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1일 중국 정부가 세계보건기구(WHO)에 '신종 폐렴' 집단 감염을 보고한 이후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는 종식은 커녕 잠잠해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2021년 8월 11일 0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천223명으로 기록됐다. 역대 최다 일일 환자 수였다. 이 와중에도 코로나19 유행은 계속된다. 델타형 변이 바이러스의 또다른 변이인 델타플러스 변이의 국내 확산이 늘고 있다.
평소라면 세세하게 통계를 붙여 “역대 최다 확진자 발생”과 같은 ‘뉴스’를 만들었을 테지만, 그날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코로나19 최초 발생부터 현재까지 이 사안을 맡아 보도하고 있다. 나의 하루는 매일 아침 새로 업데이트되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해 청와대, 국무총리실과 서울시 등 주요 부처와 지자체발 정보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루에만 많게는 3번 이상 진행되는 브리핑은 그날의 헤드라인이 되기 때문에 당국자의 토씨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 여기에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국(CDC)이나 홍콩과 중국의 CDC 보고서도 챙겨야 한다. 주요 외신보도도 체크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욕을 하지만 코로나19 사안을 다루는 언론들은 이렇게 꽤 부지런을 떠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뉴스를 만든다.
뉴스는 대부분 통계에 기대 만들어진다. 나는 민감한 사안이나 주요 정책이 발표되면 질세라 더 빨리, 더 많이 '기사'를 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취재와 보도를 하고 있는지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최초 1년은 유행 종식까지는 가보겠노라 큰소리를 쳤다. 괴로움은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 내가 만들어낸 뉴스란 것이 빠뜨린 구멍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다.
매일 마주하는 각종 수치와 통계는 감염자와 그의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누군가 감염병으로 사망하면 유족은 시신의 마지막을 볼 수 없다. 감염 위험 때문이다. 시신은 즉각 소각된다. 고인과 가족 모두에게 마지막 작별조차 허용하지 않는 비탄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가져온 한 가정의 비극. 나는 이것을 기사 끄트머리에 “추가 사망자 OO명”이라고 덧붙일 뿐이다.
은퇴 자금을 쏟아붓고 빚을 내 문을 연 식당과 카페가 팬데믹의 여파로 문을 닫고 있다. 이후 그 가정에 찾아올 시련이란 얼마나 매섭겠는가. 누군가의 가족, 이웃, 친구들이 겪고 있는 시련이란 “소상공인·자영업자 생계 어려움”으로 쓰이고 말 뿐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죽음이나 시련을 몇 줄 통계와 숫자로 전하고 마는 무책임을 1년 8개월 12일째 반복하고 있다.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을 뺀 채 하는 죄. 이 죄를 알면서 저지르고 있다.
2021년 8월 11일 국내 코로나19 유입 이래 가장 많은 환자 수가 나왔다. 타 언론이 이를 보도할 동안 나는 편집국을 빠져나와 담배를 물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8월의 낮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이날만큼은 수치 말고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