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로소 역사를 통해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뒤에 내가 고른 책은 안광복의 <철학, 역사를 만나다>였다. 제목이 보여주는 대로 철학이 역사와 어떻게 만나는지도 궁금했지만,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에서 나를 열광케 했던 안광복 선생의 시선으로 보이는 역사와 철학과의 만남은 또 내게 어떤 즐거움을 안겨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던 까닭이다.
안광복 선생은 중동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다. 이 난해한 철학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재밌게 느껴지게 하며 친해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역사로 풀어 철학을 설명하니 눈을 반짝거리며 집중하는 학생들의 반응을 느낀 그는 말한다
“철학과 역사는 찰떡궁합이었다. 철학은 파편처럼 흩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의미 있게 엮어 주는 날실이고, 역사는 허공에 떠도는 사변들을 현실로 풀어주는 씨실이다. 나는 비로소 역사를 통해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 (P5 ‘저자의 글’ 중에서)
철학이 얼마나 어렵고 난해한지, 이해 못 하는 것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해 가능한’ 문학, 역사 사회학, 자연 과학 등의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지적 무능함(?)을 엉뚱한(?) 분야의 책들로 한풀이하는 안광복. 그래서 그의 책은 재밌다.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우리들의 언어로 풀어내 주는 그의 탁월한 능력은 심지어 철학이 ‘재밌다’라고 느끼게까지 하는 능력을 발휘하니 말이다. 내가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안광복 선생 덕분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는 말한다. 역사와 철학은 서로 주고받으며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두 축이라고. 역사를 알면 박제같이 창백해진 철학 속에서 뜨거운 정열과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으며, 반대로 철학은 ‘역사를 위한 내비게이션’으로 철학이 있는 역사 공부는 시대의 맥을 짚고 미래를 진단하는 안목을 갖게 한다고 말이다. 서문인 '저자의 글’을 읽으며 본 내용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나는 이미 푹 빠져버렸다.
책의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부터 시작하여 서양 철학 & 역사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중국 한 나라, 한국 조선왕조, 프랑스와 독일의 프로이센을 걸쳐 현대까지 두루두루 굵직한 역사를 다루며 철학이 역사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영향을 미쳤는지, 또한 시대가 선택한 철학과 사상으로 인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그의 특유의 유머와 맛갈스런 필력으로 재밌게 펼쳐나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나에게 배움을 안겨주었거나,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만을 발췌해서 리뷰로 올린다.
그리스와 로마는 개인적으로 워낙 관심이 많은 나라 이기도하고 이미 여러 문헌을 통해 많이 익숙해져 있었지만, 의외로 동양 철학이나 사상은 많이 낯설었다. 그랬기에 안광복 선생이 설명해준 공자가 세운 유가와 노자에서 비롯된 도가의 정체(?)와 유교와 도교가 중국에 미친 영향을 부분은 참으로 재밌었다. 백가쟁명 시대에 탄생한 가장 영향력이 큰 사상은 공자가 세운 유가와 노자가 세운 도가인데 이 둘의 사상은 라이벌이라 할 만큼 다르다.
공자는 원래 제사나 예식을 담당하던, 요즘으로 치면 ‘의전’을 담당하던 가문의 후손이었기에 그가 예(禮)를 중시한 것은 어쩜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공자는 예법 뒤에 숨어있는 도덕의 본질을 깨달아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그것이 이른바 인(仁)과 예(禮)다. 그러한 그이기에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 속에 무너진 법도와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방법으로 폭력과 윽박지름으로는 결코 예를 바로 세울 수 없으며, 진정한 존경은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그것은 윗사람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인을 쌓고 예를 세우면 자연스럽게 아랫사람은 이를 흔쾌히 따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사상이었다.
그의 사상이 처음부터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나 4대가 흘러 무제(기원전 156~87?, 제7대 황제로, 한나라의 권위를 크게 높이고, 중국의 영향력을 해외로 확대했음) 때에 이르러서 ‘국가 철학’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것은 ‘동증서’라는 걸출한 학자의 손에 의해 가능했다.
그는 공자를 통일 제국을 이끌 ‘문치 프로그램’의 창시자로 끌어올렸으며, 나아가 황제를 ‘하늘의 아들’로 높였다. 황제의 역할은 하늘의 영원한 뜻을 받들어 백성과 자연을 조화롭게 하는 이니, 그에게 감히 반항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반면 통치자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같아서 한없이 자애로워야 하며, 사사로이 백성들의 자잘한 일에 개입해서는 안되며, 군주는 인품과 도덕으로 백성을 이끌되 돈이나 이익에 초연해야 한다고 내세웠다.
참으로 멋진 동증서가 아닐 수 없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도 조화를 이루며, 강제하지 않아도 우러나오는 존경심으로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하라.’ 동증서는 이처럼 시대가 진정 요구하는 ‘통치의 황금률’을 세웠던 것이다. 이렇게 유가는 원래부터 지배층의 사상이었다.
반면 노자의 철학 핵심인 ‘도(道)’는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과 다르지 않다. 그는 도는 곧 자연의 길이며,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억지로 자연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순리대로 산다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덕이 있는 사람이란 이렇듯 자연의 길, 곧 도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것.
친환경 철학자 노자는 통치자들에게 나누고 베풀 것을 강조했다. 자신을 낮추고 베풀어 백성들이 스스로 따르게 만들라는 것이다.
“하늘의 도리는 여유가 있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더해 준다. 사람의 도리는 그렇지 않아서 부족한 데서 덜어서 여유 있는 쪽에 더한다. (...) 그러나 오직 도를 이룬 사람은 여유 있음에도 (덜어 내어) 하늘의 도리를 따른다. 성인은 무엇을 하든 소유하지 않고 (...) 자신의 뛰어남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법이다.” (P69)
당시 공자의 유가는 메이저급 사상이었고, 노자의 도가는 마이너리티급 사상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한무제를 통해 유가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모두가 유가 사상에 도의했던 것은 아니다. 지방 귀족들은 임금의 독재적인 중앙 집권에 반색할 수 없었고, 유가에 반항하는 그들의 사상적 배경은 바로 노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황로 학파였다.
안광복 선생의 결론이 가슴에 치고 들어온다.
역사는 돌고 돌게 마련이다. 동북아시아의 주류 사상이었던 유가는 이제 학자들 사이에서 ‘바이러스’ 수준의 취급을 종종 받곤 한다. 유가 특유의 위계 강조와 경직된 도덕 윤리가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정체를 가져왔다는 논리에서다. 반대로 노장의 가르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선진화된 국가일수록 강제가 먹히지 않고 시민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현상, 근엄한 조직의 논리보다 소규모의 인간적인 커뮤티니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모습 등은 노자가 꿈꾸었던 무위자연, 소국과민의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디 노자의 자연스러움이 억지 주장으로 물든 이 세상을 ‘부드럽게 흐르는 물처럼’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P71)
동감이다. 그저 아주 살짝 맛만 본 노자의 사상이지만, 안광복 선생의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노자의 사상이 마음에 콕 와닿았기도 해서겠지만, 유교가 우리나라에 끼친 악영향. 아니 악영향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자신들의 위정에 유리하도록 편리하게 적용함으로써 사회악이 되어버린 모든 도를 넘는 겉치레와 허례허식, 그리고 잘못된 예의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위계질서, 그것은 지금 사회에서 횡포처럼 행해지고 있는 갑과 을의 행태가 태어나게 한 자궁이 되어준 게 아닌가 싶다.
아마도 책을 읽으며 가장 열광하며 읽었던 부분은 십자군 전쟁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의 다툼 부분이었는데 역시 기독교는 잔인했다. (참고로 나 역시 기독교인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터키 성지 순례 때 가이드가 설명해준 이슬람교에 대한 이야기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이슬람을 욕한다. 적(? 이슬람을 우리의 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을 알아야 적을 이기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일부 극우파나 급진파들의 폭력적인 행동만 보고는 전체를 도매급으로 넘겨버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우리. 그때 가이드였던 엄이냐시오 형제님의 이슬람에 대한 설명은 이슬람에 대한 나의 관점을 확실하게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관심이 생겼다. 형제인 기독교와 이슬람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서로 전쟁까지 하게 되었는지. 지금 바로 이 시간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전쟁은 그야말로 이슬람과 기독교의 성전(聖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소피아 성당을 둘러보며 가이드가 해주었던 이야기는 참으로 놀랍기만 했다. 이슬람교도들이 소피아 성당을 점령했을 때 그들은 성당의 성화들을 모두 없애지 않고, 그저(?) 회칠만 했다고 한다. 이유는 지금은 자신들이 이 성당을 차지했지만, 자신들이 이 성당을 점령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기독교가 차지할 수도 있는 것. 그때 그들이 자신들의 성화를 회복할 수 있도록 회칠을 한 것이라는 게다.
비록 서로 싸우고는 있지만 전쟁의 대상인 적의 문화를 존중하는 그들의 포용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물론 그 산꼭대기 메테오라까지 올라가서 모든 수도원을 부수는 잔인함도 서슴지 않았지만, 이것은 전쟁의 양면성이라고 할까? 그들이 상대방의 문화에 보여준 존중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십자가 전쟁이 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알렉시우스 1세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셀주크 투르쿠 족에게 잃게 되자 바티칸에 구원 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구원 요청의 이유가 궁색해지자 그는 이교도인 무슬림이 성지 예수살렘을 지배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박해받고 있는지를 과장하였고, 바티칸에서는 유럽의 골칫거리였던 이름만 기사단이요 무식하고 폭력적인 전투 집단을 ‘신을 위해 싸운다’는 고결한 명목 아래 동쪽으로 쓸어낼 수 있었기에 알렉시우스 1세의 구원 요청은 정치적 호재로 작용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더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주 요인은 이러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어이없는 사실이다.
그 당시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편견과는 다르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의 아들로 보느냐, 단순히 선지자 가운데 하나로 보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두 종교는 서로 겹친다. 그래서 무슬림은 기독교도를 ‘성서의 백성’이라 부르며 존중했다. 게다가 이슬람과 기독교 모두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다.” (P87)
그랬기에, 십자군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무슬림들은 믿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프다. 더욱 어이없었던 사실은 십자군은 어쨌든 명목상 무슬림을 대항해서 싸우기 위해 집결된 군대인데, 그들은 무슬림과 싸우기도 전에 먼저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웃지 못할 해프닝이 역사 속에 벌어졌다는 사실은 참으로 소름 끼치는 부분이다.
“십자군은 처음부터 권력 갈등이 빚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과 자비의 종교인 이슬람과 기독교는 결코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 없다. 18세기 유럽의 지성 볼테르는 십자군을 ‘권력에 미친 성직자들이 벌였던 무자비한 전쟁’ 일뿐이라고 단언했다.” (P95)
볼테르의 이 같은 발언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십자군 전쟁이 사랑을 가장한 악의 피의 잔치였음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버리면, 세상은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꿈꾸는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한 세상은 십자군이나 성전과 같은 극단적인 적개심을 버리고 상대에게 손을 내밀 때 이루어진다. 십자군 정신은 인류에게 관용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게 하고 폭력에 휩싸이게 하는 정신의 바이러스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P96)
구구절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중세의 스콜라 철학은 예수의 가르침을 정교한 이론 체계로 정립해냈는데, 그중에서도 ‘스콜라 철학의 왕’로 불리는 토마스 아퀴나스 편은 내게 신나는 감동을 안겨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 당시, 그러니까 중세 교회의 이론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이성을 부르짖는 이교도의 사상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랬기에 1210년, 교리 논쟁의 중심지였던 파리 교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금서로 정하게 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붐은 멈출 수 없었고, 결국 1336년,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알아야만 신학 교수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공표한 것이다.
“일상 세계는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기존의 믿음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도 천상 세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더구나 그의 철학에 따르면, 세계에 대해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따져 묻는 것은 신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오히려 논리적인 사유는 신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는 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볼 때, 이성과 신앙은 대립되기보다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다. 이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신에 대해 캐묻고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믿음은 오히려 더 강해진다. 그에 따르면, ‘이성과 신앙은 신에게 가는 서로 다른 길일뿐’이다. 곧 ‘믿습니다!’ 식의 ‘묻지 마 신학’을 냉철한 교리가 보완해 줄 수 있다는 논리다.” (P103)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소름 끼치는 전율이 일었다. 목에 턱 막혀 숨을 쉴 수 없던 내게 숨통을 틔어주는 것 같았다. 바로 이거였다. 논리적인 사유는 신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 아니 아니라, 오히려 신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는데 도움을 주는 또 다른 하나의 길이라는 것. 이성과 신앙은 신에게 가는 서로 다른 길인 것이다.
주위에서 ‘묻지 마 신앙’을 가진 이들을 가끔씩 보게 된다. 물론 이성으로 논리적으로 따질 수 없는 교회 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이해를 돕는 연구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가끔씩 듣게 되는 지인들의 어이없는 발언들 때문이다. 성경책에 철학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는 이야기라던가, 심리학이 신앙을 방해한다는 이야기, 또는 모든 것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며 행동을 엄하게 다루려는 이분법적 사고의 행위들은 나로 하여금 숨통이 막히게 한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을 확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신뢰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다. 신을 자신의 사고 안에 가두어놓고 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주장을 펴는 행위들을 얼마나 많이 보는가. 이들의 고립된 사고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활동하던 중세 시대의 교부들이 가졌던 사고처럼 느껴진다.
암튼, 이슬람 등 이교도와의 전쟁, 교황과 황제 사이의 투쟁이 계속되던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현실을 보는 냉철한 눈이 필요했다. 더욱이 잦은 논쟁과 명분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철저한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논리학의 창시자이지 자연 과학, 정치학의 선구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둘을 모두 제공해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네딕도 수도원을 마다하고 들어간 신생 수도원인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하여 자칫 이단으로 몰릴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아퀴나스는 냉엄한 논리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기독교 교리를 다시 정립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뚝심과 들끓는 화산처럼 강렬한 집중력의 소유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그의 냉철한 논리와 뛰어난 균형력으로 아퀴나스는 ‘가톨릭’이 ‘보편적’ 일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학자인가 말이다. 위압감을 안겨줄 만큼 큰 덩치와 ‘황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꿈쩍 않는 고집으로 그는 썩어빠진 교계를 평정시킨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매력에 빠지는 순간이다.
너무나도 아이러니하고 재밌는 것은 바로 역사 안에서의 상과관계다. 안광복 선생의 말로 옮겨본다.
“중세 전체로 볼 때, 기독교 사회는 이슬람 사회에 많은 빚을 졌다. 아랍 세계는 연금술, 수학 등의 선진 문물을 유럽에 전해주었다. 반면 이슬람에서 성숙시킨 문명의 씨앗은 고대 그리스에서 왔다. 서구 세계와 이슬람 문명은 이처럼 역사 속에서 문화 자원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왔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도 유럽에서 싹텄지만, 이를 1000년 가까이 보존하고 연구한 문명은 이슬람이었다. 그리고 이슬람 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된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럽의 기독교 교회를 변화시켰다.” (P109)
생각지 못한 역사의 반전이다. 이래서 역사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흥미진진한 반전의 연속.
책을 손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한 호흡으로 달려 읽은 책이다. 몰랐던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은 언제나 짜릿한 희열을 안겨준다. 이슬람의 역사를 좀 더 알고 싶고, 공자와 노자를 좀 더 알고 싶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삶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책장을 바라보니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 아~ 또 마음이 바빠지려 한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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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역사, 음악이 만나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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