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와 벨렘

by 신지명

포르투갈에서의 첫 번째 일정은 파티마 성지순례가 되었다. 원래의 일정에 없던 방문지였다. 우리는 파티마가 포르투갈에 있다는 생각도 미처 못했다. 까미노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이 우리가 포르투갈에 간다고 하니 파티마에 가냐고 몇 번을 물어 그제야 지도를 들여다보고 갈 수도 있겠다 싶어 급하게 결정을 한 것이었다. 어제 스페인에서 내려오는 버스가 파티마에도 들르긴 했지만 이미 오래전에 리스본 숙소를 예약해놓은 터라 일단 리스본으로 내려왔다. 그곳에 숙소를 잡아 하루를 보내고 다시 리스본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했다.

보스케에 머물며 인터넷으로 예매한 '레데 익스프레소 rede expressos'라는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어 마음을 졸였는데 어제 버스터미널에서 물어 물어 같은 터미널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미리 확인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리스본에는 제법 큰 버스터미널이 몇 군데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아서 출발지를 확인하지 않았으면 낭패를 볼 뻔했다.
긴 여행의 출발 전, 나의 꼼꼼한 계획은 러시아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바쁜 일정에 쫓겨 그 뒤의 일정은 일일이 준비를 하지 못하고 무작정 오른 길이라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그 전 날, 혹은 그 날 아침에 겨우 확인하고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은 처음 며칠이 지난 뒤부터는 특별한 정보를 알아볼 필요 없이 그저 다니기만 하면 되었으니 사십일이 지난 지금 마음이 있는 대로 풀어져버린 상태였다. 그래도 그 전처럼 인터넷으로 수차례 들여다본 곳에 편안히 도착해서 '아, 여기가 거기구나'하는 '확인 여행'과는 또 다른 여행의 맛은 있었다. 검은 천으로 덮여있는 호기심 상자에 손을 넣어보는 것과 같은 묘한 긴장감과 해소감이 나쁘지 않았다.
어제 내렸던 '세떼 리오소 sete rios'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쯤 다시 거슬러올라가 파티마에 내렸다.


내가 처음 가톨릭 신앙을 '인지'할 수 있던 어린 시절에 즐겨보던 만화잡지가 있었다. 지금이야 현란하고 재밌는 매체들이 널려있지만 그 당시는 회색빛이 도는 질 나쁜 종이에 그려진 만화를 보는 것이 아주 재미난 일 중 하나였다. 낮에는 텔레비전 방송을 해주지도 않았고 게임기가 있는 집도 많지 않아 친구의 어머니가 허락을 해주셔야 잠깐이나마 놀 수 있었다. 나머지의 길고 긴 낮 시간은 목 잘린 종이인형을 테이프로 수술해주거나 동그란 딱지를 뜯어 통에 모아놓는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때로는 언니, 오빠가 로봇을 조립하는 동안 네모난 틀에서 작은 부품을 돌돌 돌려 뜯어주거나 완성된 몸통에 'v'자 같은 장식 스티커를 삐뚤어지지 않게 붙이는 일을 돕기도 했다.

그런 시절에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두툼한 만화잡지를 본다는 것은 시간을 한없이 쏟아부을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다음의 이야기를 보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때는 그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처럼 몇 초만에 원하는 자료가 다운로드되지 않으면 다리를 떨며 불안해하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모든 추억이 풍기는 아련한 분위기와 함께 저장되어있는 만화가 바로 가톨릭 어린이 만화잡지에 연재되었던 황미나 만화가의 '기적의 아이들'이었다. 이곳 파티마에 살던 루치아와 히야친따, 프란체스코. 그 세 명의 아이들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시고 그로 인해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감옥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는 이야기. 두 동생은 그 당시 그 지역을 휩쓴 스페인 독감으로 일찍 죽고 루치아만 남아 성모님의 메시지를 간직하고 평생 기도로 살았다는 이야기는 그 만화 덕분에 어린 나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지게 되었다. 내 또래 아이들의 깊은 신앙심에 무척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 이렇게 오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침 오늘이 성령강림 대축일이니 성령의 이끄심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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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성지에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초원과 돌로 지어진 작은 성당이 있지는 않았다. 이미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서 거대한 현대식 성당이 새로 지어지고 넓은 광장이 깔끔하게 정돈되어있었다. 하지만 미사 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사람들이나 무릎을 꿇고 앞으로 나아가며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신심은 예전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미사가 끝난 후 광장의 제대에서 성모님 발현 장소에 지어진 작은 건물로 성모상이 모셔지는 동안 사람들이 흰 손수건을 머리 위로 흔들며 송별의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 모습에서 이곳 사람들이 성모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지가 잘 느껴졌다. 성모님의 보살핌을 청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오히려 성모님을 보살펴드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2015-05-24-18-14-31-3483.JPG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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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4-18-36-37-3496.JPG 가로등의 그림자 아래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봐도 눈부시게 파란 하늘뿐, 성모님이 나타나시지야 않았지만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을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나에겐 특별한 방문이었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오니 이미 네 시가 넘었다. 어제 주현 씨가 리스본에 들어왔다길래 오늘 저녁이나 함께 먹자고 약속을 해놓은 터라 마음이 좀 급했다. 다른 곳을 갈 시간은 빠듯하고 벨렘 Belem지역을 둘러보고 유명하다는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갈 참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15번 트램을 삼십 분도 넘게 기다린 탓에 에그타르트만 겨우 사들고는 다시 트램을 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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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내내 고작 에그타르트를 줄까지 서서 사 먹어야 하나 싶은 표정이었던 남편은 돌아가는 트램 안에서 꺼내 먹은 타르트 한 입에 '개안 開眼'하게 되었다.
내 손 위에서 따끈따끈하게 존재감을 표하고 있는 타르트를 모른 채 할 수 없어서 트램에 타자마자 꺼내 먹은 것이었는데 우리는 민망한 줄도 모르고 온갖 희한한 소리를 내가며 그 맛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바삭하고 고소한 페스츄리가 부서지면서 몽글몽글한 크림과 뒤섞여 입안에서 아사삭 씹히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덩어리감 없이 부드럽게 녹아서 사라지는 크림은 처음 먹어보았다. 그 달콤함이란! 맛으로 들어와 향으로 사라지는 달콤함이 풍부한 여운을 남겼다.

나도 한국에서는 생전 사 먹지 않는 음식이지만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으니 경험은 해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편의 시선을 모른척하며 산 것이었다. 어느 여행이든 음식만큼 강렬하게 기억되는 것은 또 없다. 맛과 향, 식감과 먹는 소리까지 오감을 다 쓰는 경험은 오로지 음식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아 약속이 어긋난 주현 씨와는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주현 씨와 친구들을 주려고 남겨둔 나머지 네 개의 타르트를 마저 음미할 수 있게 된 것을 은근히 감사할 정도로 우리는 그 맛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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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머물다가 야경이라도 보러 나갈까 싶어서 28번 트램을 기다렸지만 이것도 역시 삼십 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만족스러운 일들이 가득했던지 야경을 보지 못한 것쯤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스페인 피스테라에서 길의 끝에 있는 진짜 바다를 보고 온 터라 남들이 다 가는 '유럽의 땅끝, 호까 곶 cabo da roca'에도 가지 않기로 했으니 그저 저녁이 내려앉은 포르투갈 바닷바람이나 맞자고 방향을 돌렸다.
리스본은 내일을 위해 조금 남겨두어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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