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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Apr 17. 2023

인간관계

(54)

기요에게.


    나는 정말 사람을 좋아했어. 사람들이랑 같이 술 마시는 걸 좋아하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따라 하고, 따라가고, 그러다가 또 그들의 친구들과 또 친구가 되고. 그런 삶을 몇 년 보내면서 정말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 그리고 그게 내 인간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에 의구심이라는 구멍들이 생기기 시작했어. 아마도 회사라는 곳을 가게 되면서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게 되면서부터, 더 전으로 가서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인간관계도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서부터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생겼어.


    언제부터인가 내 소개를 하는 게 너무 귀찮아졌어. 항상 같은 레퍼토리, 같은 이야기, 그 과정을 거치면 또 형성해야 하는 라포들과 그 뒤에 자연스레 휴대폰 속 친구정도로 남게 되는 관계. 언젠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 굳은 믿음을 가진채 그저 알고만 지내는 사이, 그것도 덧없다는 걸 깨닫고는 번호조차 교환 안 하고, 인스타 아이디만 교환하는 그런 사이들. 그게 내 인간관계의 현재야. 누군가에게 상처받지도 않았고, 현타가 온 적도 딱히 없는데 그저 남에게 내 소개를 굳이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부턴가 하게 됐어.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에 어느 정도 안정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몰라. 그저 누군가의 도움이 당장에 필요하지 않아서, 절박하지 않아서 내 소개를 덜 하는 것일 수도 있어. 그리고 상대가 내게 무엇인가를 물어볼 때까지 딱히 먼저 물어보지도 않는 거지. 저 사람도 나와 적당한 거리를 원할 거라는 생각에 말이야. 사람을 좋아한다고 믿던 그 시절에는 무뚝뚝한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어. 왜 저래 살지?라는 생각조차 했었어. 오만했었지. 최근에 한 무뚝뚝한 사람이 왜 그렇게 사는지 얘기해 준 적이 있어. 평소에 에너지를 덜 쓰다가 한 번에 기를 모아서 쓴대. 그래서 평소에는 반응을 격하게 하지 않는 거래. 납득이 가더라.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내 설명을 점점 하지 않는 것도 주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고 있다고 느껴져. 대신 더 전략적으로 누군가에게 상냥해지고, 친절해지는 법도 동시에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시간이 더 지나면 말하는 법 조차 까먹는 것 아닐까. 인간관계는 눈빛만으로 형성되는 거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만 얘기하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눈으로 얘기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고 있을까?


2023.04.16.

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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