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보내고
여동생은 결혼 후 바로 줄줄이 연년생으로 아들을 둘 낳았습니다. 순했던 첫째 조카에 비해 둘째 조카는 유난히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많이 울었습니다.
첫째조카가 너무 어린 탓에 조리원에서 2주만 채우고 나와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데 둘째 조카녀석이 하도 우니 어른들 눈엔 안타까운 마음이 드셨나 봅니다. 가끔 애가 왜 이렇게 우냐며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는 이상한 말까지 하셨죠. 지나고 보면 신기하게 어른들 말이 잘 맞습니다. 그 아이는 무언가 알고 있었을까요. 사고가 있던 날도 둘째 조카는 그렇게 울었습니다.
워킹맘이었던 저는 늘 퇴근길에 여동생 집에 들렀습니다. 유치원이 끝나면 딸이 아파트 앞 동에 사는 이모 집에 가서 어린 사촌동생과 놀며 저를 기다렸거든요. 저는 염치없이 종일 아들 둘을 돌보고 조카딸 간식까지 챙겨줬을 동생에게 먹을 거 없냐며 저녁까지 얻어먹고 오기 일쑤였습니다.
친정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보다 동생과 잘 맞았습니다. 둘 다 아기자기한 것 좋아하고 알뜰하고 세심했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집안일보다는 늘 공부나 일이 좋았습니다. 딸을 낳고 한 달 만에 모유수유를 하면서 수유 사이사이에 영어수업을 하러 다녔습니다. 자연히 저보다는 동생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던 엄마였습니다.
사고가 있기 며칠 전, 동생이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부탁으로 둘째 아들의 배냇저고리를 불에 태웠다는 거예요. 사주를 보니 연년생으로 둘째를 가지면 안 되었는데 둘째를 가졌고 그럼 딸이었어야 했는데 아들이니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며 아이가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불에 태워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친정엄마는 요즘 세상에 아직도 그런 게 있냐며 괜히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어른들은 그렇게 모두 각자의 믿음으로 가족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냇저고리를 태우는 것도 기도를 하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던 아이는, 딸이었어야 했다던 아이는 그렇게 형과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늘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사고가 있기 전 날,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남편이 갑자기 큰 조카가 보고 싶다며 같이 산책을 나가자고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날도 참 이상했습니다. 한 번도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던 남편이었거든요. 그날 남편은 큰 조카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탔습니다.
남자들이 밖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안 저는 동생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내일 제부가 시댁에 가는데 혼자 보내는 게 안쓰럽다는 동생에게 산후조리 중인데 뭘 가느냐며 집에 있으라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아들 좋아하시는 시아버님께 두 아들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동생은 언니 말을 안 듣고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사고가 있던 날도 저는 여느 때처럼 퇴근 후에 동생네로 갔습니다. 동생은 빨래를 개고 있었습니다. 부엌엔 방금 먹은 듯한 떡볶이랑 순대가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제부가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렀다가 바로 시댁에 갈 예정이라 동생이 저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기에 친정엄마가 사 오신 분식이었습니다. 저는 또 염치없이 남은 분식을 다 먹고 내일 여름휴가 갈 준비를 한다며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각납니다.
그때 제가 일찍 일어나지 않고 더 앉아 있었다면 동생은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울던 둘째 아이를 안아주며 동생에게 방에 가서 좀 쉬라고 했었다면 동생은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까요? 연년생 아들 둘을 보느라 힘들었을 텐데 맛있는 것 좀 먹으라고 저녁을 차려줬더라면 동생을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까요?
엄마는 조금 더 앉아 있다 가시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일어나고 얼마 후 제부가 왔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빨래를 개던 동생이 갑자기 자기도 같이 가겠다며 따라나섰다고 합니다. 엄마도 여전히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때 엄마가 가지 말라고 극구 말렸다면 동생은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까요? 제부가 늦게 출발했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까요? 나비효과처럼 그 생각은 더 과거로 과거로 향하곤 합니다.
내가 그날 더 강하게 말했더라면, 여행을 계획하지 말았더라면, 워킹맘이 아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