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동안 예산이 허용하는 한 그 지역의 전통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대부분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슬로베니아에서 먹은 짠 전통 스튜, 런던의 밍밍한 피시 앤 칩스, 로마에서 먹은 아는 맛이지만 짠 파스타와 피자, 라자냐도. 그런 음식을 사 먹을 때마다 ‘하! 내가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이걸 사 먹는 게 맞나? ’라고 스스로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햄버거를 사 먹기로 했다. 그런데 영국은 왜 햄버거도 맛이 없는 걸까. 햄버거 빵이 이렇게 질긴 것이었나.
누나를 만나 호텔에 체크인하려면 자정이 넘어야 한다. 밤늦게 까지 문을 여는 곳을 찾아 맥도널드에 들어갔다. 근데 9시가 되니까 나가라 한다. 구글 지도에는 분명 새벽 3시까지 문을 연다고 나와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9시부터는 좌석을 이용할 수 없고 테이크 아웃만 된다더라. ‘그 구글’의 지도 앱이니까 네이버 지도처럼 정보도 잘 정리되어 있을 줄 알았다. 아, 유럽의 시스템. 내가 과소평가했다. 맛없는 햄버거와 밀크셰이크, 감자튀김에 무려 6.99 파운드의 거액만 날렸다. ‘6.99파운드가 어떻게 거액입니까? ’라고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나 같은 백수가 한정된 예산으로 해외여행을 두 달에 걸쳐하게 된다면(심지어 부모님 돈도 안 받으려고 계속 거절했다. ) 그런 돈도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벨파스트 구글 지도를 요리조리 찾아보다가 벨파스트 센트럴 버스 정류장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벨파스트 거리를 지나, 노숙자들이 진을 치는 호텔 앞을 지나 겨우 도착했다. 실내는 따듯할 줄 알았다. 너무 춥다. 문이 거의 열려있다시피 해 바람이 다 들어왔다. 아르바이트했던 사장님이 선물로 주신 맨투맨을 챙겨 왔어야 했나 보다. 부피가 너무 커서 챙겨 오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친구가 필요 없다며 준 바람막이로 충분히 따뜻하게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의 착오였다. 북아일랜드의 날씨를 너무 얕잡아봤다.
내가 과소평가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얼굴에 피가 잔뜩 뭍은 한 백인 남자가 들어왔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이거 좀 위험한 상황인가 싶었다. 하필 내가 남자가 나온 문 바로 앞 벤치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일어나 나가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되돌아 나갔고 노란 조끼를 입은 버스정류장 직원 두 명이 그 남자를 쫓아 나갔다.
누나가 벨파스트 치안 안 좋은 편이니까 조심하라고 했는데 솔직히 치안 안 좋은 파리에서, 베니스에서, 로마에서도 팔찌 강매단, 싸인 소녀단, 돈 구걸하는 노숙자들 속에서 살아남은 남았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 싶었다. 벨파스트가 아일랜드 독립에 관련된 분쟁지역이긴 했지만 그 분쟁은 끝난 지 오래였고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밤 10시에 해가 직기 시작하는 나라인데 뭐가 그리 위험할까 싶었다. 그런데 무서워졌다. 마약 한 듯 멍해 보이는 사람이 피 철철 흘리며 다니는 동네에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자정까지 있어야 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아무리 해가 늦게 진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새벽 늦게까지 문을 여는 햄버거 집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왜 햄버거 집이냐면 보통 레스토랑은 문을 10시까지 밖에 열지 않고 햄버거 집은 그래도 오래 여니까. 맛있는 햄버거를 먹고 싶었다. 그렇게 처절한 가게 찾아 삼만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