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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토리

왜 당신 맘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건데요?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8월 25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향해 질의를 시작했다.


여성가족부가 동성애를 미화·조장하고
남녀 간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도서를 초등학교에 배포했다


김 의원은 2019년 나다움어린이책에 선정된 ‘우리가족 인권선언’ 시리즈 중 ‘엄마 인권 선언’과 ‘아빠 인권 선언’의 일부분을 문제 삼았다.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원할 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권리”란 부분과, 두 여성과 두 남성 커플이 아이들을 돌보는 그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책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 속의 “아주 비슷한 사람들이 사랑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남자 둘이나 여자 둘” 부분을 두고 다음처럼 주장했다.


“동성애와 동성혼이 ‘권리’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 의원이 “교육부가 실태를 조속히 파악해 바로잡으라”고 질타하자, 유 장관은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비치돼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나 사서가 별도 관리하게 되어 있다. 학교와 책 비치 현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신속히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바로 한 발 물러섰다. 김 의원은 관련 내용을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배포했다. 기사가 쏟아졌다.


굳이 김 의원이 교육부를 ‘염려’하지 않아도 교육부는 이른바 ‘성교육 표준안’을 통해 학생들을 이미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 작년 9월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대한민국 본심의 자리. 성교육에 LGBT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킬 계획이 있느냐는 질의에 우리 교육부는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러한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은 배타성과 정보권의 차단을 이유로 국내외 인권단체의 비판을 받아왔다. 관련해 지난 2015년 교육부의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는 성적지향 용어 사용을 금지하고 성소수자인권이 전면 삭제됐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성교육 표준안에 동성애 언급 자체를 배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제기해왔다. 젊은 성소수자층을 차별하고 교육, 정보 및 건강에 대한 이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국제인권규약과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자는 인권조사회의 결의안에 서명했었다.


지난 2010년 교육권에 대해 유엔 특별보고관은 성생활과 건강과 교육이 ‘상호의존적인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한 개인의 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 포괄적인 성교육을 받을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 여기서 포괄적인 성교육은 다양성을 포함하는 형태여야 한다.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본이의 섹슈얼리티를 대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엔인구기금의 권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관은 포괄적 성교육이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해야 청소년들에게 성별·민족·인종·성적지향과 관계없이 존중과 공감을 보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다수의 유엔 기구들은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확·포괄적 성교육과 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차 “성건강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폭넓은 이해 없이 정의되거나 이해되거나 가능할 수 없으며, 이는 성건강과 관련된 주요 행동과 결과를 가져온다”고 밝힌 바 있다. WHO는 섹슈얼리티에 대해 ‘성, 성별정체성과 역할, 성적지향’을 포함시켰다.


지난 2017년 서울특별시교육청의 ‘학생의 성 권리 인식 및 경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적 지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은 전체의 13.3% 가량 되고,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 및 교육에 대해 설문에 참여한 전체 학생들 중 33.4%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여가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은 아이들이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성인지감수성 등을 다룬 책을 선정해 전국 초등학교와 도서관에 책을 배포하는 사업이다. 다시 말해 교육부의 보수적인 성교육을 보완하는 사업이라는 말이다.


여가부는 ‘나다움책’이 이미 2010~2019년 출간됐던 1200여 종 중에서 134권을 선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선정도 초등 교사, 아동청소년 문학가 및 평론가, 그림책 작가 등 전문가들이 ‘자기긍정, 다양성, 공존’을 기준으로 9차례의 심사를 거쳐 진행됐다. 김 의원이 문제 삼은 책 7종 총 10권은 덴마크·스웨덴·프랑스·호주·일본 등지에서 1970년대부터 출간된 것들이다. 아동인권교육 자료로 활용되거나 국제엠네스티 추천, 세계 최고 권위의 아동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도서들이었다.


김병욱 의원의 문제제기가 일파만파 커지자 교육부에 이어 여가부도 26일 오후 “일부 도서의 문화적 수용성 관련 논란이 되고 있음을 감안하여 해당 기업과 협의하여 해당 도서들을 회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혐오의 정서를 건드리다


김 의원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 말미 “성소수자의 자기 의사에 따른 결정을 존중하고 이로 인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구절을 달아뒀다. 그의 지적이 문화적 수용성 측면의 접근이더라도 비판의 지점은 남는다. ‘동성애 조장·미화’, ‘초등생 성관계 권장’ 등 자극적 문구를 달아 배포한 보도자료가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건드린 측면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관련 자료는 인터넷 맘카페 등으로 확산되며 논란을 키웠다.


국회의원의 말은 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피감기관인 교육부를 움직이고, 여론을 형성하고, 다시 여가부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줏대없는 중앙부처의 대처는 둘째치더라도 현재의 결과를 초래한 김 의원이 ‘액션’을 하기 전, 다양성을 포함한 성교육을 권장하는 국제사회의 기조와 33.4%에 달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과연 얼마나 고려했는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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