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의 어느 늦은 가을밤.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고
나는 직무특성상 사고 현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현장활동은 무척 고됐지만
일단은 퇴근시간이 정해진 업무이고,
밤샘을 대비해 잠을 축적해두는 습관을
10년이 넘게 해온 덕분에
어찌어찌 버텨낼 수는 있었다.
동료들과 현장에서 교대하고
대기실로 돌아와 퇴근 준비를 마치고 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육체적 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로까지.
흥분감에 휩싸여 잠도 쉬이 오지 않았다.
진정제를 복용하듯 침대에 누워
익숙한 음악을 재생하고 눈을 감았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이 습관 또한
10년이 훌쩍 넘었다.
고맙게도
내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평소의 나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되어준다.
그녀의 연주는.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음악을 발견하는 행운에 더해
나는 운 좋게 그녀의 삶과 예술관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20세기 소녀처럼
비디오 가게 딸이었던 그녀는
디즈니 매니아 였고
마법소녀물과 순정만화를 탐독했다고 한다.
어릴 적 인상 깊었다던 작품들이
나와 상당히 겹친 게 신기했는데
익숙한 감정선의 선율을 들을 때마다
내 맘대로 그 곡의 레퍼런스를 상상하곤 했다.
깊이 알고 나면 미워할 사람이 없다던지
음악 하나로 사람이 울고 웃으니
이처럼 대단한 게 어딨냐고 말하는
그녀에게 경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를 보면
뮤지션의 기구한 일생이 펼쳐지며
기쁘고 슬픈 사연들 속에서
연꽃 같은 노래들이 피어난다.
그녀의 삶이 겪었던 갖가지 사연들이
결국은 화사한 노래들로 다시 피어나더라.
상처도 꽃이 된다나...
일상처럼 가볍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날들과
매달 볼 수 있는 줄 알았던 그녀의 공연은
아쉽게도 지난날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어딘가에서
그녀는 누군가를 위해 눈송이를 만드는 '가위손'처럼
지금도 청량하고 맑은 음색의 연주를 하고 있겠지.
그녀가 남긴 음원을 들으며
응원하며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도 '가위손'처럼 느껴지길 소망해본다.
봄의 화가가 보내온 새싹 편지처럼
23년의 봄에도 그녀의 연주가 들려오기를..
이제는 날로 흐려지고 희미해지는 기억이
어느 계기로 인해 떠올랐을 때
반갑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한참 동안 누워 음악을 듣고 있다가
주섬주섬 자리를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햇빛 좋고 바람이 유독 시원했다.
참사와 인재로 기억될 어젯밤 현장에서
나는 소진되듯 하루를 견뎌냈다.
텅 빈 마음과 헛헛한 감정을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한걸음 한걸음 채워나갔다.
피아노 선율 하나하나가 유독 감사하게 느껴지던
10월의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