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가 좋은 이유 7
코펜하겐의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어학원에서 3주 동안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행되었던 덴마크어 중급 1 (B1) 수업의 끝에 다다랐다. 휴직을 한 이후로 출퇴근의 세상을 잊고 살다가 이렇게 매일 출근하듯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까지 어디를 부랴부랴 가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 동시에 일상에 나름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독일사람 혹은 독일어권 스위스 사람, 혹은 덴마크 혼혈인이었다. 그중 스칸디나비아 문학 및 언어를 공부하는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나머지 학생들의 국적은 스코틀랜드, 콜롬비아, 브라질, 미국, 이태리, 덴마크/태국 혼혈, 그리고 나, 한국. ^^ 학생들의 나이대는 18살부터 74살까지.
일흔네 살의 독일 여성분과 열여덟 살의 덴마크-태국 혼혈 학생이 덴마크어를 제일 잘했다. 독일 여성분은 덴마크와 국경이 접한 독일의 Flensburg에서 인생 절반 이상을 사셔서 덴마크어에 익숙하신 분이셨다. 덴마크/태국 혼혈의 고등학생은 태국에서 자랐지만 덴마크 사람인 아빠와 덴마크어를 하며 자라서 알아듣는 것에는 거의 문제가 없고 문법과 쓰기를 익히려고 수업에 등록했다고 했다. 다수의 독일어권 출신 때문인지 학생들의 덴마크어 수준은 수업 레벨보다 확연히 높았다. 이제 막 초급 (A2)을 마친 사람들이 아닌 듯했다. 덴마크어 표현 및 단어들이 독일어와 유사해서 이들은 수업을 통해 배우지 않은 것들도 한눈에 척 아는 듯했다. 그 알아듣기 힘들기로 악명 높은 덴마크어 청취 이해력도 좋았고 말도 거침없이 술술 잘했다. (이들의 취약점은 문법이었다.)
수업 첫날 그래서 나와 일부 비독일어권 학생들이 긴장을 잔뜩 했다. 그래서 몇몇이 걱정을 하며 다른 수업으로 바꾸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선생님에게 비독일어권 학생들을 위해 좀 더 수준을 낮춰달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이전 레벨의 덴마크어 수업에서 나는 항상 반에서 잘 나가던 축이었다. 그래서 내 언어감각이 남다르다고 매번 확신하며 그에 대한 자부심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었다. 그런데 그 잘 나가던 위치가 갑자기 다수의 독일어권 학생들 때문에 위협을 받자 내 에고는 두려움을 느꼈고 피하려고 했다. 금방 다른 반을 찾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것은 에고의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좀 뒤처지면 어때. 오히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면 진도도 빨리 나가고 자극이 되어 훨씬 더 빨리 늘 텐데..." 하는 내면의 속삭임(상위의식)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치치 않고 그 수업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 내 수준이 탄로 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열심히 손 들어가며 수업에 참여하고 덴마크어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결과는 좋았다. 하루가 다르게 자신감이 더 생겼다. 그리고 어제오늘, 내 옆에 앉게 된 70대 독일 여성분과 쉬는 시간 내내 덴마크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내 모습을 포착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에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은 내 자신이 뿌듯하다.
그리고 덕분에 수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좋은 에너지를 나누며 시원한 코펜하겐의 여름의 즐겁고도 건설적인 3주를 보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밖에 나가서 간단한 것들은 덴마크어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수업 이후 입을 뗄 자신은 생겼지만 오늘 아침 카페에 가서 또 순간적인 수줍음(두려움)에 영어로 주문을 했다.
코펜하겐은 사람들이 어디를 가도 모두 영어를 너무 잘해서 덴마크어를 알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덴마크어를 연습하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곳이다. 조금만 막히면 내가 됐든 상대방이 됐든 금방 영어로 바꾸어 말하게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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