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을 떠나며 <연금술사>를 가방에 같이 넣었다. 조수미가 여행을 떠날 때는 꼭 연금술사를 집어넣는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게 많은 깨우침을 준 <순례자>에 이어 <연금술사>는 내게 어떤 깨달음을 안겨주고 내 안에 잠재해 있는 '무엇'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줄지 그 '무엇'을 빨리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여행 중에 읽은 <연금술사>는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산티아고의 여행과 맞물려 좀 더 깊이 몰입이 되어 그 타이밍이 절묘하게 느껴졌다.
연금술사 읽으며 내게 가장 강하게 치고 들어온 것은 처음 우리에게 기회가 다가올 때 따르는 ‘초심자의 행운’이라 불리는 은혜의 섭리였다. 그 초심자의 행운이 우리의 꿈이 현실로 다가올 때쯤엔 더 이상 따르지 않으며 왜려 큰 시련이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이었다. 그 시련을 이겨내는 용기 있는 자만이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바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자아 신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소수의 사람만이 자아 신화를 이루는 축복을 누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왜 나의 자아 신화를 실현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놀라움이자 강렬한 깨달음이었다.
읽으면서 랜디 포시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꿈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 만나는 벽이나 장애물은 우리의 꿈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함이란 것. 그래서 당신의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것. 그는 그의 마지막 저서 <마지막 수업>에서 그 이야기를 여러 번 강조했다.
"장애물은 결코 우리의 꿈을 가로막기 위한 것이 아님을.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책 전체를 통해 내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바로 산티아고와 사막 여인 파티마의 만남 부분이었다. 둘의 만남은 짧았지만 그녀와 마주치는 그 찰나적인 순간에 우주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강렬한 만남이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막의 여인 파티마.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이루도록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며,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그를 자유롭게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용기를 주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지혜로운 여인.
자신의 꿈보다 파티마가 더 소중하게 느껴져 그녀를 놓치고 싶지도, 떠나고 싶지도 않아 자칫 자신의 꿈을 포기할 뻔 했던 산티아고. 그의 꿈을 포기하고 눌러앉았을 때의 산티아고가 맞닥뜨릴 삶에 대한 연금술사의 표현은 그야말로 소름 끼치도록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왜냐면 그것은 바로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눈물범벅이었다.
마치 내 몸에 붙어있는 세포 하나하나를 바늘로 콕콕 찔러대는 아픔과 통증. 그가 말한 것은 바로 나의 지난 삶이었다. 그는 영상을 보여주듯 너무나도 분명한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꿈을 포기한 자들이, 자아 신화를 중간에 포기한 자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에게 4년의 시간을 주며 설명해 나갔지만.. 나는 이미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온 몸으로 느껴야 했던 갈등과 방황의 시간들. 꿈을 포기하는 자의 삶은 이렇듯 모두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구나. 닮은 모습이다. 그 과정 모두가. 그리고 느끼게 될 그 고통의 그림도.
그제야 나는 알았다. 지난날 왜 나는 나의 꿈을 포기했더랬는지. 나 자신도 모를 정도로 너무나도 교묘하게 숨겨져 있던 진실이 연금술사를 읽으며 드러났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은 내가 절실하다고 믿었던, 내 삶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그 꿈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인지, 정말로 내가 절실하게 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것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건지 몰랐던 때문이다. 만약 확신만 있었다면 그렇게 힘들게 지켜냈던 나의 꿈으로의 여정을 결코 그쯤에서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은 목표가 정해지면 투쟁을 하거나 아니면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인내하면서라도 기회를 보며 이뤄내고야 마는 열정을 지닌 나였기에.
이제야 알겠다. ‘확신’이 없었음에서 발생된 동기 부여의 결여와 열정을 계속 지펴줄 에너지원 고갈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였음을. 나도 속을 만큼 완벽히 숨겨져 있던 진짜 이유였다.
우리 딸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려 할 즈음에 시련은 시작된다고. 그때 포기하지 말고 용기 있게 잘 버텨내라고.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있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매 순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자신의 자아 신화를 이루라고 말이다.
설사 중간에 편안함과 자신의 꿈을 이루지 않아도 행복할 것 같은 매력적인 삶과 사랑이 유혹하더라도 결국에 나 자신의 꿈을 포기하게 되면 결국 그 순간 느끼는 행복은 그야말로 ‘순간의 행복’으로 끝나게 된다고 말이다. 그 꿈은 내 안에서 썩어서 악취를 풍기며 나를 끝없이 괴롭히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단지 우리가 그 방법을 시도해보기 전에 미리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절대 시도해보기 전에 미리 포기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메카 순례가 평생의 꿈이면서도 그 꿈을 이루고 나면 자신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살아갈 이유를 잃게 될까 두려워하는 크리스털 상점 주인의 이야기는 가슴 시리게 했다. 현재의 힘듦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의미가 되어주는 무엇을 잃지 않기 위해 메카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그냥 자신의 삶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하늘의 별로 놓아두는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의 고통을 아픔을 이겨내게 해주는 무엇을 한 가지쯤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자식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고, 또는 배우자일 수도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소명이나 꿈일 수도 있다. 그럼 나에게 삶의 의미가 되고 나의 방향을 알려주는 삶의 등대가 되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꿈'이란 것은 참으로 모순 덩어리다. 꿈은 이루고 나면 '꿈'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러면 우리는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사랑'이 '순수한 사랑'으로서 가장 '사랑'다울 수 있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것처럼 '꿈'이 가장 순수하게 '꿈'다울 수 있을 때는 '이루어지지 않은 꿈'일지도 모른다. 이루어진 꿈은 이미 '꿈'이 아니니 말이다.
꿈을 하늘에 별처럼 북극성으로 박아놓고 내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등대로 삼는다면, 그래서 삶의 위로가 되고 나침반이 되어준다면 메카를 가지 못하고 그 어귀에서 바라만 보는 크리스털 상점 주인이 바보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크리스털 상점 주인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연금술사'를 읽는 동안 내 안에 함께 한 수많은 느낌들. 초서 단상으로 느낌들을 잡아 내었다. 그러는 동안 내 감정은 많은 눈물과 함께 정화되었고, 또한 그와 함께 내 안에 치유가 일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스승처럼 다가온 <연금술사>, 고마운 책이었다.
2009.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