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5일 일요일
가장 중요한 사실부터, 독립출판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접어두는 편이 좋다. 사업적인 마인드로 독립출판을 시작하는 일은 바보짓이다. 적어도 지금 우리나라 독립출판 시장에서는 그렇다. 출판업도 아니고 독립출판만으로, 책만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아예 없다. 나는 이 사실을 2년 전 어떤 북페어에 나가서 깨달았다.
내가 졸업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책 <cine-pasta recipe book>을 만든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일이면서 재미있는 일이었다. <cine-pasta recipe book>은 대학생 시절 수업 때 만들어 둔 책이었다. 그 책을 졸업 후 업그레이드해서 출판한다는 계획이었다.
그 책은 잘 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원인을 알 것도 같다. 일단 내가 가진 인지도가 없었다. 그 와중에 그 책은 타깃이 불분명했고 가격은 높았다. 그러니까 상품성은 최악이었다. '영화'와 '파스타'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홍보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말인 것 같다. 그건 그냥 나일뿐이고,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든 것뿐이었다. 그러니 팔릴 리가 없었다. 나를 위한 책이었으니 욕심은 또 있는 대로 부렸다. 180도 펼쳐지도록 만들기 위해 실제본을 했고 커버는 양장으로 했다. 제작 단가가 굉장히 높았다. 책의 가격도 자연스레 높아져 25,000원에 판매했다. 북페어 현장에서 쉽게 지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어차피 출판을 본업으로 삼거나 이것으로 돈을 벌 생각은 지운 지 오래되었고, 그렇다면 남은 길은 둘 중 하나다. 출판 관련 일은 접거나, 적당히 하면서 나의 필요에 맞게 이용하거나. 그중 후자를 택했다. 북페어를 나갈 때마다 판매 수익도 조금씩 늘고 있지만, 그 이상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에너지와 영감을 얻는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어떤 작업이 호응을 얻고 또 어떤 작업은 눈길을 받지 못하는지 파악한다. 가끔은 직설적인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아무리 강력한 피드백을 받더라도 더 강력한 것은 판매 성과 그 자체다. 사람들이 지갑을 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른 작가님들을 보는 것도 큰 힘이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출판물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행사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 일을 대하는지 보면서 스스로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그들의 성과가 아니라 태도다. 어떤 작업물은 훌륭해 보이는데도 외면받고, 어떤 작업물은 아쉽게 느껴지는데도 많은 호응을 얻는다.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른다. 행사장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태도와 부스의 전체적인 모습 그 자체는 결국 브랜딩과 마케팅의 영역인데,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든 중요하게 작용한다.
요즘은 북페어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북페어에 나가기 위해 타지까지 이동하는 것은 더욱 비효율적이다. 특히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지역까지 가게 되면 웬만해서는 흑자를 볼 수가 없다. 교통비에 숙소비, 식비까지 제하고 나면 홍보 효과를 감안해도 나가지 않는 편이 나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행사를 위해 그 지역으로 간다기보다는 여행을 하는 김에 행사도 하고 온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에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은 정말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
2026 제주북페어에서는 세미나를 하나 들었다. 마스카 다카코 작가님께서 진행하시는 <아시아 아트 북 페어 참가 가이드>라는 세미나였다. 공지를 보고 관심을 가졌다가 현장에서 신청했다. 내년부터는 해외 진출을 조금씩 해 볼 생각이라 들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세미나를 듣고 나서는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가 남았다.
세미나를 듣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역시 독립출판으로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재확인한 느낌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많은 질문이 북페어 수익에 대한 것이었는데, 작가님은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도 모든 페어에서 흑자를 남기지는 못한다고 답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많은 페어에 나간 이유는 어떤 행사가 나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했다. 맞는 행사는 다시 나가고, 맞지 않는 행사는 소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 북페어에 나가는 경우 여행을 겸한다고 했다. 현지에 있는 친구를 만나거나, 행사 일정 뒤에 여행을 즐기거나, 무엇보다도 현지 음식을 먹어보고 그 경험을 작업에 이용한다고 했다. 이것도 내가 생각했던 부분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보다 더 크게 깨달은 것은 작품을 만들 때 힘을 더 빼도 된다는 것이다.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작가님께서 만드신 책들을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나도 음식을 주제로 책을 만드니까 더욱 유심히 봤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가벼운 책들이었다. 한 가지 색만 활용한 1도 인쇄에 80g 정도 되어 보이는 얇은 종이. 모든 책은 중철로 2-4번 찍어서 만들었다. 칼로 재단한 흔적이 있는 것을 보니 인쇄소도 잘 이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업을 집이나 작업실에서 끝낼 수 있을 정도였다.
책과 작업 방식이 가벼운 것은 큰 장점이다. 만드는 데 비용이 거의 안 드니 판매 수익이 대부분 순수익으로 이어진다. 이런 형식의 책은 행사에 나갈 때도 무게가 부담되지 않는다. 타지에 가더라도 혼자 배낭 하나 메고 다닐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책의 가격은 꽤 비쌌다. 심지어 어떤 것은 내가 만든 25,000원짜리보다 비쌌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았고, 내 마음에도 꽤 드는 책이었다. 결국 책의 형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운 형식이 작가의 개성을 더 살려주는 느낌도 들었다. 형식이 가볍더라도 작가의 의도와 책의 내용,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살 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이 독립출판과 북페어의 장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핀트를 조금 잘못 잡고 있었다. 독립출판을 하면서 결과물의 완성도에 신경 썼고, 북페어에 나가면서 이것저것 후가공을 때려 넣은 무거운 책을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 독립출판으로 성공을 한다거나 돈을 벌겠다는 마음을 지웠으면서도 그랬다. 힘을 한껏 빼고 가벼운 작업물을 만드는 연습을 해 봐야겠다. 내 그림과 콘텐츠를 잘 보여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포인트 하나는 있어야 한다. 그런 작업을 해보면 나도 즐겁고 많은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다.
다음 책 작업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하나, 작업실에서 모든 과정을 끝낼 것. 출력, 제본까지 인쇄소를 이용하지 않고 만들어 본다. 둘, 한 달 안에 끝낼 것.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집중해서 만들어 보고 그 안에 반드시 '완성'을 한다. 셋, 그러면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놓지 않는다. 내 그림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