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m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은 길고 긴 공원이었다. 하지만 독일에 사는 홍콩인 란안과 이야기하며 걸은 덕에 순식간에 공원을 지나 제법 먼 거리까지 걸어나갈 수 있었다. 걸음이 워낙 빨라 속도를 맞춰 걷는라 애를 좀 먹긴 했다.
낯선 사람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어디서 왔어? Where are you from?'하고 물으면 '한국, 부엔 까미노 South Korea, Buen Camino' 짧게 답하고는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찰나의 머뭇거림으로 발걸음을 맞추면 영락없이 한참 동안 신경을 곤두세워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염려스럽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얼마나 함께 가야 할지, 또 어떻게 대화를 끝내야 할지를 정하는 것에 대한 소심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마지못해서라도 이야기를 한 번 나누기 시작하면 대부분은 즐거웠고 얘깃거리는 늘 있었으며 서로가 헤어져야 할 순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꽤 먼 거리를 순식간에 걸어가게 되어 오히려 감사한 일이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역동은 만남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역동은 더욱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많은 관계를 경험하면서 깨닫는 것은 순수하고 진실된 관계일수록 역동은 매우 단순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런 관계는 머리로 계산할 필요가 없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문이 열려 자유로움을 느끼거나 혹은 위로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역동이라고 하는 것은 바둑의 수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하고 관계를 '이기고 지는' 혹은 '지배하고 통제당하는' 무언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더욱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얼마나 골치 아프고 불행한 일인가!
게다가 관계를 맺는 일에도 역시 관성이라는 것이 작용해서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은 더욱더 관계에 매몰되기 쉬워지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관계를 맺는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 이런 상태는 관성을 멈추게 할 만한 특별하고 충격적인 사건이 없는 한 평생을 가게 마련이고 굴러가면서 생기는 인력으로 인해 점점 더 유사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된다는 것이 무서운 일이다.
이곳에서는 다행히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어떤 이해관계도 바라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만남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늘 즐거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줄곧 포도밭을 걸었다. 그런데 도통 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밭 뿐만이 아니라 마을을 지나면서도 이곳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시에스타를 감안하더라도 사람이 없는 것이 영 이상했다. 어느 때엔 주인 없이 말 한 마리만 덩그러니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는 슬금슬금 다가와 외로움을 달래 달라는 듯 간절한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란안의 말대로 모든 농장이 기계로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는 작업을 마치고 지금은 농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긴 했다. 지금은 땅과 하늘만 일하는 시간인 모양이라고 대꾸했다.
씨를 뿌리고 나면 그다음은 땅과 하늘이 일을 한다...
작물이나 사람이나 같은 자연의 섭리에 맡겨져 있으니 같은 이치로 수확물을 내는 것이 틀림없다. 예전에 한참 성당 일을 열심히 하던 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만한 경험을 왜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었다. 당장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속이 답답해서 다그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가 문득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일이 있었다. 내가 인사를 받을 일을 한 기억이 없어서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니 몇 달 전에 내가 청년 성서 모임을 권해줘서 성서 공부를 하고 며칠 전 연수를 다녀왔다고 했다. 성서 연수가 무척 뜻깊어서 너무 좋았는데 내가 모임을 권한 날이 자기 생일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정작 나는 내가 그 후배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 후배 덕분에 나는 성서에 나오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의 의미를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역할은 끝이었다. 당장 어떻게 하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또 내가 전한 이야기가 좋은 소출을 낼지 어떨지는 순전히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담긴 흙에 따라 다른 것이었다.
한가로워 보이기만 한 드넓은 포도밭을 보니 그때 일이 생각났다. 사실은 사람이 뿌린 씨앗을 열심히 생명으로 키워내고 있을 땅과 하늘은 전혀 한가롭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멀고 먼 길을 걷고 나헤라 Najera에 거의 도착할 무렵 주현 씨, 헤라르도 무리를 만났다. 길을 물어볼 수 있는 헤라르도를 잘 따라갔으면 알베르게를 금방 찾았을 것을...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면 된다고 서둘러 가다가 그 일행을 놓쳤는데 그 뒤로 마을을 빙빙 돌아야 했다. 순례객으로 보이는 키가 엄청 큰 청년이 알베르게를 찾냐며 길을 알려주어 그 길로 가던 길에 어떤 할아버지가 다리 아래로 내려가라며 손짓을 해주어 또 따라내려갔다. 그런데 그 길로 가니 처음 들어섰던 골목이 다시 나오고 키 큰 청년을 다시 마주쳤다. 그는 다리가 아픈지 절룩거리면서까지 우리를 데리고 골목길을 빠져나갔는데 자기가 묵고 있는 사립 알베르게 앞으로 데려가더니 아주 좋다며 엄지를 추켜세우곤 숙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안하지만 우린 공립 알베르게를 찾는 중이란다...
엉뚱한 청년 덕분에 동네를 한 바퀴 돌긴 했지만 다행히 무척 친절한 할머니 두 분이 우리와 동행하여 길을 알려주신 덕분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작은 개천을 넘어가니 제법 큰 마트가 있어 이것저것 저녁거리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마침 큰 고깃덩어리 여덟 장이 4유로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세일을 하고 있었다. 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무척 탐을 내서 나도 말리기를 포기하고 일단 사들고 왔다.
오늘의 여정이 좀 힘들었는지 사람들이 유난히 저녁식사 준비에 공을 들이는 탓에 부엌이 북새통이었다. 우리도 우리고 헤라르도와 페데리카가 사람들을 위해 파스타를 만든다고 애를 쓰는 와중에 노리까지 거들겠다고 나섰다. 그 친구들이 음악을 틀어놓고는 한껏 흥을 부려 식당은 파티 분위기였다.
남편이 만들어준 고기 조림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부침개를 해 먹고 남은 간장병을 이고 지고 걸어온 보람이 있었다. 에디도 함께 식사했는데 두 그릇을 먹어치우고 빵을 뜯어 냄비에 남은 양념까지 모두 닦아먹었다. 남은 고기는 구워서 참기름 부은 소금장에 찍어 먹었다. 그립고 그리운 한국의 맛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우리의 식사를 마치고도 헤라르도의 파스타가 한 무더기 쌓여있어서 턱 끝까지 차도록 저녁을 먹은 것 같았다.
북적거리고 신이 나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에디에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어제부터 에디는 한국 친정에 간 부인과 연락이 되지 않아 크게 상심한 상태였고 발뒤꿈치가 완전히 벗겨져 몸도 무척 힘든 것 같았다. 분명 제임스와 함께 두 마을 전쯤에서 멈추겠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좀 무리를 해서 온 모양이었다. 쉰이 넘은 에디에게 쉽지 않은 하루였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심신이 약해진 그런 에디를 완전히 침잠시킨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오늘 하루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묻길래 별 생각 없이 미국에서 온 데이빗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데이빗의 부인은 어제 계단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미국으로 돌아가고 데이빗은 혼자 까미노를 마치기 위해 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해봤다고 했다. 우리 둘 모두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할테고 만약 혼자 까미노를 마치고 마지막 길에 선다면 너무나 슬프고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서로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인과 연락하기 위해 새벽잠을 설치며 시간을 맞춰보고 친정 언니와 대화가 여의치 않아 나에게까지 부탁을 해가며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를 하지 못한 상황이 이틀째 이어진데다 내가 괜한 이야기를 한 탓에 에디는 무척 가라앉은 것 같았다. 이미 에디의 마음은 이 길 위에 있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제임스가 이탈리아 아가씨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해도 거절하고 쉬고 싶어 했다. 함께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다행히 에디는 식사를 무척 맛있게 했고 다른 무리가 자기들끼리 시끌시끌한 덕에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편안히 쉴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에디가 식사 답례로 아이스크림을 사겠다고 해서 우리는 어둑어둑해진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나섰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들고 조용한 공원에 앉아있으니 어느 여름날, 우리 집, 우리 동네에서 친구와 만나 놀이터 그네를 삐그덕거리며 노닥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가롭고 편안하고 추억 속으로 들어간 듯한 그 친숙한 느낌이 무척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말없이 달빛을 바라보던 그 소중한 시간이 에디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