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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Aug 30. 2022

자이노파일 고종석이 보여주는 <고종석의 여자들>



여자를 애호하는 자이노파일 고종석. 방대한 다방면의 지식과 단어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의 한계 없이 글을 쓰는 고종석. 감히 그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을 갖는 것조차 주눅 들게 하는 고종석. 대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성은 어떤 이들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그가 빠진 여성들은 독특했고 자신들만의 세계와 색깔이 분명한 여성들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여성들은 역사를 포함한 현실 속의 인물들만이 아니라 소설 속의 주인공들도 다수 등장한다. 취향도 성향도 다채롭게 그의 여성 편향(?)은 동서양의 문화를 초월한 아주 다양한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내가 일반적으로 여자를 좋아하는 자이노파일이긴 하지만, 거기에도 편애가 있으니까, 그 선택은, 당연히, 인물의 중요도가 아니라 내 취향과 변덕을 반영하고 있다. (P9)


그의 고백처럼 다양한 취향에 편향적인 취향까지 겹쳐 그가 좋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는 아주 쏠쏠했다.


그의 레이다망에 걸려든(?) 34명 여성은 역시나 짐작했던 대로 반 이상이 잘 모르는 여성이었다. 그 안에는 정치가도 있었고, 문필가도 있었고, 혁명가도 있었고, 기자, 영화배우, 성악가,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들이었다. 그 많은 후보들 중 단연코 내 시선을 붙잡은 이들은 혁명에 참여한 여성들이었다.


로베스피에르 당통과 함께 프랑스혁명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마라를 죽인 암살의 천사 샬로트 코르데. 5월의 노동절을 탄생시킨 메이데이의 주인공 마리 블롱도, 3월 8일을 ‘여성의 날’을 만드는데 기여한 클라라 체트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투쟁을 온몸으로 벌인 로자 파크스, 그리고 대학생으로 반나치 저항 운동으로 반나치 팸플릿을 뿌리다가 잡혀 사형당한 조피 숄은 나의 깊은 관심을 끌었다. 



쟈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조용히 자기가 있는 곳에서든 아니면 총을 들고 전선에서 싸우든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구속하는 거대한 권력에 저항하며 온 몸을 던진 여성들에게 많이 끌렸다. 물론, 외국 여성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임수정을 비롯하여, 시인 황인숙, 전 법무장관 강금실도 있었다.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였던 윤심덕도.


그가 좋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공통된 부분은 자신이 어느 분야에 속해있던 하나같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자신을 내던진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이 추구한 삶의 형태나 이념에 온전히 공감하진 않아도, 적어도 그녀들이 지닌 열정과 자신의 사상과 삶에 자신을 불태운 여성들의 삶은 여자인 내가 봐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자신들이 삶 속에 추구하는 꿈이나 이상이나 목표 또는 이념, 그 무엇이라도 좋다. 그것을 삶 속에 이뤄내고자 옳다고 생각하는 무엇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던지는 삶을 사는 이들은 여성이던 남성이던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불태워 재가 되어버리는 것. 내가 이 세상에 온 소명이라고 느껴지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싸우다가 한 점 살도 남기지 않고 온전히 재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 것. 그처럼 아름다운 게 있을까? 갑자기 뭉클 울컥해진다.


나는 혁명에 참여해야 하는 전쟁 속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우리도 ‘물질(돈)’이라는 전쟁 속에 지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부와 명예와 권력으로 휘둘러지는 이 세상에 나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추구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며 이 세상에 보내진 소명을 삶 속에 이뤄내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하는 이들 틈에서 나만의 삶의 스타일을 지키는 것, 그리고 때때로 흔들리는 가치의 갈등 속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며 그것을 지켜내는 용기. 이 모두가 어쩌면 내가 맞닥뜨린 현실에서의 혁명 투쟁 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앞으로는 ‘노동절’과 ‘여성의 날’이 그냥 그렇게 무심결에 보내게 되진 않을 것 같다. 오늘날의 그날들이 있기 위해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이었다. 


고종석이 편애하는 여성들을 챕터별로 한 명씩 만나는 동안 과연 나는 그들 중 누구와 닮았을까? 나 자신을 그녀들 옆에 함께 세워놓고 보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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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lein Peyroux - Dance me to the end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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