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따라 여행하는 바람같은 여자의 이야기
나는 열차 승무원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관광열차 승무원이다.
"무슨일하세요?"라는 물음이 나에게 오면
잠시 3초 동안 머뭇거리게 된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우리는 열차 안에서 이벤트도 하고 방송도 하고
가끔 판매를 해야할 때도 있고
검표업무와 고객안내, 심지어 관광안내도 한다.
무슨 원더우먼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나,
짧게는 왕복 3시간 길게는 왕복 12시간
기차 안에서 이 많은 일을 한다.
물론 중간에 짧게는 2시간 길게는 4시간 정도 쉬면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반에 퇴근하는
살인적인 스케쥴도 소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집 가까운 나는 그나마 한 5시간 자고 다시 출근한다. 다른 누군가는 한달에 절반을 나와서 자기도 한다. 회사 숙소에서.)
누군가는 재밌게 일하고 편한거 아니냐고 쉽게 얘기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광열차 승무원들은 나름의 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2013년 8월
나는 KTX 판매 승무원으로 입사했다.
직군으로 말하자면 SB 전문직으로 KTX에서 카트를 끌고 판매하는 승무원을 말한다.
우리 기수는 전부 SB로 입사했다.
입사하는 직군은 늘 바뀐다. 회사 방침에 따라.
운이 좋으면 검표를 담당하는 SM 전문직으로 바로 입사하기도 하고.
어떤 선배들은 더 좋은 곳으로 가라고 등 떠밀었지만 승무원이 꿈이었던 나는 그마저도 감사했다. 내 나이 28살 늦은 나이에 비슷하게나마 꿈을 이뤘으니까.
1년간 근무하고 사내공모로 서류와 면접을 통과하고 DMZ트레인을 타게 되었다. 삭막했던 KTX와는 다르게 이벤트도 하고 승객들도 관광이 목적이었으니 분위기도 좋았다. 그게 너무 좋았다.
별다른 끼와 재능없이도 이벤트는 충분히 진행된다. 어느정도의 말빨과 선물만 있으면 마치 유재석이 된 기분이 조금 든다.
원래는 관광열차 각기 해당 승무원들이 있어 그것만 탔었는데
지난 4월부터 통합되는 바람에 두 그룹으로 나뉘어
나는 DMZ 경의선과 A트레인, S트레인 전라선을 타게 되었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고객들이 더 힘을 줄 때도 있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별 것 아닌 것에 고마워하고
빈 말이라도 고객센터에 칭찬해주겠다고 하면
눈이 번쩍 힘이 날 때도 있다. (참 단순하다)
하지만 낙후된 시설과 빈약한 관광콘텐츠, 답답한 행정처리 때문에 고객들이 민원을 걸면 내가 다 한숨이 나온다.
내가 더 묻고싶다.
그러게요. 왜 안 고쳐주고 왜 안 해주는걸까요?
더 나아지길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기대하며
전등이 나간 객실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렇게 째려보면 언젠가는 뜨끔해서 켜지려나?
이 일기같은 글을 시작한건
관광열차의 존재와
그 안의 승무원들이 이렇게 일하고 있다는걸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그리고 덧붙여 관광열차가 좀 더 활성화되어
콘텐츠가 개발되고 발전되길..
나는 오늘도 기차를 타고 바람처럼 떠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