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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02. 2024

검문소에서 애낳는 팔레스타인 엄마들 [21]

생존자들 프로젝트-2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체크포인트(검문소)에서 출산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이스라엘 정부의 통제 장치로써 검문소가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오전 나는 베들레헴의 ‘검문소 300’ (Checkpoint 300 in Bethlehem)에 있었다. 2005년 만들어진 검문소 300은 이스라엘군의 주요 검문소 가운데 하나다. 검문소 300 입구에는 본보야지(Bon Voyage, 좋은 여행이라는 프랑스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그렇지만 결코 검문소300은 좋은 여행의 관문이 아니다. 한 명씩 통과할 수 있는 보안회전문과 성인 세 명이 나란히 지나기 어려운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로 혼잡함과 긴 대기시간으로 이곳은 악명이 높다. 


한 명밖에 통과할 수 없는 철로 만들어진 보안회전문을 통과하면 L자형의 경로로 만들어진 통로가 15~20미터 가량 이어졌다. 시멘트 바닥 위로 벽의 회색 페인트는 먼지와 검은 얼룩이 있었고, 다시 붉은 페인트가 통로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층높이가 높고 진행하는 방향의 오른쪽에 설치된 창문들은 복도를 이어지며 설치돼 있었지만 잠겨있었다. 통로를 지나면 넓은 대기 공간이 있었고, 여기에서 두 번째 보안회전문을 지나야 검문소 300을 마침내 통과하게 된다.


이스라엘 매체인 하레츠는 “검문소 300에 도착하는 순간 하루를 잃어버리게 된다”며 “밀집한 인파가 콘크리트와 금속 막대로 둘러싸여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한다”고 묘사했다.

사진=김양균

이스라엘 정부는 대기 시간 감소를 위해 생체 인식 판독기를 설치하는 등 시설 개선을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이곳에 대한 비판은 비단 시설의 열악함 때문만은 아니다. 주된 이용자가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태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주요 도로에 설치한 이동 제한 시설들은 ▲검문소(checkpoint) 71개 ▲지역별 부분 검문소(partial checkpoint) 108개 ▲개방 철문(road gate) 78개 ▲폐쇄 철문(road gate) 76개 ▲방어벽(road block) 68개 ▲흙더미(earthmound) 86개 ▲흙벽(earthwall) 20개 ▲도랑(trench) 3개 ▲도로장벽(road barrier) 49개 ▲기타 34개 등 총 593개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과의 긴장 정도에 따라 관리 지역을 빠르게 폐쇄하거나 개방한다. 그렇게 되면 도로는 극심한 정체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동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도로에서는 더 엄격한 검문이 실시되는데, 특별 허가를 받은 팔레스타인 보행자만 통과가 가능하다.

사진=김양

문제는 동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에 의료기관이 집중 분포해 있다는 점이다. 임산부를 비롯한 응급환자들은 검문소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소위 ‘체크포인트 베이비(checkpoint baby)’는 산모와 태아 모두를 위험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거다. 통행 통제로 인한 의료접근권의 제한은 건강권의 보장을 어렵게 만든다. 팔레스타인 서안지부 나블루스 지부의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 소속 자하니 간호사의 설명이었다.    


“병원까지 거리가 멀고 검문소 때문에 제때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이동의 불편 때문에 여성들이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저희 나름대로 두 달에 한 번씩 이동검진소를 통해 임산부나 유방암 검사를 지원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인사로부터 확인한 나블루스 보건의료 현황은 이랬다. 2018년 기준 나블루스에서 여성 2만2279명이 출산 및 부인과 질환으로 진료를 받았다. 2320가구에서 4614명이 임신을 했고, 5068명이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다. 팔레스타인 미혼 여성들의 부인과 검진 수요는 계속 늘고 있었다.   


소하 나자르   


‘체크포인트 베이비’ 말고도 이동 제한이 팔레스타인 여성에 끼치는 악영향은 더 많다. 이쯤해서 한 팔레스타인 엄마의 사연을 전하려 한다. 소하 나자르, 두 아이의 엄마. 2019년 나블루스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소하 나자르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자녀를 위해 말로 못할 고생을 많이 했다. 그 모습은 내게 깊이 각인되었다.

 

이스라엘 점령 폭력과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낮은 지위와 차별 속에 살아가지만, 수동적인 피해자로 남지 않겠다는 강인함과 모성애, 섬세함, 그럼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 눈빛은 내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김양

소하 나자르의 아이는 자폐증이 있었다. 처음에는 어디가 아픈가보다고 여겼다. 약을 복용시켰지만 나아지지 없었다. 그러다 큰 병원에 찾아갔고, 의사는 자폐 스펙트럼을 진단했다. 소하는 당시의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가슴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것만 같았어요   


잘 알겠지만 팔레스타인은 무슬림 사회이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보수성이 강한 지역에서 장애가 있는 자녀를 부끄러워하거나 쉬쉬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심하면 학교나 전문적인 치료기관에 보내지 않고 집에 가둬두는 일도 있다. 극빈층이 많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장애인을 위한 기관이나 제도도 전무하다.  

 

소하 나자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그녀도 쉬지 않고 일을 해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학교는 소하의 자녀를 쫓아냈다. 학교 관계자는 ‘특수 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소하는 학교와 교사에게 장애학생을 위한 인권 교육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큰 상처를 받았어요. 제겐 너무 소중한 아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니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몰라요.”

사진=김양

자폐 스펙트럼 전문 치료센터에 자녀를 보내려면 예루살렘에 가야만 했다. 이스라엘 거주증을 갖고 있지 않은 팔레스타인 사람은 이스라엘 지역으로 갈 수 없고, 특별한 상황에는 별도의 출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소하는 검문소를 넘기도 전에 억장이 무너졌다.   


“특별 출입 허가 기간도 고작 2주 뿐이에요. 아이를 예루살렘에 보낼 때 체크포인트에 있던 군인은 부모는 갈 수 없고 아이만 보내라고 했어요. 아이가 자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동행을 간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소하는 SNS로 자신의 사연을 전했고, 자폐아 지원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하가 돌보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폐 아동의 수만 100여명이라고 했다. 소하는 내게 예산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런 무력감은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번번이 겪어야 하는 것이었다.  

사진=김양균

나는 소하의 사연을 처음 세상에 전할 때 신문기사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철문이 가로막아도 세상의 전부, 아이를 위해 숱한 ‘소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 후 4년. 나는 더 많은 소하들이 이스라엘이 만든 유·무형의 검문소 때문에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일을 여러 번 목격했다.




팔레스타인의 생존자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속에서 일어나는 직접적이거나 부수적인 피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무능과 부패, 웨스트 뱅크에서 횡행하는 젠더 폭력. 이 모든 것이 만들어 내는 '대환장의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팔레스타인의 생존자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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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양균

의학기자이다. 5·18 민주화 항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홍콩 시위 사태 등 보건의료 관점에서 국제 분쟁과 사회적 갈등을 조명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대표적으로 <5·18 시민 곁의 그들>, <팔레스타인 르포…분리된 삶, 부서진 꿈>, <감염병 공습 국경은 없다>, <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 <벽: 너와 나를 나누는> 등을 보도했다. 전남대병원 5·18 보도 공로상, 한국과학기자협회 과학언론상 올해의 의과학취재상,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인터넷신문 대상,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프롤로그. 팔레스타인 여성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간호사도, 기자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2. 빵 없는 밤, 배고픈 아이는 울고

3. 검문소에서 애 낳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사연

4. 침묵 강요받는 젠더폭력 피해 팔레스타인 여성들

에필로그. 제3의 눈

부록. 레프트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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