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두세 번은 취미로 공연을 본다. 그리고 그중 한 번 정도는 엄마랑 함께 공연장에 간다. 일 년에 열흘쯤 엄마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낸다는 뜻인데, 이상하게도 그 열흘은 대부분 비가 온다. 정확한 확률을 계산해본 적은 없지만 대충 셈해봐도 우리는 날씨 운이 참 없다.
장마철 소나기 정도야 귀엽게 이해해줄 수 있지만 아주 심각한 수준일 때도 종종 있다. 공연장 가는 길에 무려 ‘제13호 태풍 링링’을 맞닥뜨린 적도 있으니까. 성수대교를 건너던 택시가 좌우로 휘청이고 가는 길 곳곳 쓰러진 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주던 그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비장한 얼굴로 우산을 펴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엄마는 늘 바빴다. 가족을 위해 사업을 이끌어야 했고 그 무게를 홀로 짊어진 채 30년을 소처럼 일했다. 몇 년 전, 복잡한 사연으로 회사가 폐업을 하고 나서야 엄마는 뜻하지 않은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죄스러워하는 엄마를 위해 나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공연 관람. 어린 시절 꿈이 가수였던 엄마와 나,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한 여름밤의 꿈같은 취미. 그래서 나는 이 살벌한 빗속 데이트를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작년 여름, 엄마와 어느 음악회를 보러 간 날도 어김없이 비가 왔다. 공연이 막 끝났을 때까지는 분명 하늘이 멀쩡했는데, 공연장을 나와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센 빗줄기였다. 엄마가 챙겨 온 우산 하나를 겨우 꺼냈지만 바람 때문에 제대로 쓸 수도 없었다. 뒤집어지는 우산을 붙잡으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었다.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어렵게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버스가 올 생각을 안 했다. 점점 길어지는 도착 예정시간에 초조해하고 있는데 우르르 쾅쾅! 지구 종말이 코앞인 듯 천둥번개까지 내리치기 시작했다. 그냥 공연하나 보러 나왔을 뿐인데 마치 재난 영화의 한가운데 떨어진 것 같았다.
엄마, 그냥 지하철 타자! 빗물 때문에 눈도 다 뜨지 못한 채 우리는 정신없이 광화문역사 안으로 뛰어들었다. 뜻밖의 폭우에 우리처럼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첫 번째로는 지지리도 없는 날씨운을 탓하고, 두 번째로는 그 흔한 운전면허도 없는 나 자신을 탓했다. 에라이. 지하철을 타러 가는 동안 바닥에는 우리가 걷는 대로 물 발자국이 났다. 찌끄덕찌끄덕. 젖은 운동화도 웃긴 소리를 냈다. 정말 별꼴이었다.
“엄마 괜찮아?”
겨우 난 자리 하나에 엄마를 앉히고서 묻자, 엄마가 대답했다.
“응. 난 다 괜찮아.”
엄마는 늘 그랬다. 거친 비바람에도 지지 않는 사람처럼. 실은 그러려고 언제나 애써온 사람이면서. 근데 너 너무 춥지 않니? 손이 차갑네. 내 손을 잡아주는 엄마의 짧은 머리카락에는 빗방울이 가득했다.
엄마는 늘 이렇게 내가 모르는 빗속을 걸어왔을까? 나는 문득 감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다른 손을 들어 엄마의 젖은 머리칼을 털어주었다. 엄마가 어린 날의 내게 해줬던 것처럼.
“오늘 진짜 웃기다 그치.”
킥킥. 속옷까지 홀딱 젖었으니 짜증이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러게. 엄마도 웃었다. 이 나이를 먹고 애처럼 비를 흠뻑 맞다니. 좀처럼 또 없을 듯한 일이라 재미있었다.
“엄마는 아까 어떤 노래가 제일 좋았어?”
나는 전동차 바닥에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물었다. 집에 가서 샤워하고 나온 다음에 물어봐도 되는데. 하지만 그러면 왠지 늦을 것 같았다.
지금 묻고 싶었다. 엄마가 오늘 얼마나 행복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