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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May 25. 2024

사실은 영어 울렁증 남편 덕에 호주로 온 사연

영어 못하는데 호주로 이민을?

가끔 주말 아침에 

철학자 철무벽님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뭔가 삶의 소소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요.

이 맛에 남편이랑 사는 거 같아요.



오늘 포스팅은

남편과 나눈 대화를 

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본론부터 들어가면 

이해를 못 하시는 분들도 있을까 봐

약간의 배경도 알려드릴게요.





수니와 철무벽 호주로 온 사연


남편이랑 결혼했을 당시로 되돌아가 보면

신랑감으로 조건은 굉장히 열악했거든요.

돈으로만 따지면요.

30대 중반인데 모아놓은 500만 원이 전부이고

도와줄 집안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사랑으로 결혼했는데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파헤쳐 보면

첫 번째가 남편의 귀여운 외모,

두 번째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적인 매력,

세 번째가 유머러스 태도,

네 번째가 알뜰한 생활습관,

다섯 번째가 따스하고 인간적인 마음.

이런 면모에 끌린 거 같아요.


경제적인 것은 내가 책임지면 된다,

뭐 이렇게 생각한 거 같아요.


그러다가 결혼하고 신혼여행 갔다 와서

그 달에 직장에 사표를 냈어요.



진짜 경제적인 건 내가 책임질

상황이 펼쳐진 거죠.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네요.


그나마 남편이 대기업 사원이라서

같이 벌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안전장치마저 싹 부숴버리는

우주의 놀라운 신비.


아무튼 그래서 남편은 백수생활을 하고

저는 직장을 다니며 가장을 했죠.

금방 남편이 재취업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신기하게도 재취업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이나 환경이 펼쳐지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남편은 5년이라는 시간을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열하일기 박지원 선생님처럼

사색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의 사색에 결론은 호주로 이민 가자.


뭐 생뚱맞지만

충분히 예상되는 시나리오인 거죠.


왜냐하면 호주 워홀에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 만나는 날 소개팅에

호주 워홀 이야기를 막 해줬거든요.

그리고 신혼여행도 호주 시드니로 다녀왔고요.


남편은 한국을 탈출해서

호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 거죠.


아이디어는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그 욕망을 실천하려면

뭔가 현실에서 과정을 밟아가면서

결과를 이루어내야 하는데...


남편에게는 그럴 수 있는 

조건이나 요소가 하나도 없었어요.

다만 호주로 가고 싶다는 

뜨거운 갈망이 존재했을 뿐.


그래서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죠.

호주로 이민 가자고.



그걸 순순히 수긍할 아내가 어디 있나요?


가고 싶은 사람이 

영주권을 따서 가는 것이 정석 아닌가요?


남편은 영어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포기한 영포자이고

호주로 이민에 적합한

어떤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았죠.


반면 저는 호주로 이민 갈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죠.

IT 개발자 경력이 있었고

영어도 그냥 닥치면 하는 스타일이었고요.

그러나 호주로 이민 갈 생각은 없었죠.


남편은 설득했지만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고 버티었죠.

한국에서 IT 개발자로 

돈 잘 벌고 그럭저럭 살고 있는데,

왜 낯선 곳에 가서 고생을 합니까?

할 이유가 없죠.


호주 워홀 생활에서 느낀 것도

호주는 여행 가기엔 좋아도 

정착해서 살려면 

쉽지 않다는 걸 체험하고 왔는데.


그런데...

남편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제 마음이 180도 바뀌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저 레볼루셔너리 로드 영화 한 편을 봤는데

남편을 위해 호주로 가기로 결심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큰 변화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일어나는 거 같아요.

지극히 사소한 어느 지점에서요.


아무튼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이런 배경을 좀 가지고

남편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세요.





수니와 철무벽 주말 모닝 톡


수니: 요새 사주를 공부해 보니 

자기가 한국에서 공무원을 했으면 

직장 생활을 잘 했을 거 같아.


사주를 알았으면 

적성을 찾아서 공무원 했을 텐데.

무식상 무관성 사주이니까.


영어 공부를 좀 해서 

공무원 합격했으면...

어떤 삶이 펼쳐졌을까?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 같은데.

그러면 호주로 이민은 안 왔으려나?


철무벽: 잘 살고 잘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호주에 있을까'라는 

결론만 놓고 봐라 이거야.


지금 현재 결론적으로 

호주 이민을 놓고 볼 때

나라는 철무벽이라는 사람이 

영어를 지금보다 좀 잘했다면

결론적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에 살기가 좀 용이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겠지.


하지만 여기에 없을 확률이 높다고. 

결정적으로.


결정적으로만 보면

호주에 안 살 확률이 높아.


왜 그러냐 

한국에서 네 말대로 공무원 됐으면 

여기에 올 일이 없잖아.

그게 인생이 달라지잖아. 


그러면 가치가 일단 달라지는 거지.

추론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냥 결론이 그거여. 


내가 영어를 좀 잘했다고 하면, 

공부를 좀 잘했겠지.

그럼 서울대를 갔겠지.

그럼 서울대를 졸업해서 

조금 좋은 일자리를 잡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쭉 하다 보면은

결론은 여기 호주에 지금 없어.


그럼 인생이 그냥 봐봐. 

A 하고 B는 인생이 달라지는 거기 때문에

비교할 가치가 없어요.


내가 지금 상황에서 영어를 좀 잘했으면 

호주에 와서 조금 적응하는데 좋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거지.


그렇잖아. 

지금 현재 노력해서 

영어를 잘하면 조금 달라질 수가 있겠지.

하지만 학교 다닐 때 

영어를 좀 잘했으면 이런 것은 의미가 없다.


왜 그러냐면 인생이 달라지는데

내가 A 인생을 선택을 하면 

B 인생을 살 수가 없어요.




오묘한 음과 양 인생


남편이 영어 울렁증이 없었으면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했을 것이고

그러면 한국에서 계속 살았을 테니,

지금처럼 호주 이민 올 가능성은 없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더라고요.


남편이 영어를 못 했던 것이

호주에 살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오묘한 삶의 알고리즘.


그리고 또 신기한 게

남편이 영어를 못해서

호주 한인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이제 몇 달 있으면 

만 10년을 채우게 되거든요.



영어를 못해서 

다른 회사로 못 옮겨서

여기를 계속 다닌 거거든요.


이제는 오히려 남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이

저주가 아닌 오히려 축복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우리가 살면서 부족한 것에 대해서

항상 갈증을 가지고

추구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 부족한 것이

오히려 축복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도 무인성이라서 항상 갈구한 것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바랐는데

이건 가질 수가 없는 

신기루 같은 거라는 걸 알아차렸거든요.


사람에게 인정받는 게 아닌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삶으로 살고 싶네요.

그래서 글쓰기 세상에 입문한 게 아닌가 싶네요.


브런치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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