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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30. 2022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2부-끝. 레프트 비하인드


매년 팔레스타인에서는 10월부터 11월까지 올리브 수확이 이뤄진다. 콩알만 한 올리브를 수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무 아래에 비닐이나 천을 깔고서 열매를 따 모은 후 포대에 담으면 된다. 오롯이 사람의 손으로만 가능한 노동이다. 이렇게 수확한 올리브는 세척을 거쳐 착즙되는데, 갓 뽑아낸 올리브 기름은 풋내가 나면서 약간 매콤하다.


올리브 수확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중요한 수입원이다. 올리브 나무 한그루가 제법 열매를 맺으려면 최소 5년이 걸린다.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생산하는 올리브의 양은 대략 5킬로그램 가량이다. 올리브 1킬로그램에 1000셰켈(약 40만원) 가량이니 올리브 나무 한 그루에서 200만원의 수입이 생기는 셈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인은 올리브 수확철마다 근심이 많다. 그때마다 인근 이스라엘 정착촌(settlement)의 정착민들이 올리브 나무를 불태우거나 농부들을 공격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방어하기도 어렵다. 정착민 뒤에는 이스라엘군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꼼짝없이 제자리에서 피땀이 서린 올리브 나무가 불타는 것을 바라봐야만 한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Nablus in West Bank) 인근 부린마을(burin village)에서는 2022년에만 1500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정착민의 공격으로 유실되었다. 2019년 처음 부린마을에 방문했을 때 만났던 갓산 나자르(32) 활동가를 두 번째 본 것은 그로부터 삼년이나 지나서였다. 그 사이 갓산은 결혼을 했고, 감옥에도 다녀왔다. 그는 정착민의 공격을 영상으로 기록했다가 이전에도 징역을 살았다.


by 갓산 나자르


올리브 수확철이면 전 세계 국제인권활동가들과 언론인들이 팔레스타인 농부들을 도와 수확을 하는 이유는 단순한 체험이라기보다는 공격을 막아내는 연대 활동으로써의 의미가 더 짙다. 나는 2022년 10월 10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Nablus in West Bank) 인근 아씨라 알 카불리야(Aseera al-Qabliya) 지역에서 영국 등 국제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일손을 거들었다.


땀 범벅이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올리브를 따고 있으려니 함께 간 현지인들은 불을 피워 커피와 차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농땡이를 치고 있었다. 사실 올리브 수확은 현지인들에게 축제나 마찬가지다. 젊은 친구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쁘고 나이 지긋한 현지인들은 박수를 치면서 올리브를 담아두기 위해 가져다 놓은 양동이를 두드리며 놀았다. 흥이 나 춤을 추는 이까지 있었는데, 뼈 빠지게 일을 하던 나는 내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은 “사우스 코리아 컴온”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함께 놀자고 손짓했다.


부린마을의 갓산은 잘 웃었다. 그는 웃음이 저항이라고 했다. 올리브 수확을 하며 만난 이들도 노래와 춤으로 저항을 하고 있었다. 그걸 모르고 나는 땀만 한 바가지를 흘렸다.


by 코드블랙


<뜻밖의 세계, 팔레스타인> 연재는 2019 시작해 2022 말이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다. 보건의료의 시선으로 팔레스타인 분쟁을 조명한다는 거창한 목표가 연재에 녹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의학기자로써 굳이  험지를 갔어야 했냐는 힐난에도 꿋꿋이 삼년을 밀어붙인 것은 그들의 분쟁사에 무지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즐거웠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현지 출장 이후 부랴부랴 연재 2부를 마무리 짓느라 퍽 고생을 했다. 연재에는 취재를 하며 느낀 감정과 고민을 함께 담으려 했다. 사람냄새를 넣고도 싶었지만, 글쓴이의 고민과 감정을 독자들이 함께 느끼길 바라서였다. 거대한 분쟁의 한복판에 뚝 떨어진 남자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by 코드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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