 갈 때면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게 고객을 대하는 직원들을 보며 이해가 안 됐었다. 이유도 없이 그들은 ‘갑’이고 우리는 ‘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에 올 때마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퉁명스럽게 소리 지르며 출입국을 담당하는 그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딸아이를 만나러 미국에 두어 번 다녀온 후, 우연히 박완서 단편소설 ‘J-1 비자’를 다시 읽게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자 소설가인 주인공은 미국으로 유학 간 수제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선생님이 쓴 소설에 관한 세미나에 초청을 해온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미국에 가기 위해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미국 대사관의 무책임하고 위압적인 태도를 그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은 주어진 시간 안에 비자를 받지 못해 미국행을 포기했다. 미국대사가 사과하기 전에는 다시는 미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주인공의 호기 부림으로 소설은 끝난다. 나 역시 ‘J-1 비자’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시는 미국 땅을 밟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딸을 만나러 가는 여행길이라 기분이 한껏 좋았다. 미국을 입국해야 한다는 부담감만 없다면 말이다. 필라델피아까지 직항이 없어서, 환승 공항에서 짐을 찾아서 다시 붙여야 하고 보안 검색대도 또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딸과 캐나다로 여행하러 가는 길에 미국 홈스테이 집에 들를 계획이어서 선물을 몇 가지 준비했다. 그중 자개로 된 보석함이 있었다. 깨질 수 있어서 캐리어를 붙이지 않고 기내에 들고 탔고 환승할 때 짐을 다시 찾아 붙일 필요가 없으니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나는 혼자 유유히 환승하는 곳을 따라갔다. 한국에서 미국을 가는데 기내용 캐리어 하나가 전부인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그것이 눈에 띈 것이다. 이유는 말도 안 되게 단순했다. 그냥 운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불쾌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처음에 화났던 마음에서 점점 슬퍼졌고 그런 내 자신이 싫었다.
테러에 대한 공포와 불법 이민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야 당연한 것이라지만,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불쾌한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설 속 주인공처럼 미국 아무개가 사과하기 전까진 미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장담은 못하겠다. 딸아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까지는 말이다.
딸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어려운 미국 입국을 통과하고 난 후, 상한 마음을 추스르며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 나라에서 내 나라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여행노트에서 꺼낸 추억 이야기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