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떠나는 날이 오긴 왔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었다. 보스케 사모님이 차려주신 정갈한 아침식사를 마친 뒤 다시 앞, 뒤 두 개씩 가방을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사모님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또 먼 길을 떠나는 우리가 걱정되셨는지 귀한 신라면을 네 개나 챙겨주시며 건강과 안전을 기원해주셨다. 따뜻하고 친절한 대접에 이틀의 짧은 만남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콤포스텔라 버스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 안에서는 한 할아버지가 남편과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시고는 버스에서 내리셨다. 그 작은 격려에 알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이 일렁거리기 시작한데다 창 밖으로 조가비가 달린 큰 배낭을 메고 나무 지팡이를 든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자 나는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40일의 시간 동안 길이며 골목골목, 건물의 간판과 창문들, 들꽃 하나하나 눈길을 수도 없이 건네고 쓰다듬었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곳도 그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할 수 있고 동네 어귀의 바 안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누가 언제 도착하거나 떠났을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도시 어디라도 가면 아는 얼굴 한 명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반가운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대조차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오며 가며 눈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던 수많은 사람들을 완전히 떠나버리는 것이 못내 아쉬워 밀려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산티아고 우울증이 있다고 하더니만 아직 채 벗어나기도 전부터 이별하는 여자마냥 울음을 삼키면서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산티아고의 마지막 모습을 하나하나 쫓았다.
예전에 내가 까미노를 몇 번씩 온다는 사람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제임스가 '친근함 familiarity'라고 대답해주었었는데 그땐 단지 이 길이며 여행 방식이 익숙하고 쉽기 때문이라고만 알아들었었다. 하지만 떠나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깊은 친밀감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헤라 Najera에서 사람들과 포옹했을 때 심장이 가까워지며 느꼈던 그런 느낌 말이다. 길을 걸으며 끌어안았던 모든 것들, 차근차근 마음에 담았던 모든 것들과의 친밀감이 사람들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나도 언젠가 다시 오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버스터미널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혹은 우리처럼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스페인의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 리스본까지는 버스로 10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인지 버스에 타자마자 정신없이 잠을 잤다. 포르투갈로 넘어간 뒤 포르토 Porto에 잠시 내려 공원을 산책한 것 외에는 완전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리스본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의 바로 앞 전철역으로 가 전철표를 사려고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기계가 돈을 자꾸만 뱉어내는 탓에 표를 살 수가 없었다. 다른 기계로 시도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을 시도하고 나서야 20유로짜리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챘는데 더 작은 단위로는 가진 돈이 없었다. 시간이 늦어 전철역 안의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고 돈을 바꿀 곳도 없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도움의 손길은 어느 곳에나 있게 마련이다. 마침 한국인 여성 두 분이 우리처럼 가방을 한 가득 메고 전철표를 사고 있었다. 그분들도 뭔가가 뜻대로 되지 않아 포르투갈 청년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분들이 기꺼이 돈을 바꿔주신 덕분에 표를 사고 전철에 오를 수 있었다.
익숙한 까미노가 끝나고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슬슬 실감나기 시작했다.
오늘 특별한 축구경기가 있었는지 축구 유니폼을 입고 응원수건을 두른 사람들로 전철 안은 꽉 차있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거대한 가방에 폭 쌓인 채 옴짝달싹 못하고 이십여분을 가서야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지경에 놓이고 보니 서울로 관광을 온 외국사람들이 퇴근길 지하철에 오를 때 얼마나 고생스러울지 상상이 되었다. 그 고생을 감수할 만큼의 좋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좋으련만.
호스텔 '골든 트램 Golden tram 242'는 리스본 관광지 한복판에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전철에서 내려 어두운 골목을 걸을 때만 해도 약간 긴장이 되었는데 큰길로 나오고 보니 쉽게 잦아들 것 같지 않은 열기가 가득한 거리였다. 조용한 시골 동네에만 있다가 불빛 환한 관광지로 오니 아직은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호스텔은 도미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침대마다 커튼이 쳐져있고 침대가 널찍해서 매우 안락했다. 주방도 매우 쾌적하게 잘 되어있어서 편안히 사용하기도 좋았다.
시간이 늦고 피곤해서 마트를 찾아 나설 엄두는 내지 못하고 보스케 사모님이 챙겨주신 '일용할 양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순례객'에서 '관광객'으로 탈바꿈한 첫날 치고는 별 탈 없이 하루가 흘렀다. 이제 곳곳을 흘러 흘러 가볼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