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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a C Apr 04. 2017

내가 몰랐던 엄마, 여자를 봤던 대만여행

걱정인형 사드려야겠어 우리 엄마


나는 매일이 기차여행이고 왠만해선 국내여행이 시덥잖게 느껴져 해외여행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여권에 찍힌 도장이래봐야 32년 인생 털어 프랑스, 스위스, 일본, 홍콩이 전부였다. 항공사 승무원이 되어서 여권을 갈아치우는 쾌거도 느껴보고 싶었으나 이번 생에는 틀렸으니 그냥 종종 여행으로 해외를 가고 싶은데... 내가 하는 일이 이렇다보니 길어봐야 2박3일, 3S(쓰리에스)로 갈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3월 스케쥴을 받아 본 2월 마지막 주의 어느 날, 나는 3S를 보자마자 홍콩여행 때처럼 홀린 듯이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여 마침내 대만여행을 계획하고야 말았다. 처음엔 혼자였다. 내 주위엔 회사 사람들 말고는 월화수 3일을 쉴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동기나 친한 동료랑 가고 싶어도 날짜 맞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혼자 가기로 마음먹었다. 심지어 중국어라곤 니하오 셰셰밖에 모르는 내가 버스투어를 낀 자유여행을 계획했다.




출국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면세점을 탈탈 털던 중 부산행 스케쥴이 있어 중간 대기시간에 잠깐 집에 들러 저녁만 먹고 오기로 했다. 저녁을 먹다 엄마와 얘기하던 도중 여행얘기를 꺼냈고 엄마는 또 혼자 가냐며 같이 갈 사람이 없냐고 안쓰러워 했다.

"혼자가면 누가 사진찍어주냐?얘기나눌 사람도 없고 심심하겠네."

"그럼 엄마가 같이 가주던가."

사실 그냥 던져본 말이었다. 예전에 엄마와 여행가고 싶다고 했다가 내가 너랑 왜 가냐는 말을 듣고 두 번 다신 이 얘기는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럴까?"

이제 주워 담을 수 없다. 혼자가는 낭만따위 우리 콩이한테나 줘 버리고 엄마와 함께하는 낭만으로 대신해야 했다.



숙박은 2인실로 바꾸고 항공권을 끊으려는데 출발지가 문제였다. 난 인천공항 출발인데 엄마는 김해공항 출발인데다 설상가상 도착 터미널도 달라 생전 혼자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는 엄마는 국제미아되는거 아니냐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출국일 전에 몇 번이나 연락이 와서 환전하는 걱정,짐 챙기는 걱정을 하더니 기어이는 출국 며칠 전부터 잠을 못잤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안 식구들 며칠 먹을 식량을 구비해놓고 비행기 시간 3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는 엄마. 소심하고 걱정많은 엄마는 딱 외할머니와 비슷해지고 있었다.




대만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 무료 와이파이에 접속해서 엄마에게 카톡을 했는데 읽지도 않고 답이 없었다. 엄마가 20분 먼저 도착하는 비행기였고 게다가 내가 연착이 되어서 마음이 급했다. 더디게 줄어드는 입국 심사 줄을 원망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내 눈을 의심했다. 국제전화라니. 로밍도 안했는데. 안 받으려다 혹시나 했다.


"어 엄마 무슨일이야?"

"입국하는데 무슨 종이 주잖아. 그거 쓰려는데..."

"비행기안에서 안썼어?승무원들보고 좀 해달라 그러지!"

"응 다 썼는데 호텔주소를 쓰라는데 니가 안 알려줬잖아"


아차차. 입국카드에는 체류 숙소 주소를 쓰는 칸이 있는데 그걸 안 알려줬다. 힘겹게 호스텔 이름을 알파벳 하나하나 불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입국 수속과 동시에 달리고 달려 포켓 와이파이도 받고 터미널 이동 셔틀을 타고 터미널2로 갔다. 엄마는 나와 약속한 대로 입국장 나오자마자 앞에 있는 의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 다 난생 처음 간 대만 공항에서 이렇게 따로 출발해 만나다니 그 때의 느낌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세상 해맑게 웃으며 아까 있었던 일을 풀어 냈다. 주소를 안써서 입국거절당하고 심사대에 서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한국어를 잘하는 직원이 와서 이유를 설명해주고 딸이 밖에서 기다린다고 하니 전화해서 주소를 물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국어 다 잘하더라~ 어휴 괜히 걱정했어~"

다시 쿨하고 대찬 엄마로 돌아왔다. 짐정리를 대충 마치고 화장실에 들러 나오는 길에 엄마의 캐리어 바퀴 한 개가 박살이 났다. 엄마는 어떻게든 끌어진다며 쿨하게 시내로 가는 버스에 캐리어를 실었다. 그리고 이동하는 내내 밖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알던 호기심 여왕, 대찬 김여사로 돌아왔다.

시먼딩에서 길거리 공연을 보던 김여사



야시장에서 5살 아이마냥 "이건 뭐야" 인형이 된 엄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고 패키지여행으로 호텔에서만 묵다가 젊은이들 가득한 게스트하우스같은 호스텔에 와보니 신이 난듯 했다. 객실에 딸린 야외 테라스에 앉아 야시장에서 사 온 스테이크와 꼬치구이를 안주삼아 맥주 한 잔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은 엄마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으리라.




숙소 체크인 후 근처 식당에서 새우딤섬과 맛있는 요리에 홀려 밥을 먹다 늦게 출발했는데 고궁박물원 입장마감 시간이 넘었다는 것을 스린역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그러던가 말던가 붕어빵같은게 되게 맛있다며 당황한 내 입에 먹던 빵을 쑤셔 넣어주는 엄마가 내심 고마웠다. 우린 쿨하게 고궁박물원을 뒤로 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스린야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계획한 대로 안돼도 돼. 다음에 또 온다고 생각하고 여유롭게 보자. 할 수 없어. 이왕 이렇게 된거 다음 코스!!"

엄마는 이렇게 외치며 직진순재의 정신으로 앞만 보고 갔다. 내가 걷는 걸 좋아하는 건 이런 엄마를 닮았나보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고궁박물원을 못 볼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길을 조금 헤매는 것조차 엄마는 즐거워보였다. 주위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나보다. 타이페이101빌딩 앞 유명한 LOVE 조형물 옆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조형물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3일 중 가운데 날은 버스투어를 했는데 누구보다 가이드의 말에 경청하고 화려한 리액션을 해 주었다. 이동하는 내내 잠도 자지 않고 주위 풍경을 구경했고 버블티, 닭날개 볶음밥, 광부도시락 등등 엄청난 흡입력으로 현지 음식을 해치웠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건 참으로 다행이었다.(대왕카스테라는 아침조식으로 해치우고 키키레스토랑에서는 여자 둘이 먹기엔 많았던 2인분을 다 먹었다)걱정했던 사진은 산악회에서의 오랜 경험 덕인지 생각보다 잘 찍어주었다. 비가 오는데도 개의치 않고 구경했다. 엄마의 눈썰미 덕에 투어팀원들을 찾아 따라가며 길을 잃지 않고 다녔다.

예류해상공원에서 여왕머리를 보러가는 길



이 즐거운 여행에서도 흠집은 있었다.

지우펀이라 쓰고 지옥펀이라 읽는 그 곳에서 그 좁은 포토스팟에 엄청난 인파가 우겨 들어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데도 비를 맞아가며 겨우 인증샷에 성공하고 다시 돌아오는데 문제가 생겼다. 집합시간을 20분 더 앞당겨 생각한 엄마는 아직 지옥펀 포토스팟의 그 후끈한 기운을 가시지 못한채 와악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나를 뒤로 두고 미친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시간이 헷갈리기 시작해 엄마를 따라 가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다니자고 해놓고 왜 이렇게 급하게 가는건데?

가이드가 기다리는 수신방에서 아까 사 놓았던 펑리수와 누가크래커, 젤리가 든 쇼핑백을 받으려고 갔더니 아직 우리 팀 어느 누구도 쇼핑백을 찾아가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아직 15분이나 남아 있었다.

"엄마! 아직 아무도 안왔어! 가이드가 40분까지래! 뭐가 그렇게 급한거야! 위엔 가보지도 못하고!"

아. 나는 기어이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직업 탓에 사람이 많은 곳은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악명높은 지옥펀에서, 그것도 비를 맞아가며 허무했던 인증샷을 찍는데 인내심을 다 써버린 것이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아 그래? 아휴 난 늦을까봐 그랬지! 빨리오는게 나아~ 늦는거 보단! 비도 오는데 차에 가있자!"라고 했지만 분명 그 소심한 마음에 스크래치는 갔을 것이다. 지옥펀에서의 엄마는 극도로 소심했다. 길을 잃어 늦을까봐.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줄까봐. 이런 정직함을 가장한 소심함은 오빠가 닮았다. 두 모자가 유리멘탈이다.

이거 하나 찍자고 그 고생을.




엄마는 내가 눈 뜨는 아침 7시면 이미 씻고 화장품을 바르고 있었고 8시인 조식시간에 딱 맞추어 식당으로 내려갔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부지런했고 더 준비성이 철저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와서 그런지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 정해진 규칙대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엄마와 나의 상식이다. 주변과 나 자신을 잘 정돈하고 깔끔하게 사는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여행하는 동안 엄마에게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너무 강박적인 시간개념과 너무 과했던 걱정이었다. 생각보다 더 타이트하게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고 그런 스트레스는 오빠가 회계사 시험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더 심해진 듯 했다. 시험에서 떨어질 때마다 본인보다 더 힘들어했다. 물론 나이가 차는 자식들이 아직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빠의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불안감은 극도로 치달았을 것이다.




걱정.

엄마는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여행의 그 순간에도 걱정을 했다. 메리*화재의 걱정인형이라도 사다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그 수많은 걱정에서 잠시 벗어나면 대차고 쿨한 김여사로 돌아왔다. 엄마의 소심함은 다 자식걱정, 남편걱정에서 오는 것이었다. 만약 그런 걱정이 없었다면 엄마는 대차고 쿨한 김정애라는 여자로 살았을테지.




엄마에게 더 많은 세계를 보여주고 경험을 하게 해주었더라면 내가 바라던 멋진 현대여성이 되지 않았을까. 괜히 미안해지고 안쓰러워 버스로 돌아가는 내내 어깨를 감싸안고 걸었다. 엄마의 그런 기회를 내가 빼앗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좋은 영향이 되어 좋은 점만 닮게 해 준 엄마가 고마웠고 아직 걱정덩어리로 남은 내가 미안했다. 앞으로라도 엄마에게 넓은 세계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엄마와 대만 타이베이공항 2터미널 출국장에서 인사를 나눴다.

엄마는 좋은 구경 많이 했다고 고맙다고.

나는 다음엔 더 좋은 곳으로 또 가자고 미안하다고.








다음 여행이 기대되는 이유는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이 궁금해서일까.

매달 스케쥴이 나올 때마다 3S(쓰리에스)가 있나없나 확인해 봐야겠다.

엄마의 눈썰미 덕에 스펀에서 연복이 아저씨와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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