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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 Feb 26. 2023

서울 토박이의 전원주택 구하기 - 14

남양주 오픈하우스 구경

어느새 3월이 다가왔다.

이 지긋지긋한 추위가 드디어 끝나간다는 의미겠지. 올해 1~2월은 주로 집에만 박혀서 일만 했는데도 추위를 탔다. 아무래도 마음이 공허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겠지. 주말에도 일하고 앉아있는 게 너무 싫어서 뭐라도 하자라는 심점으로 남양주의 오픈하우스로 구경을 갔다.


아마 2020년 정도 한 건축박람회에서 상담을 했던 건축사무소가 있었는데, 내 정보를 저장했었나 보다. 2월에  남양주에 오픈하우스 행사가 있고, 3월부터는 자재값 상승 등을 감안해 건축비가 오르니 빨리 계약하라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당시 일에 너무 시달렸기에 '바람이나 좀 쐬자' 심정으로 약속을 잡고 출발했다.


연락온 건축사무소는 그래도 국내에서 알아주는 곳이었는데, 뭐 적당히 제값 받고 멀쩡한 집을 지어주는 그런 곳이다. 사실 건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세세한 거 직접 다 알아보고 발품을 팔면 그만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겠지만, 세상일이 어디 만만하던가. 여러 곳들을 비교하고, 공부하면서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겠지만,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닌 것처럼 그만큼 고통이 따르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받을 돈 다 받고 멀쩡히 만들어주는 대형 건축사무소들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남양주에서도 서울에 바로 인접한 지역이었는데, 확실히 서울과 가까워서인지 동네에 작은 물류창고 및 유통업체들의 사무실 등이 보였다. 주택가 느낌이나 시골 느낌보다는 작은 논밭과 창고 등이 뒤섞인 곳이었다. 뭐.. 일단은 집이 중요하니깐..


대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얼핏 들은 건폐율과 70평 정도라는 집 크기를 고려하면 한 100평 정도 대지에 지어진 집이 아닐까 싶다. 외장재는 적당한 소재였는데, 딱히 흠잡을 데 없이 정갈한 느낌이었다. 이 집은 내부를 잘게 쪼개서, 여러 개의 방과 화장실, 다용도실, 홈카페 등 공간을 많이 뽑아낸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도장과 시트지를 잘 활용했고, 창호도 좋은 걸 썼더라.


모델하우스라면 내부 사진도 좀 찍었을 텐데, 곧 남의 집이 될 터라 눈으로만 담아왔다. 개인적으로 서울 인근에서 집을 지을 거라면 이 사무소와 진행해도 괜찮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박람회 혹은 이런 오픈하우스 행사에서는 계약할 사람들이 오는 거라고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뭐 사람마다 다 입장이 있는 거니깐~

정갈하게 잘 만들어진 집. 내부도 좋았고, 공간도 잘 뽑은듯 했다


피로가 쌓여있는 상황에서 굳이 토요일 오전에 남양주까지 기어간 건 건축비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임장을 다녔지만 주로 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건축비라는 게 원래 대중없지 않나. 대략적인 시가?를 알기 위해서였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건축비도 상승한 면이 컸다. 자재값이 오른 거야 불 보듯 뻔하고, 환율까지 올라서 수입자재들도 가격이 올라갔겠지.. 종합적으로 보면 평당 800 정도는 생각해야겠더라. 그러면 보자.. 100평 대지를 생각하면 50평은 마당, 10평은 도로지분 생각하면 대략 40평 주택 건축에 3억 2천 정도가 드는 셈이다. 토지 가격을 보태면 6억 정도가 든다고 봐야겠지. 일단 토지 제외 건축비는 800.. 메모.


원래대로면 2월에 아버지 친구분이 한국에 오셔서 같이 양평 쪽에 땅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연락이 없으시단다. 그때 좀 더 이야기해 보면 방향성이 나오겠지.




최근 집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으리으리 이런 거 말고 소박한 방 두 개에 채광이 잘 드는 거실과 넉넉한 마당이 있는 집 이런 거다. 새로 집을 지어도 좋고, 아니면 구옥을 리모델링해도 괜찮을 듯하다. 여기에 핵심은 겨울철에는 태국, 말레이시아 등 따듯한 나라에서 보내고, 한국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여름과 기타 봄, 가을 정도를 보내는 셈이다. 정말 겨울은 지긋지긋한데, 태국의 경우 방콕 칫롬(Chitlom) 혹은 두세 정거장 거리의 작은 콘도가 한 달에 60만원 정도면 빌리는데, 밥을 적당히 로컬식당에서 먹으면 한국보다 저렴하게 보내는 셈이다. 창업했을 때 먹을거리를 수입해 마트에 납품했었기에, 최근 8년 정도 장바구니 물가에 해박한 편인데, 요즘 서울 물가 생각하면 겨울철 동남아 지역은 여러 가지로 메리트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집은 아래 사진과 같다. 지난달에 1박 2일 보냈던 곳인데 방은 저렇게 아담하지만, 채광이 좋고 좋은 창호로 구성되어 있어 따뜻하고, 아늑했다. 저런 모던한 방 2개에 옷방 1개, 저런 화장실과 작은 거실 정도면.. 한 15평 정도일 테고, 거기에 거실 좀 더한 그런 집이 원하는 형태다. 아, 화장실은 좀 크게 하나 더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마음에 들었던 숙소. 이런 집을 지으려고 한다


지금 회사가 정황상 현재의 재택근무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면 여러 가지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데 판교에 있는 회사 특성상 파주... 는 무리겠지만, 용인, 안양, 평촌 등 남쪽부터 오른쪽으로는 여주, 이천 정도.. 좀 더 넓히면 충북과 강원도 일부까지 가능한 셈이다. 뭐.. 솔직히 이게 되겠어? 싶은데 지금 같은 팀에 대전에서 근무하는 동료도 있고 하니 사실 안될 것도 없긴 하다. 물론 중간중간 출퇴근을 해야 하겠지만.


회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할 말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꽤 오랜만에 큰 기업에 다니는 셈인데, 그러다 보니 한국 대기업 특유의 단점들을 크게 느끼는 중이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야근이 아니라, 야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업무강도 등이 대표적이다. 중견기업 정도인 직전 회사를 다닐 때 "아, 어차피 회사를 다닐 거면 무조건 대기업이지"라는 걸 느꼈다면, 지금은 "아 이른바 Z세대가 왜 회사를 관두는지 확실히 알겠다"라고 해야 할까..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등을 모두 겪고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온 지금은 "회사는 안 다닐 수 있음 안 다니는 게 낫겠다ㅋ" 심정이다. 잘리면야 할 수 없겠지만 2026년 3월 말 까지는 지금 회사에서 어떻게든 버텨나갈 생각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명목상 찍히는 월급은 기존 회사에 비해 약 200만원 정도가 더 붙고 있는데, 실제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50만원 정도만 늘어났다는 점이다. 뭐 복지포인트로 10~20만원이 대신 채워지고 기타 등등 뭐가 있는 것 같은데 결국 내가 받는 캐시 기준으로는 겨우 50만원이 늘어난 셈이다. 몸을 축내가며 받은 야근수당까지 포함됐지만 결론은 50만원 증가.. 좀 아이러니하다. 조만간 명세서를 좀 뜯어봐야겠다.


위 숙소가 있었던 춘천에서의 선셋


봄이 되고 날이 풀리면, 강원도 원주 쪽으로 임장을 가보려고 한다. 얼마 전 월요일에 차를 가지고 출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침 6시 39분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지만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시간이 8시 28분인걸 보고 정말 아연질색 했었다. 그 시간에 강변북로, 노들길, 경부고속도로가 차례로 막히는데.. 다시는 차를 가지고 출근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집에서 판교까지 가나, 원주에서 판교까지 가나 시간적으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리야 두 배 정도로 늘어나긴 하지만 일단 시간이 같고, 출퇴근을 매일 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기름값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지방의 집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른 은퇴, 즉 파이어족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더라. 느지막이 일어나 신문을 보고, 따스히 집안에 퍼지는 햇볕에 누워 한가히 독서를 하는 그런 생활.. 원주로 치면 밭 일을 하루 3시간 정도씩 도와드리고 대가로 점심과 추수철 쌀을 좀 얻어가서 아껴먹는 그런 한량 같은 생활도 꿈꿔본다.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  탑 IT 기업에서의 전략기획, 스타트업 운영 등 비루하지만 대충보면 은근 그럴싸해 보이는 내 경력을 팔아 반찬거리 살 정도의 용돈을 벌고, 소소하지만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영해 가끔 여행을 가는 뭐 이런 생활?


일단은 일을 한다. 돈을 저금한다. 이걸 굴린다. 올해 나의 소소한 목표 중 하나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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