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첫 사회 생활은 어린이 교양 방송 작가였다. 당시 6개월 세계여행을 간다고 주변에 큰소리 뻥뻥쳐놓고 2개월 만에 태국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치료를 위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6개월 간의 여행을 위해 일이년의 시간을 준비했던 터라,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우울감에 빠졌다. 영어공부를 좀 해서 다시 나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여행 중에 아는 드라마 작가님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걸 어찌 알고 한국에서 선생님께 다시 전화가 왔다. ‘막내 작가 한 번 해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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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원래 내 꿈은 드라마 작가였다. 퇴근하면 항상 안방에서 누워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던 아빠, 할머니네 댁을 가면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가 하는 시간이 되면 리모콘을 찾아 채널을 돌리던 할머니. 우리는 할머니와 드라마를 같이 보고, 드라마가 끝나면 집에 가곤 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집에 없던 시기에는 홀로 텔레비전 드라마 ’허준‘을 보며 외로움을 삯혔다. 중고등학생이 되자 공부 때문에 더는 드라마를 볼 시간은 없어졌지만, 저녁에 공부를 하러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드라마를 더 보고 싶어서 부모님 옆을 비적거렸다. 어떤 드라마가 방영되는지, 어떤 내용에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 한 해의 라인업을 모두 꿰뚫고 있는 게 나의 소소한 취미였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드라마 아카데미를 신청했다. 일주일에 한번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을 물론 강의장을 오고가는 길까지 너무 가슴벅찼다. 꿈을 이루려고 가는 길이 이렇게 행복하단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첫 단막극을 몇날 몇일이 걸려 밤새 제출했을 때는 너무 고생스러웠지만 그에 반하는 희열을 느꼈다. 나는 내가 드라마 작가가 될 줄 알았으니까. 근데 그게 1년을 안 갔다.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뚜렷한 계기는 없었지만 ‘드라마’라는 상업적인 장르에 대한 회의가 일었다. 목표가 사라진데에 방황을 했고 6개월 세계여행이라는 길에 올랐다.
나를 가르쳤던 드라마 작가 선생님은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에 막내 자리가 하나 났다고 했다. 드라마를 배우던 당시는, 차분하고 여유 있어보이는 라디오 작가라면 모를까, 교양이나 예능을 만드는 비드라마 작가는 절대 되지 않기로 혼자 마음 먹었다. 그 이유는 열정페이 때문이었다. 밤낮 없이 일하는 이미지. 상상만해도 진절머리가 났다. 그런 내게 ‘비드라마 작가’ 자리가 들어온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콧방귀를 뀌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여행에도 실패, 드라마 작가로 길을 찾는데도 실패, 그렇다고 다른 대외활동이나 자격증 같은 준비도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일반 회사에 취업할 생각도 없었고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 상태로 대학교 3,4학년이 되자 취업 불안이 극에 달했다.
나는 선생님께 그 일을 해보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휴학 기간은 남았고 그 시간 안에 여행을 가든, 무언가를 하긴 해야했다. 여행은 내 불안을 잠재우는 게 아닌 유보시킬 게 뻔했으니까. 일을 해야겠다.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비참한 기분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부러진 어깨를 고정시키는 거치대를 매고 막내작가 면접을 봤다. 이주 뒤 거치대를 풀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생동하는 5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