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 뭐.”라는 말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익숙한 사람을 만났을 때, 또 꾸미는 것에 신경을 덜 썼을 때 했음 직한 말이다.
우리는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 온다는 말을 동의하지 않는가?
건강한 몸에는 청결도 포함될 것이다.
몸을 청결히 한 후, 그냥 츄리닝이나 특색 없는 반바지에 반팔티만 입으면 어떨까?
모자, 안경, 마스크는 예외로 두겠다.
머리랑 얼굴에 손대기 너무 귀찮은 날일 수도 있으니.
우리가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듯, 단정한 옷차림은 자신을 사회적으로 정돈하여 드러내는 또 다른 형태의 존중이다.
하지만 옷은 그냥 고르고, 입으면 되니 사실 핑계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지금껏 살면서 옷 입는 게 귀찮다고 알몸으로 나온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입는 행위의 귀찮음은 패스하고, 옷 고민하는 게 귀찮다고 하는 경우는 어떨까?
물론 그 사람이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고,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하고 너무 피곤해서 옷 입을 고민, 카톡 답장 내용 고민, 저녁 메뉴 고민 등 사소한 것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 거라면 이해하겠다.
하지만 보통날은 입을 옷 고민하는 게 사실은 귀찮지 않다고 감히 이야기해 보겠다.
“결국 관성이 아닐까?”
저번 주에도, 지난달에도, 작년에도, 몇 년 전에도 이렇게 생각을 해 온 관성이 아닐까?
건강한 몸에는 옷차림이라는 게 포함되는 것 같다.
고민하기 귀찮다고, 입을 옷이 없다는 핑계로 대충 걸치는 옷이 아니라 내가 입고 싶어서 입는 옷.
그건 옷이 비싸거나 옷이 많아야 성립되는 조건이 아니다.
옷을 잘 입는 느낌이 없어도 룩의 느낌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나에겐 그 중 한 명이 이동진 평론가인데, 옷만 보면 멋이 느껴지지 않지만, 그 사람에 맞는 톤으로 입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쿨하게 다가온다.
내가 신경 써봤자 티도 안 나던데? 아무도 안 알아봐 주던데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의 본질은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족하면 결국 그것은 묻어나게 되고, 결국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물론 굳이 전달되지 않더라도 좋다.
결국 옷차림은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것 아닐까. 그러니 오늘은, 아무렇게나 입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