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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Jul 13. 2019

나만 좋아한 소설 <생의 한가운데>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자신이 읽은 소설 중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재미가 없다거나 내용이 별로라고 하는데, 자신만은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작품을 하나 골라 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일종의 ‘자신만의 컬트’라고 부를 수 있는 소설을 고르는 것. 그 소설을 다른 사람들이 평가절하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에 반해, 자신이 그 소설을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무엇인지를 써보라는 과제를 받고 흥미가 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에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생의 한가운데>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그 책은 나의 청소년기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다.


예쁜 구석이라곤 없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지나가는 이들로 하여금 뒤돌아보게 하는 매력적인 여성 니나, 그녀를 사랑하며 말없이 지켜보는 번슈타인 박사가 주고받은 편지 내용들, 그리고 ‘나’라는 1인칭으로 나오는 니나 언니와의 대화로 이어지는 독일의 여류 소설가 루이제 린저의 소설이다.


지난날을 가만 되돌아보면, 나는 니나가 되고 싶어 참 부단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그녀는 온전히 자신에게만 충실하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 무심한 그녀지만 타인들의 시선은 늘 그녀에게로 향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녀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전적으로 개인적은 주관의 잣대에 따라 행동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순전한 이기주의로 보더라도 안됩니다.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보다 가난하고 보다 고독하게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사람이 속을 털면 털수록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의 한가운데 P122 전혜린 역 -문예출판사-)


니나가 번슈타인 박사에게 보낸 편지 중에 나오는 구절로 내가 사랑했던 부분이다. 이 책을 읽었던 그 순간부터 나의 모든 시집과 모든 일기장 제일 첫 페이지에는 이 글귀가 쓰였다. 그리고 나는 니나의 충실한 조언에 따라 그 누구와도 나의 마음을 공유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의 마음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보다 가난하고 보다 고독하게 되는 까닭을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이미 마음으로 받아들여버렸기 때문이다.


혹독했던 유학시절, 처절했던 고독 속에서도 옆길로 빠지지 않고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니나 덕분이었다. 나도 그녀처럼 현실에 굴하지 않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내가 옳다고 생각되는 삶을 살고 싶었고, 니나의 향기를 내고 싶었다. 덕분에 잘 견뎌낼 수 있었고, 니나처럼 고집스럽게 나의 주관을 지켜나갔다. 그렇게 니나는 ‘내 머리에 피똥이 마르기 시작할 무렵 즈음'의 나의 삶 구석구석에 함께 했다. 그렇게 그녀는 내 삶에 깊게 관여를 했던 것이다. 그런 니나였고, 내겐 책 이상의 의미를 지닌 내 삶이 그대로 묻어있는 책이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고, 언젠가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 팀에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나는 들떴다. 너무나도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얼마나 멋진 책인지, 니나가 얼마나 매력적인 여성인지,  그리고 그녀가 내 삶에 어떻게 깊이 관여되었었는지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팀원들과 이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을 나누는 동안 나는 정말 경악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분들이 어떻게 이따위 책을 읽게 하느냐며, 선생님의 선택에 불만을 제기했던 것이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우리가 다른 책을 읽은 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분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이렇게 윤리 관념이 없는 여자의 이야기는 당신들과 맞지 않는다는 것. 이런 여자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 심지어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다는 분도 계셨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미칠 것 같은 갑갑함에 눈물을 흘렸다. 왜 그분들은 그 소설을 그렇게 밖에 이해하지 못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여성과 당신들의 윤리 관념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의아스러웠고, 그 책이 니나의 섹스 라이프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타까웠다. 창문을 통해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은 보지 못하고, 그 창문의 유리가 더럽다느니 깨졌다느니 하는 엉뚱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어이없는 모양새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물론, 같은 책을 읽고 읽는 이들이 똑같이 느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했고 공부했고 경험했기에,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 모두 다름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이 주는 모럴이 무엇인지,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책의 인물과 나의 삶과 비추어 보는 것 중요한 일이다. 나의 책 읽기 방식 역시도 바로 나의 삶을 비추어 보며 그로부터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하는 이런 식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내게는 너무나도 감동이었고 내 삶 전체를 아우르며 깊은 영감과 교훈과 배움을 안겨준 책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집어던지고 싶은 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슬픈 경험이었다. 분명 아픈 경험이었지만, 나 역시 나만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름’이라는 것은 때때로 아픔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리의 사고의 틀과 시각을 넓혀준다는 것을. 그 사건 이후 나의 사고 영역이 전보다 조금은 더 넉넉해졌음을 느낀다. 감사한 부분이다. 그와 더불어 좀 더 다양한 것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내가 되었음은 보너스로 주어진 선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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