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시간이 뭐예요? (6/6)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

by Daddy Essay Whisky

7) 현대 철학에서의 시간 - 후설과 하이데거, '형이상학, 그리고 삶으로서의 시간'

이처럼 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던 시대에 시간을 주제로 깊게 사유한 철학자가 등장한다. 바로 에드문드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이다. 후설이 살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는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인간의 마음마저도 자연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시대였다. 대표적인 기조가 인간의 마음이야 말로 모든 논리적, 수학적 대상들의 근원이라 여기는 '심리주의'와 자연과학적 방법을 유일한 학문적 방법이라 여기는 '실증주의'였다. 후설은 인간의 마음마저도 과학의 대상으로 치부받는 현실을 '철학의 위기'라 여겼다.


그러나 후설이 심리학의 모든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심리학적 방식으로 인간을 의식을 해명하는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빠르게 발전하며 성과를 내놓는 과학에 비해 철학은 예로부터 말싸움만 하는 낡고 의미 없는 학문으로 치부되었다. 이때, 심리학이 등장하면서 철학을 대신하여 인간의 의식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모든 학문의 기초가 심리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철학의 고유의 자리를 위협했다. 후설은 이 부분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기초가 되는 학문은 흔들리면 안 되는 확고한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 기초가 흔들리면 모든 학문의 체계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설은 오직 철학만이 그 기능을 할 수 있다 여기고 '현상학(Phenomenology)'을 창시한다.


본래 수학자였던 후설은 수의 기초에 관심을 가졌다. 가장 완벽한 체계를 갖춘 학문이었던 수학도 '무한'개념이 도입되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역리(Paradox)'라는 난관에 마주치게 된다. 이로 인해 물리학의 기초인 수학이 위태로워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후설은 수학적 기초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후설은 수와 의식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려 했고, 이를 위해 심리학을 도입했다. 하지만 후설은 증명에 실패했고, 이를 통해 심리학이 우리의 의식을 다루는 근본적인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논리학 연구>라는 저서를 통해 학문 전반의 기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후설의 '현상학'이 시작된다.


사실 '현상학'을 어떤 하나의 학파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어떠한 현상에서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의 기본 근간이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조와 철학적 방법론이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설의 '현상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로서의 철학'을 추구한다. 의심과 전제가 없는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위해서, 후설은 현상과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에 집중한다. 즉, 의식과 대상 사이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후설은 이를 '지향성 문제' 라 부른다. 즉, 의식이 어떠한 것을 향하느냐에 따라 대상이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를 시간에 적용하면 의식이 과거(기억)를 향하면 과거가 보이고(과거지향), 미래(기대)를 향하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다(미래지향). 지금이라는 것은 쉼 없이 흘러가지만 우리의 의식이 어느 것을 보냐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를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어떠한 점으로 분리될 수 없는 흐름이며,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을 의식이 바라보면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연속으로 보있다. 후설은 이를 '내재적 시간 의식'이라 명했고, 이는 시간은 현재의 기억과 현재, 그리고 현재의 기대가 이어지는 것이라 말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주관적 시간론'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식으로서의 시간 개념은 베르그송-후설을 거쳐 하이데거로 이어진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후설의 최애 제자였다. 정년퇴임을 맞은 후설은 하이데거를 자신의 후임자로 지명할 정도로 하이데거를 현상학을 이을 인물로 평가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고 나서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스승인 후설의 현상학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현상학은 스승의 것과 결을 달리한다. 후설은 의식과 대상의 관계에 집중했지만,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입장은 이성을 최우선시하던 기존 형이상학 전체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근대 철학의 시작을 알린 데카르트는 물론, 훨씬 이전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정신을 우선시하며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고 이성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 못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시작된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데아는 어떠한 물건이 가지고 있는 관념을 말하는데, 이는 현실과 이데아를 분리하여 이데아 세계에 있는 것만이 진정한 존재이며,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만 존재를 파악할 수가 있다고 했다. 이데아 개념은 중세에 '신'의 개념으로 천년을 지속하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데카르트로 이어진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오직 이성으로만 진리를 파악할 수 있고, 이성을 가진 인간의 위치를 최고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성의 능력은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개발을 통해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상실하게 했으며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이에 깊은 회의를 느낀 하이데거는 이성 중심의 존재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존재론을 완성했다. 존재자(대상)와 존재(있음)를 구분하고,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실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자로서의 인간에 대해 탐구했다. 시간도 인간의 삶에 깊은 연결고리를 만들고 탐구했다.


하이데거 역시 시간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시간이 아니라 의식으로 파악되는 '본래적 시간'에 천착했다. 그는 시간의 성격을 '시간성'이라 부르고,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시간성이란 있어 오면서(과거), 마주하면서(현재), 다가감(미래)이다". 즉, 하이데거도 시간은 연속적인 하나의 흐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 흐름에 한계를 두었다. 바로 '죽음'이라는 한계이다.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인간이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며, 삶을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죽음'은 모든 불안과 공포의 근원이고 인간은 이를 극복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이란 단절되지 않고 늘 흘러가는 것으로 삶을 이루고, 삶에 가치를 더 해준다. 매 순간, 매일을 두려움을 이겨내고 삶을 만들어가는 것, 그들(타인)이 아닌 자신의 삶에 충실해지는 것. 하이데거는 이전의 철학이 세상에 던졌던 '무엇인가(what)'라는 물음의 형식을 '어떻게(how)'로 바꾸며, 철학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이야기했다.



8) 아들에게 해줄 아빠의 대답

지금까지 오케아노스에서 그리스 철학을 거쳐, 중세, 뉴턴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하이데거에 이르는 인류가 시간을 고찰했던 과정을 살펴보았다. 시간은 항상 탐구의 대상이었고, 쉽게 답을 내지 못하는 난제였다. 시간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린 사람은 '시간은 금이다'라고 말한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이 유일하다. 그마저도 시간 본연의 속성이 아닌 '가치' 측면에서 내린 정의이다. 그 외 다른 철학자들과 과학자들도 시간의 속성에 집중했다. 흐름, 연속성, 기준성, 상대성 등 이러한 속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론과 탐구를 거듭하며 과학과 철학을 발전시켰다. 시간은 커다란 바탕과 근간, 때로는 도구가 되어 삶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여전히 파헤쳐지고 있으나 아직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진 않고 있다.


이 엄청난 지식의 이야기를 몇 장의 종이에 줄여서 적는다는 것은 억지나 다름없다. 그것도 이 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공부했지만, 여전히 무지한 내가 적어낸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들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기로 결심을 하였기에 꾸역꾸역 여기까지 이어왔다. 이제는 아들에게 해줄 답을 말할 때이다. 이제는 여섯 살이 된 아들이 시간에 대해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빠, 시간이 뭐예요?"


"응, 시간은 투명한 거인이야. 볼 수는 없지만, 힘이 엄청나게 세서 우주의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지. 그리고 너를 멋진 형아로 자라게 해 주고, 우리 가족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해. 시간은 힘은 정말 엄청나."


아들은 눈빛은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그간의 노고를 이해하는 듯 수긍하는 눈치다. 아들 덕에 물리학과 철학 공부도 해본다. 아들의 질문은 아빠를 자라게 한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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