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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토리

브로큰 시티

①삼년동안 홍콩에서 벌어진 일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지금은 국내 언론도 거의 보도를 하고 있지 않지만 2019년 촉발된 홍콩 민주화 운동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듬해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홍콩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나는 2019년경 꽤 관심을 갖고 현지를 여러번 다녀오며 홍콩 민주화 운동을 취재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하늘길이 끊기자 현지 취재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나도 현안에 묻혀 홍콩에 대한 관심이 흐릿해졌다. 다시금 관심의 불을 붙이게 된 계기는 존 리 행정장관의 취임 때문이었다.


2022년 9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존 리 신임 행정장관은 강경파로 분류된다. 홍콩의 중국화는 더욱 빨리 진행될 것이며,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은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낙인찍혀 더 가혹한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역권운동’, 즉 권력을 거스르는 운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닮았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인의 첫 저항은 2003년 국가안전법 제정 시도였다. 당시 법안에는 국가 전복 시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반환 당시 중국 정부는 홍콩 기본법 안에 이런 법 제정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포함시켰고, 이것이 실제가 될 상황이 되자 홍콩인 5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민심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친중파 의원들마저 부담을 느껴 입법 취소에 동의했다. 홍콩인들이 이처럼 반발한 이유는 국가안전법이 표현, 종교,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컸기 때문이었다. 반대운동에는 노동조합, 변호사, 언론계, 종교계도 가세했다. 이때의 경험은 홍콩 시민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시위 참여자 중에는 이때의 집회 경험을 한 이들이 많았다. 국가안전법 반대 투쟁에 앞장 선 단체는 ‘민간인권전선’이었다. 이 단체는 단일 시민사회단체가 아닌, 홍콩내 48개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연합회다.


홍콩의 시민운동은 2002년과 2003년 전후로 나뉜다. 홍콩인들은 투쟁의 방법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그것을 가져다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 홍콩에서 벌어진 우리 농민들의 투쟁이다.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를 반대코자 홍콩에 간 농민들은 삼보일배 등 처절한 저항을 몸으로 보여줬다. 당시의 사건은 홍콩 시민사회에 작지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이를 차용해 홍콩인들은 2010년 베이징-홍콩간 고속철도 건설시 홍콩 북쪽 마을 철거 반대 운동 과정에서 삼보일배 및 입법회(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 포위 활동을 폈다.

사진=김양균의 코드블랙


2012년 우산혁명부터 청년들이 시민운동 전면에 나섰다. 특히 학생들의 참여가 높았는데, 조슈아 웡도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앞서 조슈아 웡은 ‘국민교육’이란 이름의 중국식 민족교육 반대 투쟁을 이끌며 주목을 받은 인물이었다. 야당 의원들을 비롯해 홍콩 행정수반 직선제 요구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당시 79일 동안 주요도로를 점거하는 투쟁이 이어졌고, 의료진 등이 자발적으로 시위대 부상을 치료하는 등 자발적인 봉사활동도 늘었다. 그러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아댄 것도 이때부터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홍콩 젊은이들이 베이징의 이념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우산혁명은 미완에 그친 민주화 운동으로 기록된다. 베이징이 홍콩의 선거에 손을 대려던 시도는 좌절시켰지만, 시위대 내부 갈등 등은 투쟁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2019년 초까지 시민운동은 활력을 잃고 있었다.


다시 불을 붙게 만든 것은 홍콩인이 대만에서 연인을 살해한 살인사건 때문이었다. 대만은 홍콩에 이 살인범을 인도하라고 요청했지만,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홍콩 범죄인의 외국 송환을 쉽게 하려는 범죄인 인도 법안은 여러 반대에 직면했다.


당시 중국과 홍콩은 범죄인 인도협력을 맺고 있지 않았다. 중국은 의견 표명만으로도 수감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민주주의를 경험한 홍콩인으로선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송중 조례에 대해 홍콩인들은 홍콩 사법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중국에서 과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지도 그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홍콩내 활동 중인 중국인권운동가의 중국 인도는 여러 인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2019년 2월 정부가 조례 통과를 추진하자 민간인권전선은 저지 운동을 폈다. 1차 시위에는 1만 명이, 2차에는 13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2019년 4월 25일 법원이 우산혁명을 이끈 지도자 3명을 수감 결정은 “복종하면 체포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홍콩인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입법회의 조례 통과를 저지코자 5월과 6월초까지 저항이 계속됐다. 그리고 운명의 6월 9일 100만여 명이 거리로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가 조례 통과를 밀어붙일 기세를 보이자, 시위의 방향도 바뀐다. 평화시위 대신 수업거부, 파업, 의회 포위 등을 시도한 것이다. 경찰의 진압도 이때부터 폭력적인 방식으로 변했다.


우산혁명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집회 참여자간의 단결도 더욱 단단해졌다. 집회에 중국 이민자들의 참여율도 높았다. 나는 2019년 방한한 민간인권전선의 얀 호 라이 부의장에게서 다음의 말을 들었다.


“우린 한국인이 집회에 참여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주길 바랍니다. 한국 언론은 집회 과정에서의 폭력(시위대와 경찰의)보다 이번 운동의 진정한 원인이나 함의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을 한국사회에 제대로 알려주길 바랍니다.”


이어질 타임라인은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앞으로 전할 ‘브로큰 시티’ 연재는 2019년 치열했던 홍콩 민주화 운동 현장의 단편적인 기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얀 호 라이의 당부처럼 그들의 저항에 대한 맥락을 함께 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음을 덧붙인다.


사진=김양균의 코드블랙


홍콩, 2019년 6월~2022년 9월


2019년 6월 16일 홍콩 경찰이 범죄인 인도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강경 진압하자 이날 20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국제엠네스티는 2019년 6월부터 2020년 3월 5일까지,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 19발, 최루탄 1만5972발, 고무탄 1만10발을 발포했다고 발표했다. 2019년 6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체포된 사람은 9000명 가량이었다.

2020년 6월 30일 중국 전인대에서 발의한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됐다.


2020년 7월 1일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첫 날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법 반대 시위자 370명이 체포됐다.

2020년 7월 6일 평화 시위를 벌이던 집회에서 8명이 체포됐다.


2020년 7월 30일 총 12명의 친민주파 총선 후보가 선거 출마 자격을 빼앗겼다. 홍콩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들었다. 또 홍콩 경찰은 학생 네 명이 SNS에 올린 포스팅을 문제 삼아 이들을 체포했다.


2020년 7월 31일 홍콩 정부는 코로나19를 이유로 그해 9월 국회의원 선거를 1년 연기했다.


2020년 8월 10일 홍콩 언론사 애플 데일리의 편집장 지미 라이를 비롯한 관계자 등 7명이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2020년 9월 6일 국회의원 선거 연기 결정에 시위대가 거리로 나오자 경찰은 강경 진압했다.


2020년 9월 24일 조슈아 웡과 구세유가 체포됐다. 복면금지법 위반 혐의였다. 복면금지법은 시위에서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다 적발되면 징역 1년형 또는 2만 5천 홍콩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다.


2020년 11월 11일 중국 전인대는 ‘애국을 하지 않는’ 홍콩 국회의원의 자격 박탈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홍콩에서 4명의 국회의원이 의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야당 의원 15명은 집단 사임했다.


2020년 12월 2일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초우, 이반 람이 징역형을 받았다. 2019년 시위 참여 혐의로 인한 재판부 판결이었다.


2020년 12월 7일 홍콩중문대에서 열린 시위 참여자 8명이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2021년 1월 6일 50여명의 홍콩 민주화 인사들이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2021년 2월 4일 홍콩 학교를 대상으로 한 국가 보안 지침이 발표됐다. 교내 정치 활동 중단과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서적과 수업자료 폐기가 골자였다.


2021년 6월 3일 홍콩 정부가 매년 열리던 천안문 사태 추모 촛불 집회를 금지했다. 집회 참여자는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해질 수 없고 투표권이 박탈당했다.


2021년 6월 23일 홍콩 언론사 애플 데일리가 폐간됐으며 직원 다수가 체포됐다.

2021년 7월 홍콩 정부는 홍콩인 통 잉킷에게 분리 독립 선동과 테러 행위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2020년 7월부터 2021년 7월말까지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된 사람은 138명이 넘었다.


2021년 12월 13일 홍콩 정부는 인권 변호사 초우항텅이 전년도 6월 천안문 사태 추모 촛불집회에 참가한 것을 문제 삼아 징역형을 선고했다.

2022년 1월 4일 홍콩 정부는 초우항텅이 2021년 6월 SNS에 천안문 사태 관련 포스팅을 한 것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2022년 7월 1일 전 보안국장인 존 리가 캐리 람의 뒤를 이어 홍콩 행정장관에 취임했다. 존리 신임 행정장관은 홍콩 기본법 23조 입법 추진을 암시했다.


2022년 9월 홍콩의 언어치료사 5명 아동서적 출판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대중 선동 혐의를 받았다.


■글 싣는 순서

브로큰 시티

브로큰 시티: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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