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마운틴 카페의 기묘한 바리스타

by Angela 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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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은 소극장 무대에 놓인 세트 같은 느낌이었다. 성냥갑 같은 직사각형 공간의 대부분은 바가 차지하고 있고, 안쪽 구석에 2인용이 테이블이 하나 보였다.


"어서 오세요."


바 끝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운터가 있을 법한 자리에서는 앤티크 턴테이블이 돌아가고 있었다. 지은은 메뉴가 눈에 띄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빨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지은은 목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주문을 했다.


“많이 더우시죠?”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가왔다. 지은은 흠칫 놀랐다. 연미복을 입은 백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얼굴은 흑백 사진처럼 창백했다. 할리우드 무성영화 스크린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모습과 완벽한 대한민국 표준어 발음의 조합이 기묘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사람이 한국인이 아닐 이유도, 한국어를 지은보다 잘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말이다.


“더우시겠지만, 아무래도 얼음과 섞이면 커피 향이 제 역할을 못하거든요. 잠깐 몸을 식히고 나서 드립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일단 편한 데 앉으셔요. 시원한 물 한 잔 먼저 드릴게요.”


지은은 안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남자가 가져다준 얼음물을 한숨에 들이켰다. 가슴속이 뻥 뚫렸다. 카페는 좁고 길어서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 맞은편 벽에는 커다란 사진 액자가 걸려있었다. 눈 내린 공원 풍경이다. 눈송이가 내려앉은 나뭇가지들은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나무 위에는 파랑새 한 마리가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다. 눈을 맞으며 걷고 있는 사람들은 기분 좋게 캐럴을 따라 부르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공원 복판에는 커다란 눈사람이 서있다. 손을 꼭 잡은 연인이 눈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은은 어느새 웨스트마운틴 카페의 계절에 어긋나는 분위기에 녹아들고 있었다. 턴테이블에서는 여러 가수들의 <Winter Wonderland> 커버가 차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Winter Wonderland> 컴필레이션 음반이 나왔나? 그런 음반이 있다면 지은이 놓쳤을 리가 없다. 한여름인데 방금 출시되었을 리도 없고 말이다. 어쩌면 빙글빙글 돌고 있는 턴테이블은 장식용이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은 스트리밍인가? 저 사람도 지은처럼 수십 가지 버전의 <Winter Wonderland>를 모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든 걸까?


어쨌거나 빙 크로스비 버전이 끝나고 프랭크 시나트라 버전이 시작될 때쯤엔 마르면 버리려고 빨지 않고 놔둔 너덜너덜한 행주 같던 기분이 방금 건조기에서 꺼낸 수건처럼 보송보송 해졌다. 신기하게도 얼음 가득 든 아메리카노를 원샷으로 들이키고 싶었던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고, 따뜻한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싶어졌다.


“그럼 이제 커피 내릴게요.”


마치 지은의 기분이 눈에 보인 듯, 남자는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저기가 어디예요?”


향긋한 커피를 가져다준 남자에게 지은이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혼스데일 센트럴 파크예요. 펜실베이니아에 있어요. 제 고향이죠.”


남자는 대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은 앞에 앉았다.


“너무 예쁘네요. 직접 찍으셨어요?”


“네. 제가 있던 곳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장면이에요.”


“바로 앞에 사셨나 봐요.”


“입원해 있었어요. 공원 바로 앞에 있는 요양병원에 몇 년 있었죠.”


어쩐지 핏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은 병 때문이었나 보다. 그런데 서울에서 1만 킬로미터도 더 떨어진 곳에서 투병하던 사람이 어떤 사연으로 을지로 골목에서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카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건강 걱정은 없어요.”


그는 또 지은의 생각을 읽은 것 같이 말했다.


“폐결핵이었어요. 아마 4년 정도 갇혀 있었을 거예요.”


“결핵에 4년씩이 나요?”


“그런 시절이었어요.”


이 사람은 지은과 비슷한 또래인 것 같은데 마치 과거에서 온 듯 말했다. 어쩌면 발음은 완벽하지만 조금씩 한국어 단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결핵과 폐암을 헷갈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오래 병실에 있으면 계절 감각이 없어질 것 같지만, 전 반대였어요. 밖으로 나가서 계절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니까, 공기의 온도, 나무 냄새, 바람의 느낌이 피부를 건너뛰고 바로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더라고요. 초겨울이 가장 힘들었어요. 창문을 닫고 있어도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보면 뱃속에서부터 어둡고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눈이 오면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죠.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눈밭으로 뛰어나오면 봄날의 따뜻함과는 차원이 다른 포근함이 온몸을 채웠어요. 저 사진은 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찍은 사진이에요.”


“그런 행복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 더 외로워지지는 않았어요?”


“처음 몇 해는 그랬어요. 저 장면 속에 나는 있을 수 없다는 우울감이 컸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감각이 바뀌더라고요. 10층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런 상상을 하게 된 걸 수도 있는데요. 나는 마법사고 저 아래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장면은 내가 만든 세계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겨울 왕국>의 엘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일까요?”


“하하하. 그런 것 같네요. 그땐 엘사를 몰랐지만요.”


“근데, 사장님, 한국어는 언제부터 그렇게 잘하신 거예요?”


“전 사장이 아니에요. 전 바리스타 겸 컨시어지예요.”


‘이 성냥갑만 한 카페에 컨시어지는 과한데.’


“여기는 입구예요.”


벌써 세 번째다. 이 사람이 지은의 생각을 읽은 것이. 지은은 이 ‘바리스타 겸 컨시어지’가 단순히 센스가 있는 정도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이나 병원에 갇혀 있다가 태평양을 건너 낯선 땅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왠지 흰 피부의 박수무당일 수도 있지 않을까. 따뜻한 커피와 함께 몽글몽글해졌던 지은의 머릿속이 살짝 혼란스러워졌다. 막 시작된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의 듀엣 버전의 휘몰아치는 보컬과 트럼펫이 정신을 계속 밀고 당기는 바람에 어떤 질문으로 이 혼란을 풀어나가면 좋을지 생각해 내기도 어려웠다.


“더 정확히 말하면 로비겠죠.”


“네?”


“여기는 윈터 원더랜드에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로비예요.”


지은은 어쩐지 납득이 갔다. 그러고 보니 이 카페는 <Winter Wonderland> 체험관으로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저 사진, ‘윈터 원더랜드’라고 제목을 붙여도 될 것 같은데요. 가사 속 풍경이랑 비슷해요.”


“맞아요. 역시 잘 아시네요.”


“제일 좋아하는 겨울 노래거든요.”


“엘라 피츠제럴드 버전을 가장 좋아하시죠?”


“네. 어떻게 아세요?”


“퀸 엘라 버전에서 들어오셨으니까요.”


“그러네요. 다른 버전이었다면 안 들어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계절에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니, 플레이리스트를 섬세하게 준비하지 않는 카페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을 것 같아요.”


“그럼…… 직접 가보시면 어떨까요?”


지은은 감탄했다. 정말 콘셉트에 진심인 사람들이구나. 1930년대 빅밴드 피아니스트 같은 ‘바리스타 겸 컨시어지’도, 누군지 모를 카페 사장도.


“콘셉트가 아니에요. 저기 문 보이시죠?”


지은은 다시 한번 이 사람에게 생각을 들킨 것에 놀랐고, 사진 밑에 문이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아까 카페 안을 둘러볼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심지어 문고리에 하얀색 후드 망토가 걸려 있었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윈터 원더랜드예요. 가서 퀸 엘라를 만나고 오셔요.”


바리스타 겸 컨시어지는 일어나 문 앞까지 가더니 망토를 들고 왔다.


“그대로 가시면 추울 거예요. 이거 입으세요.”


바리스타 겸 컨시어지는 지은에게 망토를 입혀 주었다. 망토는 따끈한 코코아에 넣은 마시멜로처럼 지은의 몸에 스며들듯 감겼다. 깜짝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문득 지은은 이곳의 기묘함을 끝까지 체험해 보고 싶어졌다. 평소 같으면 두 번 세 번 곱씹다 그만두거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고 그중 한 명이라도 하지 말라고 하면 그만두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Winter Wonderland>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가 미도리에게 “독수리 오형제 주제가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으니까요.”라고 단언한 것처럼 말이다. (지은은 <카모메 식당>을 볼 때마다 살면서 저런 ‘단언’을 꼭 한 번쯤 꼭 해보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엘라 피츠제럴드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지은은 엘라 피츠제럴드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이 카페의 천연덕스러움에 부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Winter Wonderland>에 대한 진심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말이죠... 실은 퀸 엘라가 사라졌어요.”


갑작스러운 전개였지만 지은은 오히려 웨스트마운틴 카페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기는 <Winter Wonderland> 마니아가 만든 방 탈출 카페 같은 건가 봐’


“퀸 엘라를 찾는 게 미션이에요?”


“네. 찾아서 시청으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시청이요?”


“퀸 엘라는 윈터 원더랜드의 시장이에요.”


출발하기 전에 게임의 설정을 충분히 알아두는 게 좋겠다고 지은은 생각했다.


“왜 사라졌나요?”


“‘윈터 원더랜드에는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아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어요.”


“그럴 만한 일이 있었나요?”


“그것도 알아내셔야 해요. 우린 모르겠거든요.”


“‘우리’가 누군데요?”


“윈터 원더랜드 시민들이요.”


“좋아요. 들어가 볼게요. 시간제한이 있나요?”


“없어요. 계시고 싶은 만큼 계셔도 돼요. 퀸 엘라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윈터 원더랜드를 충분히 즐기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물론이죠. 다녀올게요.”


“잘 다녀오세요.”


지은은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과한 선곡이라고 생각하지만서도) 머릿속에서 반젤리스의 <Chariot of Fire>를 플레이하고 결승선으로 몸을 던지는 마라토너처럼 숨을 가득 채운 가슴을 내밀며 문을 활싹 열었다.


Winter Wonderland _chapter 02.jpg Chat GPT가 그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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