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경험의 이유

동생을 보내고

by 실버라이닝

아빠는 등산을 좋아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이셨어요. 출근 전에 산을 오르고 신문을 읽고 한자공부를 하셨죠. 저도 아빠처럼 한자를 공부하겠다고 새벽에 일어났었는데.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한자책을 따라 쓰던 기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칩니다. 비록 그 영화는 하루 만에 끝났지만요.


아빠를 따라 종종 등산을 했는데 모두 힘들지만 따뜻한 기억들입니다. 한 번은 고속버스를 타고 월악산에 가는 길이었어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데 도착지점 한 정거장을 남겨두고 아빠가 갑자기 내리자고 하는 거예요.


버스에서 내린 아빠는 모자를 쓰고 저에게는 우산을 씌워주며 말씀하셨어요.


"비 오는 산길 안 걸어봤지?"


계절이 정확히는 생각나지 않지만 빗방울이 따뜻했어요. 비를 맞으며 그렇게 아빠와 버스 도로를 걸었습니다. 산으로 올라갔을 때도 분명 비가 왔을 텐데 저에겐 아빠를 따라 걷던 그 길만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저를 월악산 산 길 어느 도로로 데려다줍니다.



제가 대학생 때의 일입니다. 영어를 잘 하진 못했지만 좋아했고, 더 잘하고 싶어서 영어연극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1학년때 영문학 수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동아리 선배와 동기들은 제 영어실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외고 졸업생들에 비해 저의 영어실력은 형편없었습니다. 입시 위주로 공부했던 저에게 특히 원어민 교수님의 말하기 쓰기 수업은 정말 곤혹스러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EBS에서 저희 동아리로 촬영을 하러 왔습니다.


촬영 현장을 보러 거의 모든 동아리 회원들이 모였어요. 촬영을 시작하자 PD 님이 원어민의 상대역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선배들이 저를 추천했습니다. 평소에 활발하고 적극적인 저의 모습을 보고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원어민과 대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몇 마디만 하면 되는 장면이었는데,


저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입시 영어에서는 절대 들어볼 수 없는 표현들이었죠. 그렇게 당황해서 '음...'만 연발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저를 홱 잡아당겼습니다. 저는 끌려들어 오다시피 하며 다시 무리에 앉아 다른 친구가 원어민과 대화하는 모습을 구경했습니다.


그날 밤 술을 엄청 마셨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시작된 술주정은 유치하게도 우리 집이 가난해서 내가 유학도 못해보고 외고도 못 가서 이렇게 된 거라는 하소연으로 끝이 났죠.


다음 날 동아리 방에 가기도 싫었지만 그래도 가야죠 뭐. 갔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이 위로를 건네더라고요.


"나도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나는 외고 나왔는데 영어를 너무 못해서 어디 가서 외고 나왔다고 말을 못 하겠어. 나도 어제 술 먹고 뻗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은 엄청난 명문입니다. 어찌나 큰 힘이 되던지 전날의 부끄러움을 씻은 듯 털어내고 다시 저만의 즐거운 영어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졸업 후 15년 동안 어린아이들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어요. 나중엔 원어민 강사가 20명이나 있는 영어유치원에서 교수부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내 그날의 저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배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몰라도, 틀려도 괜찮다고 해주었어요.


"우린 한국사람인 걸. 선생님도 예전에 그랬어."


요즘 저의 취미는 등산입니다.


처음엔 동네 작은 뒷산만 다녀와도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뒷산으로 만족이 안 되는 거예요. 조금씩 더 높은 산, 더 험한 산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성공한 경험이 저를 더 높은 목표로 향하게 해 준 거죠.


해봤으니까.
내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제가 사는 안양은 관악산이 가깝습니다. 관악산 등산로는 인덕원, 과천, 사당, 서울역 등 여러 곳으로 뻗어있고 능선이 많아 등산의 재미를 느끼기에 적합해요. 숨이 턱 막히고 이제 정말 죽겠구나 싶을 때 능선이 나타나서 산 정상을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거든요. 그리고 좀 살만하면 마치


이제 됐지?


하며 묻는 것처럼 다시 힘든 구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정상에 다다를 무렵이면 가장 험한 구간이 기다려요. 그런데 다 오르고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면 이제 저는 그 산보다 높은 곳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가끔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불안하고 조급함에 힘들 때 산행의 순간들을 떠올려요. 힘든 구간이 지나고 찾아오던 능선. 숨이 턱 막히는 구간을 지나서 맛보았던 정상의 맛.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워오듯, 힘들수록 정상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힘을 내봅니다.




즐거운 경험은 제가 무기력해지려고 할 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었어요.


맞아. 그때 재미있었지. 다시 해볼까?

창피했던 경험은 저를 겸손하게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맞아. 나도 그때 참 창피했었지. 너도 그렇겠구나.

성공의 경험은 제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 조급함을 덜어 주었습니다.


맞아. 그때 결국 잘 됐었지. 이번에도 잘 될 거야.


그런데 2012년 여름 교통사고로 여동생과 제부, 조카 두 명을 하늘나라로 보낸 아픈 경험은 저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요?




생각 보면 경험을 할 때마다 세상이라는 골목에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결혼한 사람들의 세상이 보였습니다.
딸을 낳고 나니 딸을 키우는 사람들의 세상이 보였습니다.
아들을 낳고 나니 아들을 키우는 사람들의 세상이 보였습니다.
남자들의 세상도 조금 보였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죽고 나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세상이 보였습니다.


그들이 겪었을 일상의 고통들이 보였어요.

신체적 경제적 문제부터 수시로 찾아오는 심리적인 고통까지.

그 모든 걸 매일 겪어내며 하루하루를 살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을 많은 사람들의 세상이요.


누구에게나 겉으로 봐선, 잠깐 봐서는 알 수 없는 고통들이 있음을 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죠.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당신도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도 저도 이렇게 잘 살아내고 있으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잘 살아보면 어때요?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즐거웠던 경험과 창피했던 경험, 성공의 경험들처럼 아픔의 경험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해 줄 거예요. 더 깊고 곱게, 아름답고 강하게 남은 생을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로 해요.



에필로그


정화에게,

언니야.

언니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정말 살기가 싫더라고.

아침에 눈뜨는 게 싫었는데 엄마는 자꾸 아프지, 준희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지,

형부는 어쩔 줄 몰라 눈치만 보지.

어쩔 수 없이 그냥 하루하루 살다 보니 어느새 11년이 지났네.


첫 해에는 추모공원에 가는 길도 너무 힘들고

가서 네 사진 보는 것도 어려워서 복도에만 서 있다가 왔는데

이젠 그래도 가서 유골함 앞에서 인사도 하고 기도도 하고 온다.


사람이 죽으면 정말 어떻게 되는 건지

처음엔 너네가 정말 좋은 곳에 가서 잘 쉬고 있는 건지

꿈에라도 소식을 듣고 싶었는데

도저히 알 길이 없어서

지금은 그냥 그쪽 세상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해.

내가 나중에 가서 만나면 그때 알게 되겠지 뭐.


처음엔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얼른 늙고 빨리 죽고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또 살다 보니 여기서 조금만 더 살다가 가야 되지 싶어.


준희가 정말 멋지게 컸어. 예고 가려고 준비 중인데 아마 널 닮았나 봐.

너도 미대에 가고 싶어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가서 너무 슬펐지.

찬희는 정말 귀여워. 우리 조카들이랑 같이 있으면 참 잘 놀았을 텐데.

찬희가 태어났을 때 준희가 그러더라. 우리 조카들이 다시 온 거라고 생각하고 잘 키우자고.


정화야, 언니는 아직도 네 이야기만 하면 어린아이처럼 펑펑 운다.

지금도 우느라 앞이 잘 안 보여.

그래도, 매일 운동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일하고 가끔 여행도 가며

그렇게 좀 더 살아볼게.

그리고 너 만나러 갈게.


참, 너희 집 청소하기 전날 꿈에 제부가 나왔어.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서 마시더라고.

특유의 웃음을 생글거리며 어찌나 시원하게 마시던지.


천국에도 맥주가 있었으면 좋겠다.

주말이면 너랑 제부랑 식탁에 앉아 마시던 그때처럼

둘이 맥주 한 잔 하며 나를 기다려주면 좋겠다.



2023년 3월 8일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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