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거의 다 일어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제임스는 경주하듯 서두르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아 숙소 밖 어스름한 중에 차를 끓이고는 우리에게도 한 잔씩 건네주었다. 덕분에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아침을 맞았다.
오늘 아침의 날씨는 묘했다. 두꺼운 회색 구름이 머리 위까지 덮을 듯 무겁게 내려앉았는데 구름 사이사이로 아침 햇빛이 깊숙이 들어와 하늘과 땅의 풍경이 분리되는 듯이 보였다. 언덕을 올라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아침 햇빛을 등에 지고 어둠 속에서 걸어나오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풍경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몇 발자국 가다가 뒤돌아보기를 반복했다.
열 시가 넘어갈 무렵부터는 짙은 구름이 완전히 걷혔고 햇볕도 따뜻해졌다. 풍경은 계속해서 환상적이었다.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 거대한 그림처럼 길을 따라 이어졌다. 그런 길을 걷는 동안은 약간 정신 나간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방에 짓눌린 어깨, 묵직해진 다리와 욱신거리는 발로 인해 끙끙거림과 동시에 풍경에 감탄하며 기뻐해야 하니 얼굴은 기묘한 표정이 될 때가 많았다. 머릿속도 어떤 감정부터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상황이었다. 살면서도 종종 겪는 어려운 감정이었다. 남편과 실컷 다투고 있는데 남편 표정이 웃겨 웃음이 터진다던지 속상한 일로 한참을 울다가 먹은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어 행복해진다던지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쯤 한 날에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다른 이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 경험은 있음 직한 일이다. 더욱 적나라하게는 장례식장에서 절을 하다가 방귀를 뀌었다던지 동료의 바지가 뜯어져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는 경험담도 흔하게 회자되니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을 동시에 감당하는 것은 인생에서 늘 있어왔던 일인 것 같다. 짙은 회색 구름과 화사한 햇빛이 동시에 만들어낸 기묘한 풍경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나도 조금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자위하게 되었다. 내가 내려놓은 아이들의 삶에 대한 죄책감과 모두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시대적 비극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에 대한 자괴감. 그 불편한 감정이 계속 마음에 맴돌아 가슬거렸는데 그런 마음을 지니고도 나의 여행을 충분히 기뻐하고 즐거워해도 되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내가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다고 해서 잊지 말아야 할 감정이 밀려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 머물려고 했던 산토 도밍고 Santo Domingo에 제법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헤라르도와 주현 씨, 스위스 청년 앨런과 체코 청년 이르카가 마을 한 켠에 있는 순례자 안내소에 들어갔다 오더니 다음 마을에 좋은 알베르게가 있다며 좀 더 갈지 멈출지를 두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일단 그들이 들어선 바에 따라 들어가 맥주로 목부터 축인 후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오늘 아침, 나헤라 숙소에 있던 사람들이 이 지역 근처에 멋진 성당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는 길을 추천해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었다. 헤라르도의 말에 따르면 그 성당이 다음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자기 아버지가 그곳까지 차로 데려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이야기에 솔깃해서 그들과 함께 일단 더 가보기로 결정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한 다음 몸을 더 움직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 상태로 7km를 더 걸어야 하는 것은 정말이지 큰 도전이었다. 중간에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길에 들어서는 순간 어떻게든 다음 마을까지 가야만 했다.
내가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바에서 합류한 페데리카 덕분이었다. 페데리카는 내가 선크림을 꼬박꼬박 챙겨 바르고 긴 팔 옷을 입으며 피부를 태우지 않는 것에 대해 이유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종교, 정치 상황을 궁금해했고 한국에서는 정말로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으며 직장생활이 어떤지 알고 싶어 했다. 나의 모든 대답은 페데리카를 놀라게 했다. 그녀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나는 설명을 계속 덧붙여야 했다. 특히 여성 인권에 무척 관심이 많은 그녀에게 여성이 대통령이 된 우리나라의 상황이 왜 기쁘지만은 않은지와 육아휴직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사회적 환경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에게 설명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완전히 격앙되어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야는 목이 잠겨 말 중간중간 헛기침이 섞여 나왔다. 한국에서의 일상이 타국의 누군가에게는 이렇게도 낯설고 기이한 일이라는 현실이 영 씁쓸했다.
어쨌거나 가벼운 가방을 메고 빠르게 걷는 그녀와 발을 맞추며 걷는 것에 더해 감정까지 격해져서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숨이 찼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는 이미 그라뇽 Granon에 들어와 있었다. 페데리카와 나는 걱정했던 큰 고비를 넘기고 목적지에 무사히 이르렀다는 사실에 서로서로의 손을 잡고 거듭 고마워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미에 대한 기준이나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는 너무나 다른 것이 많아 길고 긴 부연 설명과 이해가 필요했지만 신에 대한 생각과 종교의 역할에 대한 의견은 단번에 일치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진리를 깨달은 경지는 아니겠지만 '진리'가 지니는 보편성만큼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세상의 것은 제각각 다른 가치에 의해 움직이니 쉽게 변하고 낱낱이 흩어져버릴 테지만 시간과 공간을 꿰뚫고 이어지는 진리는 분명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동일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묵직함이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을 이 길 위에 함께 묶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을 함께 걷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몇 천년 전에 이 길을 걸은 순례자들까지도 말이다.
우리가 들어간 알베르게는 새로 생긴 훌륭한 곳이 전혀 아니었다. 완전히 정반대였다. 몇 백 년은 되어 보이는 석조 성당 위에 삐그덕거리는 마루를 얹어 지은 숙소였다. 심지어 침대는 없고 마루 위에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아야 했다. 찜질방이 익숙한 우리야 오히려 편하다 싶었지만 다른 일행들은 적잖이 실망한 것 같았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멋지고 훌륭한 시설을 기대한 우리의 세속적인 욕심을 다독이기라도 하듯, 그곳에서의 시간은 상상하지도 못한 특별함으로 가득 찼다. 헤라르도의 부모님이 늦게 도착하시고 밖에 비가 오기 시작해서 성당을 가지는 못했지만 그곳에 묵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경험은 매우 새로웠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인이 말해준 특별한 알베르게가 바로 이런 곳인 모양이었다.
저녁식사의 규칙은 간단했다. 각자 원하는 대로 저녁 준비를 돕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 무언가에 일조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공교롭게도 이탈리아 엄마와 일본인 아빠의 귀여운 여자아이 '가야'와 눈이 맞아 한 시간 가까이 놀아주며 아이의 엄마, 아빠를 야채 다듬기에 집중하도록 돕게 되었다. 아무래도 직업을 숨길 수가 없었다.
모두 함께 준비한 저녁식사는 조촐했지만 웃음으로 배가 불렀고 낯선 이들과는 식사를 함께 한 것만으로도 '가족'이 된 것처럼 친숙해졌다.
알베르게 관리인 마리아는 식사를 마친 뒤 골방을 지나 은밀한 곳에 숨겨진 듯한 성당 안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오래된 석조건물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서늘하게 파고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공기는 묵직하고 푸근한 것만 같았다. 그녀는 우리를 자리에 앉도록 하고 촛불만 켜 놓은 채 명상의 시간을 갖도록 준비해 주었다. 매일매일을 바쁘고 힘들게 걸어온 와중에 침묵 가운데 머무르는 시간은 너무나 평온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고요했지만 사람들의 기운이 촛불의 온기와 함께 살갗에 닿아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침묵이 끝난 뒤에는 모든 사람들과 포옹하며 서로의 평화를 빌어주었다. 사람과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심장을 가까이하는 행위가 그렇게나 따뜻한 느낌이었다는 것을 너무 오래도록 잊고 살았다.
앙증맞은 가야가 늦은 밤이 되도록 귀여운 짓을 하며 우리 자리를 떠나지 않는 바람에 쉽게 잠자리에 누울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 덕에 잠시라도 쉬는 시간을 얻을 수 있으니 굳이 가야를 말리지 않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던 프랑스 청년이 내일 아침 유아 납치범으로 신문에 나겠다며 우리를 놀렸다.
한껏 낮아진 잠자리 덕분에 우리는 한 가족처럼 웃고 떠들며 하루를 마쳤다.
모든 것은 예상 밖이었고 기대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선물'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