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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Jul 09. 2024

너는 너로 살아

초등학교에 다닐 적 딸은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마다 친구 누구는 이런 상을 받았고 저런 상을 받았는데 자신은 왜 그런 대회, 행사가 있는지도 몰랐냐고 말이다. 

학교도 나도 모르는 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아 오는 아이들이 나도 신기했다. 공문을 꼼꼼히 읽는 나로서는 딸의 불만에 억울하기만 했다.



나중에 알았다. 이런저런 학원과 맘 카페를 통해 알게 되는 여러 사설 대회에 몇몇 아이들이 참여한다는 걸 말이다. 사설 대회를 통한 것이라도 학생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학교에서 다시 시상해 준다는 걸 알고 당황스러웠다. 아, 이래서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거였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학원 강사로 지낼 때 아이들은 늘 힘들고 지쳐 보였다. 아무리 잘 나와도 급식은 급식이라 학원에 들어오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허기에 두 눈이 퀭했다. 시골 장이 열리는 날이면 어묵과 떡볶이를 사달라 조르기 일쑤였고 궁여지책으로 선생님들은 컵라면을 쟁여두었다 나눠주곤 했다. 매콤하고 알싸한 라면 냄새로 가득한 강의실에 앉아 후후 불어먹는 컵라면 하나에 좀처럼 보기 힘든 미소가 아이들 얼굴에 만연했다. 


어느 날, 좋은 성적으로 명문 고등에 진학해도 될 녀석이 예상치도 못한 학교로 진학하겠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무뚝뚝한 중 3 남학생에게 볼 수 없는 눈물이 부질없이 흘렀다. 

사연인즉, 명문 고등에 진학하면 받지 못할 혜택을 주겠노라고 모 고등학교에서 부모에게 협상을 걸었고 그 부모는 학교의 달콤한 조건에 아들에게 물어볼 생각도 않고 입학 원서를 집어넣었다. 선 사고 후 해결. 부모의 무례에 아이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부모가 자녀의 삶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 결과, 값을 치르는 건 아이들이란 걸 나는 강사 생활을 통해 배웠다. 그런 연유로 나는 딸이 자신의 삶을 주도해 나아가길 바랐다. 강단에 올라 상을 수여 받는 멋진 모습 이면에 치루는 대가를 내 딸이 하게 할 자신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거나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 열다섯 딸은 간혹 나를 테스트한다. 

“나? 난 네가 그냥 건강하게 자라서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정도?” 늘 해오던 답을 똑같이 한다. 

“에이,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 봐~ 내가 의사나 변호사 혹은 대기업에 취업하는 거 바라지 않아?” 2차 테스트다.

“하하하, 내가 원하면 해주려고? 그럼 아무거나 막 던지면 되는 건가?”

“그건 아니지~!! 엄마가 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게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친구들 보면 그렇더라고. 엄마나 아빠가 하라는 공부를 하고 가지라는 직업을 가지려 애쓰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 엄마는 왜 안 그러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 이럴 때면 제법 자란 딸이 보인다. 

“엄마가 하라는 공부를 하고 가지라는 직업을 좇으면 네가 좀 편할 것 같은 거야?” 되물었다. 

“그런 맘도 없잖아 있지. 난 매사에 내가 선택하고 계획하고 알아보고 해야 하니까. 간혹 친구들처럼 엄마가 정해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더라고.” 뜻밖의 고백에 흠칫 놀랐다.

“엄마가 정해주는 대로 하면 편하다 싶을 만큼 요즘 고민이 많은가 봐?” 내 물음에 고개를 주억이는 딸을 끌어다 안았다. 

“엄마는, 엄마 꿈을 네 안에 심지 않으려고 엄청 애쓰면서 살아. 널 위한다고 내리는 결정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원했던 모습, 이루지 못한 꿈을 집어넣을까 두려워. 네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너를 달리는 말처럼 만들까 봐 하루도 긴장하지 않는 날이 없어. 그렇게 만드는 순간 너는 자식이 아니라 내 트로피가 되는 거니까 말이야. 난 널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며 평생 재밌게 지내고 싶어. 엄마 트로피로 만드느라 진짜 너를 잃어버리는 거.. 으~~ 생각만으로도 끔찍해. 그러니 엄마한테 그런 무리한 부탁은 마셔. 좀 힘들어도 넌 그냥 너로 살아. 난 나로 살아볼 테니까. 간혹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하하하 하긴 엄마가 시킨다고 할 나도 아니야. 그렇지?” 나보다 키 큰 딸이 저보다 작은 나를 껴안고 다독이며 제 주제를 파악했다.

'그래, 시키는 대로 부리는 대로 하지 않을 너라 안심이야.' 속내를 감추고 웃음이 터진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Mariya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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