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育兒) 인문학

아빠의 공부 - 아들의 질문에 답하는 법

by Daddy Essay Whisky

아들이 우리에게 온 지 세 돌이 넘었다. 나이는 네 살. 이젠 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말도 잘한다. 질문에 답도 잘하고, 제법 이유를 갖추어 본인의 생각의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그 이유의 진위 여부는 무시해야 한다. 제대로 이루어진 문장 구조를 흉내 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인지 발달론에 따르면 2세부터 7세까지는 '아동기-전조작기'로, 규칙을 이해할 수 있고 자아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무엇보다 언어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아이들은 입에 "왜요?"를 달고 산다. 하루에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백 번은 '아빠'를 부르고 '왜요?'라는 말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왜요?'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 주로 교통규칙이나 생활 습관에 관한 것이기에 설명하기가 수월하다. 또 다른 대부분의 '왜요?'는 자기가 한 말을 되묻는 경우다. 자기가 한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묻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해보라고 시키고 내가 그 말을 하면 이내 '왜요?'라고 묻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을 한다. 이런 질문들에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니 할 수가 없다. 내가 전혀 모르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철학, 과학, 역사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질문들이다. 물론 잘 넘어갈 수는 있다. 실제로 몇 번은 엉뚱한 비유를 들어 넘어가긴 했지만, 답하고 난 뒤 계속 찜찜하다. 슬쩍 아들의 표정에도 뭔가 만족하지 못한 표정이 있는 듯하다.


어느 날, 하원 후 집으로 가는 도중에 아들이 물었다.

"아빠, 지금 몇 시예요?"

운전 중이던 나는 마침 신호대기 중이라 얼른 시계를 보고 답했다.

"응, 지금 네 시 삼십 분 이야."

그러자 아들이 되물었다.

"왜 네 시 삼십 분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시계에 숫자가 '4'랑 '30'이 쓰여있잖아.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거야. 앞의 숫자가 '4'니까 네 시, 뒤의 숫자가 '30'이니까 '30분' 이라고 읽는거야."

내 말을 들은 아들은 말 없이 시계를 응시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아빠, 시간이 뭐예요?"


순간, 답문이 콱 막혀버렸다.

'시간이 뭐라니? 시간은 그냥 시간인데? 뭔 질문이 이래?'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아들의 표정과 말투가 엄.근.진 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시간에 대해서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쉽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신호가 바뀐 것도 모르던 나는 뒤 차가 울리는 경적 소리를 듣고 서둘러 출발을 하며

"어... 그건 아빠가 좀 더 공부하고 알려줄게"

라고 답했다.


한 동안 그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시간은 시계를 보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시계라는 것은 그 시점에서 시간을 말해주는 것인데 그럼 과거와 미래는 어떻게 말해줘야 하는가. 시간은 흘러간다고 말하는 데 진짜 흘러가는 것인가, 애초에 시간이란 무엇인가.


사십 년 동안 모르고 지냈던 것들이 궁금해졌다. 더 많이 알고 싶은 지적 욕구가 아니라, 전혀 몰랐던 것을 알고자 하는 본능적인 지적 허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하나씩 알아갔다. 불혹의 공부는 쉽지 않았다. 한 번에 오래 공부하지도 못하는데다 쉽게 잊혀졌다. 그래서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틈틈히 그리고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공부라는 것이 신기하다. 처음에는 아들에게 더 좋은 답을 해주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었는데, 하면 할수록 내가 성장하는 게 느껴졌다. 하나를 알면, 연관된 하나가 더 보였다. 우주를 공부하니 역사가 궁금해지고, 역사를 공부하면서 철학이 궁금해졌다. 술을 공부하면서 자연과 문명을 알게 되고, 음식을 공부하니 정복의 역사가 보였다. 결국 모든 공부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보면 단순히 철학과 사상만을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플라톤은 수학을 연구했고, 그가 세운 아카데미아는 당시 그리스 수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의 우등생으로 철학뿐만 아니라 수학과 과학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학문이 발전하면서 세분화되어 각 학문들 사이에 괴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근원은 같다. 바로 '인간의 삶'. 결국 중요한 것은 이들의 연결을 알고, 그걸 풀어내고 삶에 녹여내는 '융합'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여기에 등장한다.


마흔에 시작한 아빠의 공부는 아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원래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라는 근거 없는 답변이 아닌,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고 싶어 시작되었다. 부모로서 아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좀 더 제대로 된 준비를 해주기 위함이다. 이는 입신양명을 위한 것도 아니고, 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시작한 공부는 결국 아빠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알게 하고 성장시키는 공부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 자라난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