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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Nov 10. 2020

파커 팔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읽고

우리 인생의 의미를 헤아리도록 도와주는 것은 언제나 침묵이다.


Parker J. Palmer는 시카고 교외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맥스 팔머는 50년 동안 도자기 회사에서 일을 했고 나중에는 그 회사 사장이 된 사업가다. 하지만, 파커 팔머는 성장하는 동안 아버지로부터 삶의 깊고 큰 은총과 자비와 동정에 관한 것에 대해 배우기를 원했다. 파커의 아버지 맥스는 비록 파커가 자신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압력을 한 번도 주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미네소타의 칼튼 컬리지를 거쳐 파커는 목사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삶의 소명이라 생각하고 뉴욕의 연합신학대학엘 들어가지만 곧 그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그것이 아님을 느끼고는 버클리 대학으로 옮겨 그곳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는다. 당시 버클리는 그 당시 전 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빛과 그늘이 함께 어우러져있는 혼돈 속에 있었는데, 그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60년대의 버클리는 놀랄 만큼 빛과 그늘이 혼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많은 청년들이 그늘에 유혹당하기보다는 희망과 공동체 의식,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당시 사회환경에서 비롯된 빛의 이끌림을 받았다. (P37)  


버클리에 있는 동안 그는 가르치는 일을 매우 좋아하는 자신의 자질을 알게 되어 그의 삶의 중요한 자신의 의미를 주게 될 ‘가르침’에 대해 깨닫게 되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하지만, 또한 그곳에서의 경험은 파커가 대학에서 경력을 쌓는 것은 한낱 도피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주며 그를 떠나게 한다. 그리고 그는 워싱턴으로 건너가 커뮤니티의 조직자가 된다. 파커가 ‘소명’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바로 커뮤니티 조직자로 일하면서인데, 파커는 소명이야말로 한 사람이 진심을 다해 분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 역시 파커가 찾고 있던 삶이 아녔다.  무언가를 조직하는 일의 난폭성과 조직적인 과격함 속에  예민한 성격을 가진 파커는 참자아에 대한 자각보다는 도시 위기를 위해 일 해야 한다는 ‘의무’에 쫓기는 생활로 결국 그는 탈진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나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에고와 도덕관념에 나를 맡겨 내 영혼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끌려 간 것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들이 그를 ‘우울증’이란 어둠으로 이끌게 된다. 그 어둠을 통해 그는 자신을 만나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깊은 여정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바로 ‘팬들힐’에서의 생활이다. 퀘이커 교도로서 펜들 힐에서의 공동체 생활은 그에게 삶이 무엇인지, 참 자아가 무엇인지, 내 참자아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소명은 어떻게 부여받는 것인지를 깊이 느끼고 깨닫게 된다. 그곳에서 그가 느끼고 배우고 깨우친 것을 훗날 사회에서 적용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가 바로 그의 책을 통해 세미나를 통해 우리에게 함께 나누는 것들이다.


우울증은 나를 안전한 땅,  한계와 재능, 약점과 강점, 어둠과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나의 진실, 나의 본성의 땅 위로 내려서게 하는 친구의 손이었다.


파커의 고백은 자신의 깊고 깊은 어둠을 바닥까지 내려가 깊이 만나고 그 안에서 처절한 고통을 끌어안으며, 그 모든 것을 숭고하게 받아들이고 포용한 자만이 말할 수 있는, 그래서 경건하기까지 한 영혼의 울림으로 들린다.

‘소명’ 이란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갖고 있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에 우리는 ‘삶이 내게 무엇을 말하려는지’ 귀 기울이고 들음으로 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것을 알아내야 한다고 파커는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내 참 자아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선생님들의 선생님’ ‘위대한 스승’’영성가’ 등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그는 지금까지도 교육에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교육자들을 교육하며 우리에게 커뮤니티의 중요성, 소명 그리고 리더십과 영성에 대한 세미나와 경연을 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비롯하여,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필독서가 된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그 외에 ‘낯선 사람과 함께하기’, ‘남들에게 비친 나의 모습 바로 알기’등이 있다. 


책을 읽으며,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유산을 남기는 것, 바로 파커 팔머의 삶이 그러지 않나 싶다. 물론 위대한 많은 분들이 그랬고 앞으로 많은 분들이 그러할 것이다. 나도 내게 주어진 삶 안에서 살며, 사랑하고, 또 배우고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유산을 남길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읽는 내내 가슴에 따뜻한 기운이 함께함을 느꼈다. 





1. 인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   2. 이제 나 자신이 되다


내가 ‘소명(Vocation)’에 대한 의문에 눈뜬 것은 삼십 대 초반의 일이다. 그즈음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텅 비어 있었다. (P11)


파커 팔머처럼  ‘소명에 대한 의문에 눈이 떠져서’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즈음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텀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이 구절은 나에게 지난날의 기억을 또렷이 떠올려주었다.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보다 이해심 많고 착한 두 딸들, 이 불황기에 손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게.. 겉으로 보기엔 예쁜 그림인데..  그렇게 내 영혼은 텅 비어 오랜 시간을 방황 속에 헤매던 기억.


그럴 때면, 부끄럽게도 아직도 운전을 할 줄 모르는 나는, 나의 텅 빈 영혼을 감당할 수가 없어 택시를 타고 내가 좋아하는 빠울리스따 거리까지 가서는 그렇게 방황을 하고 다녔더랬다. 그렇게 지치도록 걸어 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면 또 눈물 속에 잠이 들고. 그렇게 지난 몇 년을 방황했더랬다. 그렇게 내 삶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언젠가 눈을 감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내가 아프도록 느낀 텅 빈 공허감은 내 삶 안에 의미를 부여할만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무언가 소중한 그 ‘무엇’을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때쯤에 나는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그 ‘소명’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정기적으로 내 이멜함에 전달되어오던 보보 님의 드림레터는 방향 잃은 내 삶에 방향을 보여주었다. 내 삶에 색깔을 입혀주었고, 죽은 감성에 호흡을 불어넣어주었다. 글 중에 쓰여있던 ‘구본형 선생님’의 ‘마흔세 살에 시작하다’에서 발췌된 한 구절은 모든 감성이 죽었다고 생각한 나를 꿈틀거리게 했고. 마흔세 살,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은 나이, 정확히 내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의 경계선에 서 있던 나는 용기가 생기고 조금씩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희망이 생겼고 그날의 꿈틀거림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내가 찾아내고 알아낼 수 있다면, 나의 남은 삶을 그 소명을 위해 산다면 눈을 감는 그 순간에 나는 ‘후회감’이 아니라 ‘감사함’ ‘충만감’ 속에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임에. 나를 가슴 뛰게 할, 나는 아닌데 안 하고는 못 견딜 그런 소명은 무엇일까?  


되돌아보면 나는 얼마나 헛된 것에 노력을 했는지. 온전한 나 자신을 찾기에 앞서, 내가 그려놓은 이상형에 나를 꿰맞추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었는지. 내가 아닌 내가 되려고 노력하며 느꼈던 상실감, 비교감, 엉뚱한 경쟁심.. 그리고 낭패감. 더욱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지난날의 나는 그렇지 않았음에 그런 내 모습은 나를 당황하게 했고 더 나아가 자아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너무나도 아픈 고통이었다. 지난 시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나를 자꾸만 채찍질하며 궁지로 몰아넣었던 시간들.  하지만 정말 그런 모습은 내 안에 없었던 것일까?  



어느 날 남편은 그렇게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하는 이렇게 말했다. 


"OO이 네안에는 분명 그런 모습이 있어. 하지만 네가 뚜렷한 목표 안에서 생활할 때는 네 정신이 분산되지 않고 온전히 몰입 속에 앞만 보았기에 미처 네가 못 느낀 거야. 지난날의 너를 봐봐. 하지만 지금은 네 모습은 그때의 그 모습이 아니야. 그때의 모습은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지.  지금은 사소한 것에 매달려 너를 들끓게 하고 있어. 난 그때의 네 모습이 참 좋았다. 전처럼 목표를 가져봐." 


나의 아픈 곳을 콕 찌른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밤새 울었지만, 남편의 말은 나를 다시 한번 ‘지난날의 내가 어땠었나’  되돌아보게 했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당당했고 뭐든 열심였고, 자신감이 넘쳤었다. 하지만 이해심 많고 배려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 그건 온실 안에서의 단순한 인간관계 속에 굳이 내가 부딪히며 견뎌야 하는 상황이 아녔기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내 안에도 치졸함

이 있었고, 질투심이 있었고 경쟁심이 있었고, 더 나아가 뿌리가 깊도록 깊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그 몇 년의 고통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간디도 소심한 성격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의 목표인 ’ 평화적인 투쟁’이란 대의 앞에 그의 소심하고 날카로운 성격은 자연스레 한쪽으로 묻혔다 하지 않나.  내 삶의 분명하고 확실한 비전을 향해 달려간다면 온 사방으로 뻗쳐있는 안테나는 내 ‘목적과 비전’을 향해 한 곳으로 모아 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하는 희망이 내 안에 싹트고 나는 무엇을 목표로 정해야 하는지, 내 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내 꿈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나는 방향 잃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소명을 찾아가는 여행’으로 인도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의 안테나는 각 곳으로 주파수를 던지며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과연 나의 타고난 모습대로 살아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의 타고난 본모습은 어떤 모습인 걸까? 나의 내면으로의 여행은 힘들기만 하다. 내가 하느님 앞에 서면 “왜 너는 안젤리카 답게 살지 못했느냐”라고 하시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인지.  내게 선물로 주어진 ‘소명’은 무엇일까?





3. 길이 닫힐 때  &   4. 모든 길은 아래로 향한다.


길이 닫힐 때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하라. 길이 열릴 때 당신의 재능을 믿고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하라.’ (P58)


‘길이 닫힐 때’란 표현은 나를 오랜 시간 기억 속에 잠기게 했다. 아빠의 길이 닫혔을 때 우리는 이민을 떠나야 했고, 그 특수환경에서 나는 ‘수많은 길 닫힘’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나 혼자였을 때의 길 닫힘은 내게 왜려 자극이었고 동기유발이었다. 그리고, 오기를 부리며 내 목표까지 달려가게 하는 ‘행동 촉진제’였고 내 목표를 매 순간 기억케 해주는 ‘목표 상기 자극제’였다. 그래서 내가 넘치도록 가졌던 풍요로운 것 중에 아쉬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헝그리 정신’이다. 모든 것이 부족해서 고통스러웠던 상황.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풍요로운 삶이었다. 살아 꿈틀거리며며 나를 미치게 하는 꿈이 있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오는 부족함이 그 꿈을 더 선명하게 내게 인식시켜주고 내 정신에 각인시켜주었으니까. 


그러나 결혼해서의 ‘길 닫힘’은 내게 있어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왜냐면 나하나만의 꿈과 욕심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 거쳐야 할 수많은 상황들, 과정들, 그리고 내가 감수해야만 하는 많은 부분들이 지난날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던 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리고 점점 굴복되어갔다. 


굳이 변명을 늘어놓자면 아내는 남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나로서는 내 뜻이던 아니던 나를 포기해야만 했고, 그것은 그 후에 내가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고통 속으로 몰아넣게 되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음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학업을 포기하고 남편의 뜻을 따라 브라질에 왔을 때 겪었던 처음 몇 년의 생활은 내 삶이 끝나는 듯한 어둠 속의 생활이었다.


 그때 느꼈던 아픔은  ‘숨 쉬는 것조차 형벌’이라 느껴질 만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을 만큼 혹독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내게 ‘역할’에 대한 깨우침을 안겨 주었고, 뿐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Shift 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내로서의 책임보다는 나의 꿈을 먼저 내세웠던 지독히도 이기적이었던 나 자신.  ‘길 닫힘’은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직 어린 두 딸아이의 엄마로서 그 순간 우선순위에 올려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던 바로 그 이유가 지금은 하느님께 너무나도 감사한 이유라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봉봉 초콜릿처럼 맛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Surprise 투성이란다’라고 했던 영화 Forest Gump에서 그의 엄마의 말처럼 삶은 정말 그렇게 재밌는 일로 가득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고통스럽다고 헉헉대면서도 따뜻한 햇살 속에 느껴지는 행복감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게 되나 보다.


그리고 길이 닫히고 문이 닫혀 내가 등을 돌려야 했던 그 반대쪽에 있던 그 공간이 내게는 새로운 길이었고, 새로운 문이 내게 열려있던 것이었음을 알았다.  내 삶의 패러다임은 바뀌어 꼭 공부를 해야만 그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것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나는 인제 고집부리기를 그만두고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점점 내 삶에 적응하며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그것에 내 열정을 쏟아부었다. 


어떤 특별한 재주도 없는 나는 다행히도 배우는 것을 좋아하여 일단 배우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그것이 내겐 또 다른 배움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고,  책 들고 공부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의 공부 또한 재밌었고, 내게 맡겨진 ‘매장’이라는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삶의 현장에서 나는 행복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5.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다    &    6.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제 나는 나 자신이 약함과 강함, 약점과 재능,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안다. 이제 나는 완전해진다는 것이 그중 어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임을 안다. (P106)


그렇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의 약점도 나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줄 아는 넉넉함이 생겼다. 나는 내 안에 나쁜 점들은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들을 바꾸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해야 했지만,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더 깊은 나를 어둠의 고통으로 빠져들었고 내 안의 이중성을 없애기란 불가능한 것임을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았다. 


왜냐면 나는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본성을 갖고 태어났고 그것은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닌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인 것.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나를 채찍질 하지 않고 내몰아 다구 치지 않으며 너그럽게 나 자신이 가진 약함과 강함, 양점과 재능, 그리고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나의 타고난 양면성을 포용할 줄 알게 되며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도 그때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보인다. 실직이 내게 필요한 일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길 막혔음’이라는 표지 덕분에 내가 방향을 돌려 가야 할 길로 들어서게 되었음을, 회복 블능이라고 느꼈던 손실 덕분에 내가 진짜 알아야 할 의미를 깨닫게 되었음을. 표면상으로는 인생이 작아지는 듯 보였지만, 언제나 소리 없이 그리고 풍부하게 새 생명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 (P146)


얼마나 많은 ‘길 막혔음’이 있었나. 마치 내 인생은 길 막힌 도로로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길 막혔음’ 표지는 내게 ‘오기’를 내게 했고 ‘도전’하게 했고, 그 ‘길 막혔음’ 이 새로운 길에 대한 열망을 더욱 강하게 하는 열에너지가 되었음을 어떻게 내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좀 더 나이 들어서의 ‘길 막혔음’은 내게 내 역할에 충실하는 법을 배우게 했고, 내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내가 가겠다고 하는 길만이 길이 아님을,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해서 내 삶이 좀 더 풍요로와졌음을 나는 부인할 수 있을까.?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 지금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그 길에는 늘 그분이 함께하셨고, 나는 그분의 손길을 느꼈으며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던 은총의 시간이었다. 어느 성인의 말씀처럼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총이고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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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9일에 썼던 리뷰...

그 후로 벌써 12년이 흘렀다. 


리뷰를 정리하면서 브런치에는 올리지 않는 초서까지 읽어 내렸다.

초서 단상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쏟아져 있는지..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내 입엔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참 뜨거웠구나' 

내 삶의 여름이었구나 싶다.


지금은 늦가을처럼 느껴지는 것은

삶 때문일까

나이 때문일까



2008. 0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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