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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nity Lee Feb 17. 2022

야동 보는 엄마

"어! 이거 내가 본 야동인데!"


내비게이션 화면이 켜지자마자 고1 아들이 화들짝 놀랐다.

차에 타서 시동을 걸자 내비게이션이 스마트폰과 자동으로 연결되면서 가장 최근에 보았던 동영상 제목을 화면 위에 작은 글씨로 보여주었다. '오르가슴...'


'짜~식! 남자라고...'


웃으려던 찰나, 당황한 눈알이 저절로 한 바퀴를 구른다.

지금 내비에 연결된 건  아들 폰이 아니라 내 폰이다.

제목도 어제 내가 스마트폰으로 본 야동 제목인 것 같다.


'아, 내 폰이라는 걸 눈치채면 어떡하지. 끝까지 자기 폰인 줄 알면 좋겠는데.'


눈 알이 한 바퀴 더 구르기도 전에 아들이 물었다.


"어, 이거 내 폰 아닌데! 엄마 폰이랑 연결되어있는데! 엄마, 어젯밤에 야동 봤어?


난감하다.


"정말? 내 폰이랑 연결된 거야? 아, 그러네... 내 폰이랑 연결됐네... 내가 어제 페북을 보다가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신문 기사를 봤는데 거기 이상한 성인 광고가 뜨더라고... 잘못 눌러져서 당황했는데... 그 기록이 남았나 보다..."


거짓말이 술술 풀려나왔다.

아들과 성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하는 엄마라고 자부했는데, 야동 보던 걸 들키고 나니 오랫동안 단련된 거짓말 연륜이 빛의 속도로 순발력을 발휘했다.


아들은 이 거짓말을 믿는 건지, 아니면 속은 척 해주는 건지 내 폰에 다른 영상을 찾아서는 내비게이션 화면에 다른 제목이 나오게 조작해주었다.


"차에 다른 사람이 타서 이걸 봤으면 어쩔 뻔했어?"


야동 본 걸 감추고 내비게이션에 다른 영상 제목이 나오게 하는 팁도 전수해주었다.(사실 나도 알고 있는 팁이라서 야동 본 후 들키지 않도록 폰 마무리를 잘했는데 이번에는 잊고 말았다.)

 

처음 듣는 팁인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애들 아빠와 잠자리를 한 지도 1년 여가 지났다(고 한다). 나는 몇 년쯤 지난 것 같은데 뭐든지 기록해두는 애들 아빠가 수첩에 적어둔 날짜를 보니 그렇더라고 한다.


남편과의 섹스는 정말 재미가 없다. 대화도 아니고 놀이도 아니고... 자기만족을 위해 내 몸을 잠깐 빌려 쓰는 느낌이다. 너무나 단조롭고 1도 기대되지 않는 섹스.


대학 시절 영국 어학연수 때 만났던 스티븐이 생각난다. 런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말을 걸어왔던 영국 남자다.

'Do you have time?'이라고 묻는 부담 없는 표정에, 몹시도 외로웠던 나는 영국 친구 사귄다는 반가움에 yes라고 대답하고 짧게 대화를 나눈 후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런던 날씨답지 않게 모처럼 화창했던 다음 날, 우리는 파크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함께 보았다.


"네 엉덩이를 쳐다보아도 돼?"

 "조금 터치해봐도 괜찮아?"

라고 물어보고는 끈적끈적한 손길로 한 시간을 넘게 엉덩이와 다리를 구석구석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취해 나는 그 남자의 목을 휘감아 안고 잔디에서 뒹굴었다.

그의 손을 잡고 그에게 안겨서 걸었던 탬즈강변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그대로 생생하다.

그도 결혼을 하고 아내가 있을까.


그리고 그 남자도 떠오른다. 대학 때 한 해 선배, 키가 크고 목소리가 깊었던 남자.

한 해 선배라지만 내가 재수를 한 덕에 동갑인 남자다. 그의 이쁨을 받으려고 깍듯이 선배라 부르며 따라다니고 친하게 지냈다.

그 남자의 큰 키와 긴 목, 군살 없는 바디라인이 생각난다.

그 남자와 섹스를 해보았다면 어땠을까.


작년 어느 날 옷걸이에서 빨아야 할 옷들을 걷어내다가 애들 아빠와의 마지막 섹스 때 입었던 셔츠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의 체취가 셔츠에 들러붙어 역한 냄새가 났다. 세탁기에 돌려서 다시 입어도 그 냄새는 남아 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 샤워한다는 사람 몸에서 무슨 이런 냄새가 나지.'

그 이후로 애들 아빠와 같이 자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손을 뻗어 야동을 헤집는다. 이것저것 보다 보니 애들 아빠의 섹스 스타일이 어떤 동영상과 유사한지, 애들 아빠가 어떤 야동을 즐겨 보는지도 짐작이 된다. 내용 없는 껍데기 섹스...


과거 남자들과의 섹스가 생각난다. 그 끈적끈적한 터치가 그립다. 미래에라도 멋진 누군가를 만나 멋진 섹스를 할 수 있을까. 난 열렬히 키스하고 정성껏 어루만지는 게 좋던데...


구미에 딱 맞는 야동을 찾아내면 여자 주인공마저 부럽다.


불꺼진 방에서 화면을 응시하며 끈적임에 빠져든다.


그리고 하는 결심... 

이젠 아이들에게 들키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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