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mpkin Aug 15. 2020

영혼의 불을 지펴주는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

우리 영혼 안에 숨겨진 빛이 우리가 보아야 할 곳을 밝혀줄 테니까.


To My Korean Readers.
If ever a cold wind blows throgh my life,
I am sure you will light the fire of friendship for me!
- Paulo Coelho –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나의 생은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가 어느 신성한 영원 안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오스카 와일드 -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떠나며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여행 중에 너무 진지한 책은 싫고, 그렇다고 시간을 허비한 듯한 느낌을 주는 책도 싫고. 그러다가 내 눈에 띈 책이 바로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나는 이 책이 바로 나를 위한 책임을 알았다. 


이 책을 읽었던 시기는 바로 50의 나이를 이틀 앞둔 49세의 나이였고, 파울로는 60을 바라보는 59세의 나이에 느꼈던 삶의 방황 속에 자신을 찾아 떠난 여행 기록이었다. 


바람피운 아내가 낳은 아이를 보며 ‘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겨대던 김동인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그 어떠한 미세한 부분이라도 하나 꺼내어 잡고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다른 숫자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있는 나이가 닮았다는 것이 마치 삶의 손짓처럼 느껴졌다. '운명’까지 들먹거리며 갖다 붙이고 싶었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살포시 웃음이 나온다.


그랬다. 그가 느끼는 갈등이 바로 내가 느끼는 갈등이었고, 그가 느끼는 방황이 내가 느끼는 방황이었다. 변화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도 변화하지 못함에서 오는 절절한 절망감은 바로 내가 느끼고 있는 그 절망감이었다. 그래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책. 그래선가? 자주 울음이 터졌고 가슴엔 여린 떨림과 파장이 일었다. 책 속에 쓰인 단어들은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며 내게 튀어 올라왔고, 나는 목까지 차오르는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어 자꾸만 책을 손에서 내려놓아야 했다.



알레프를 읽으며 내내 혼란스러웠다. 알고 싶었다. 정말 이것이 소설일까? 알레프 책을 선전하는 광고 문구에는 이 책이 그의 최신 소설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음이다. 대체 어느 부분이 진실이고 사실이며, 어느 부분이 꾸며진 가상인 것인지.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던 랍비에게 울며 불며 물어보던 어린 파인만의 심정이 이랬을까? 파울로는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소설’이라는 옷을 갖다 입힌 것은 아닌지. 순례자를 읽을 때와 같은 그런 혼동스러운 느낌. 현실 속에 존재하는 평행 우주와 마법 같은 이야기 속에 나는 또 그렇게 현실과 가상 세계 속에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며 꿈을 꾸듯 그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책을 읽으며 내 가슴에 깊이 쳐들어 온 단어 하나. 그것은 '사랑'이었다삶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꿈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전생부터 이어져 온 풀지 못한 사랑. 그 모든 것을 포함한 그 모든 것, 사랑. 


파울로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무작정 그를 쫓아온 힐랄과 함께 여행하며, 전생에 얽힌 그녀와의 풀지 못한 운명을 현재의 삶에서 풀어나가는 과정은 너무나도 신비스러웠고, 때론 절절했고, 때론 숨이 막혀 헐떡거렸다.


힐랄이 실제 인물이라는 사실은 나를 전율케 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인공 프란치스카와 로버트가 실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온 몸이 굳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그때의 바로 그 느낌.


그 둘은 만나야 했고, 둘은 전생에서 얽힌 운명을 풀어야만 했고, 그들은 해냈다.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운 방법으로. 그러므로 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왕국의 왕이 되었다.  전생이란 있는 것일까? 없다고 우리는 어떻게 부인할 것인가? 전생에서 나는 어떤 사람을 어떤 모습으로 사랑했고, 그때 풀지 못한 인연들을 나는 또 현재의 삶 속 만나고 있는 걸까. 이것은 내 주위에 함께 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빛에 경이로움을 덧입혀준다.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만나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인지, 과연 나는 누구와 전생에 얽힌 운명을 풀어야 하는 것인지.


책을 읽고 난 후, 멍했다. 북받치는 울음을 막을 수 없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용서해달라는 소년 파울로에게 그럴 필요 없다며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들. 화형 당하러 가는 소녀들은 마지막 한가닥 희망이었던 그가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음에도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소년 파울로를 사랑의 눈으로 왜려 위로를 하고 있는 거다.


우리는 언젠가 미래에,
당신이 오늘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든 생과 작업을 바칠 때에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당신의 목소리는 드높게 울려 퍼질 것이고,
많은 이들이 거기에 귀 기울일 거예요.


위로하는 소녀들과 소년 파울로. 그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고. 소녀들을 바라보며 속죄와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파울로와 화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소녀들. 그리고 빠울로를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 마치 한 시대를 함께 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있었다. 사랑이 미움을 이길 거라는 소녀의 이야기에 헐떡거리면서 말이다.


소녀들의 예언처럼 그는 이 생에서 그녀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녀들의 바람대로 많은 이들은 파울로의 이야기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파울로는 자신의 왕국의 왕이 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결국 해낸 것이다. 힐랄을 통해 이뤄낸 소명의 완성.


결국, 빠울로도 힐랄도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신의 왕국의 왕이 되었다. 그러면 해피 앤딩일까?


파울로의 쌍둥이 영혼인 크리스티나와 파울로 코엘료


이 책으로 나는 파울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파울로에게 더 깊이 빠져버렸다. 지난날, 내게 많은 깨달음과 깨우침을 주고 용기를 주었던 파울로는 또 이렇게 나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혼탁하고 갈등 속에 있었던 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맑아지며, 정리됨을 느꼈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나의 현주소를 분명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답을 얻게 되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다가오는 삶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멈추지 말라는 것. 포기하지 말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을 향해 계속 나가야 한다는 것. 왜냐면 우리가 설사 포기하고 멈춘다 해도 삶은 멈추지 않음으로 결국 상처 받고 고통 속에 있게 되는 것은 우리일 테니까..


나를 가장 들뜨게 하는 것은 바로 내가 구체적인 용기를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일상에서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두려움 속에 갇혀 불안에 떨기보다는 그것들과 부딪히고 맞서며 삶에 임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서 내게 주어진 것은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것. 불안에서 벗어났다는 것, 삶이 더 생기 있어졌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가장 고마운 선물은 ‘언젠가’라고 늘 막연하게 꿈꾸어오던 그것을 실행할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언젠가’는 바로 올해가 될 것이다. 꼭 낯선 곳의 이방인이 되어보리라. 그리고 그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내 가까이에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나는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장 절실했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내게 다가온 책. 알레프. 다음의 글로 리뷰를 맺고 싶다.

‘가까이에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때로는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있다. 비는 대지로 돌아올 때면 빗방울과 함께 대기 중에 떠도는 것들을 가져온다. 마법과 일상 너머의 특별한 것들은 항상 내 곁에 있고 우주 만물과 함께 있지만, 가끔 우리는 이를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다시 깨달을 필요가 있다. 설사 세게에서 가장 큰 대륙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가로질러야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보물을 들고 돌아오고, 그 보물이 다시 땅에 묻히면 또 한 번 보물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생을 흥미롭게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보물과 기적을 믿는 것. (P375)


나는 보물과 기적을 믿.는.다.


빠울로와 그의 아름다운 쌍둥이 영혼 크리스타에게, 그리고 빠울로가 강물처럼 사랑한 여인이며 그에게 온전한 사랑을 바친 터키 여인 힐랄에게 삶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떠오르는 생각 하나...

힐랄은 지금 행복할까...?

빠울로가 그녀를 위해 비쳐주는 우정의 불을 느꼈을까...?

.

.


이 리뷰를 쓴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다시 읽으면서, 놀랍게도 지금과 똑같이 그려진 상황에 놀라웠다. 그리고 위로가 되었다.

주저앉지 말고 다시 용기를 내어 일어나라며 도닥거리는 파울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 그의 말처럼 가끔 우리 자신은 이방인이 될 필요가 있다. 현실에 나를 가둬두지 말고 이방인이 되어 나를 바라보자. 내 영혼 안에 숨겨진 빛이 꺼지지 내가 보아야 할 곳을 밝혀줄 수 있도록.




2012. 1. 18.






매거진의 이전글 정민 교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