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 멜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서문 中)
호미자루를 내 손에 쥐어본 적도 없건만, 박완서 선생님께서 서문에 쓰신 이 말씀에 코끝이 찡해졌다. 돌이켜보니 내 삶도 그런 것 같아서. 바로 지금이 쥐고 있던 내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은 때인 것 같아서 가슴에 뭔지 모를 아림과 시림에 통증이 일었다.
책 표지 속의 박완서 선생님은 어찌 그리 해맑은 미소로 환히 웃고 계시는지.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내 입가에도 미소가 살며시 번졌다. 자연에서, 일상에서, 관계 속에서 느끼고 깨닫게 되는 이야기들이 선생님의 천진스러워 보이는 미소만큼이나 그렇게 맑고 투명한 수채화처럼 그려졌다.
박완서 선생님의 얼굴을 보면 마치 지나가다 아는 척하며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친근감을 안겨준다. ‘남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것을 좋아하는 속물’이라 표현하신 부분에선 어찌나 사랑스럽게 느껴지던지. 당신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허영이 있다면 우아하게 늙는 것이라는 말씀에서는 “나둔데~”하며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그렇게 존경받는 작가와 같은 삶의 목적을 가졌다고, 나도 그분과 비슷하다고 굳이 우겨대고 싶은 것은 역시 내 안에 있는 속물근성 때문일 게다. 존경하는 분 곁에 함께 은근히 묻어가고 싶은 비겁함. 그래도 좋다. 새끼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겨대는 것이 뭐 그리 잘못되었을까.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산문집은 당신의 지난 삶이 어때셨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 당신의 성장 배경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왔다.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셨던 총명하셨던 어머님이 당신의 딸만큼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기 위해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자식들을 데리고 나와 사시는 모습에선 같은 엄마 입장으로서 고개가 숙여지는 경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그 옛날에 계집아이여도 총명하면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공부를 시키셨던 할아버지. 그렇게 열린 사고를 가지신 할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정에 태어난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회가 아니었으니 그건 분명히 특별한 은총이고 축복이었다. 엄마는 그러한 시댁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당신도 그런 아버님을 만났더라면. 또한 얼마나 감사했을까? 우리 딸이 그런 할아버지 덕분에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에.
읽으면서 반가웠던 부분은 바로 박완서 선생님이 카톨릭 신자가 된 이유가 바로 내가 카톨릭 신자가 된 이유와 같아서였다. 신을 우리의 기호대로 울타리에 가두지 않는 보편적 신앙관을 가르치는 카톨릭이 좋았던 것. 나는 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종교는 왠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신의 이름을 빌어 내 욕심을 채우려는 종교가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같은 하느님을 놓고도 많은 우리들이 그렇게 하느님을 욕되게 하고 있음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신이지만 그 안에 하느님이 존재하심을 인정하는 카톨릭이 나는 좋다.
나를 카톨릭으로 이끄신 분은 바로 마더 테레사였다. 물론 당연히 마더 테레사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분의 삶을 통해 그분의 사랑의 나눔을 통해 나는 바로 이 종교다 싶었다. 버림받고 죽어가는 이들을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죽음의 순간에 내가 돌보았으니 카톨릭식 미사 장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물어 자신들이 원하는 종교의식으로 장례식을 행해주는 것은 온전한 사랑의 표현이고 사랑의 실천이자 사랑 그 자체가 아니겠나. 나로 하여금 카톨릭 신자가 되게 한 이유였다. '다름'에 대한 존중. 넓은 차원으로 '신'을 바라보는 시선.
읽으면서 싱긋이 웃음이 나왔던 부분은 바로 박완서 선생님이 연애결혼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던 부분이었다. 나는 박완서 선생님보다 훨씬 어림에도 줄창 짝사랑만 하다 결혼했구만, 그 옛날에 연애결혼을 하셨다는 말씀은 와우~하는 탄성을 지르게 했다.
또한, 어머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당하게 당신의 사랑을 지키셨다는 부분에서는 어찌나 멋져 보이시 던 지. 그 부분 역시도 나도 같은 생각이라 기립 박수라도 쳐드리고 싶었다. 결혼은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다. 내 사랑은 내가 지켜야 하는 것. 그 옛날에 어디 그러기가 쉬웠을까? 사회적으로도 그랬을 테고. 그래서 더욱 멋져 보였다.
산문집은 당신의 큰 따님에 대한 고마움, 애틋함 말로 표현하지 못한 따님에 대한 사랑의 편지로 끝이 난다. 당신의 큰 따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박완서 선생님이 큰 따님에게 얼마나 많은 의지를 했는지.. 따님에게 내가 다 고맙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느낌이 그리 컸던 것은 바로 내가 우리 큰 딸아이에게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론 엄마보다 더 속 깊게 행동하는 딸아이. 철없는 엄마를 옆에서 챙겨주고 뒤에서 보좌해주며 배려해주는 큰 딸에 대한 신뢰와 고마움이 박완서 선생님이 당신의 큰 따님에게 느끼며 고마워하는 그 마음과 참으로 닮았기 때문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이나 나나 그런 딸을 우리의 딸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선물이다.
마치며...
부끄럽게도 박완서 선생님의 책은 처음 읽었다. 물론 몇 년 전 ‘오래된 농담’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으나 소설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냥 내 책장에 꽂아두었을 뿐이다. 책을 별로 많이 읽는 것도 아니면서 ‘소설’을 터부시 한 것은 참으로 교만이고 건방이었다.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어대는 문학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얼마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건방을 떨며 지내왔는지 하나하나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그렇게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감사하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교만을 떠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면 나는 얼마나 추한 모습으로 늙을 뻔했는가 말이다. 우아하게 늙고 싶은 아줌만데 말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집을 읽으며 그분의 책을 좀 더 읽고 싶어졌다.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시끄럽지도 심심하지도 않게 조근조근 떠는 수다가 벌써부터 그리워졌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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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순 -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