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잡스. 방송작가
사무실은 어둡고 침침했다. 놀라운 건 지하도 아닌 2층인데 제대로 뚫린 창문 하나 없었다. 에어컨은 오래돼 틀면 물이 흘러나와 항상 주기적으로 받침대 물을 버려주어야 했다. 대표는 자주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했고, 빚을 갚겠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고 혼자서도 때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대표는 왕년에 잘 나갔던 지상파 간판 프로그램을 제작했지만 그 이후 뚜렷한 성과는 없이 계속 내려가는 길을 걷는 듯 보였다.
사무실엔 메인 피디와 보조 피디 2명, 대표, 그리고 막내작가인 나까지 총 4명이 상주해 있었다. 메익 작가와 서브 작가는 회의 때만 참석하고 나는 주로 그들이 메신저로 시키는 일을 했다. 알바도 해봤고 학교에서 학생처에서 일하면서 어른들을 대하긴 했지만, 학생과 교직원 간의 관계였지 직장 상사나 회사랑은 달랐다. 서로 농담도 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있었다. 권위적인 상사는 아니었지만 사무실 안에는 답답함으로 가득찼다. 환기도 안되고 어두컴컴한 데 사람이 있어도 개미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것처럼 늘 항상 적막이 감돌았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숨이 턱 막혔다.
대부분 내가 제일 먼저 출근해 사무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출근하는 길,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어떻게든 몸을 이끌고 집에서 나와 겨우 사무실로 가는 버스를 내 몸을 태우고, 현실을 도피하고자 버스에선 선잠이 들고, 내릴 때즈음이면 억지로 스스르롤 깨워 겨우 목적지에 내렸다. 그 사무실에만 들어가 앉아있으면 무거운 돌덩어리가 나를 누르는 것 같이 축 져지고 우울할 수가 없었다. 우울감을 숨기려 애써 밝은 척도 해보고 목소리 톤도 올려보았지만 티가 난 모양이었다. 늘상 심드렁한 대표가 어느 날 나를 보며 ‘우울해보여‘라고 하며 내 자리를 지나갔다. 그때 나는 잠깐 겪는 가벼운 우울감 정도로 생각했는데, 돌이켜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다. 그만큼 깊고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느낌은 없었다.
사실 내가 그토록 우울했던 이유는 길을 잃었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세계여행을 갔다온 뒤 여행작가가 되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여행작가가 바로 되지 못했을 테지만, 어쨌든 학생시절부터 꿈꿔왔던 드라마 작가도, 다시 꿈을 품은 여행 작가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현실보단 이상적인 사람이었고, 대학시절 내내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 외에는 나에겐 다른 대안이 없었다. 자격증을 따고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사회로 나갈 현실적 준비보다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그 꿈을 아는데 대학 시절을 썼다. 현실 앞에 무력하고 불안해진 나머지, 세상에 어느 한 구석이라도 내가 쓸모 있는 곳이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변했다.
우울도 우울이지만 ‘출근’이라는 것이 내게 너무 낯설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 매일 머리를 감으면서 ‘내가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 자문했다. 존경하는 우리 아빠는 20년이 넘게 지금까지도 한 직장에 다니며,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곳으로 출근한다. 그런 아버지를 둔 딸은, 나는 아빠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매일 같은 곳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고, 대답은 늘 아니, 자신 없어, 그러니까 나는 취업하지 않을 거야, 취업 못해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보다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취업하지 않고 창업이라던지 다른 길을 모색했을 텐데 나는 그냥 매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탐구하고 배우러 다니며 회피했다.
대학생 때는 오전 오후 들쑥날쑥한 시간표에 늦잠 자는 날도 더러 있고 매일 매일 다른 하루를 보냈다. 직장인이 되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곳으로 출근하고 정해진 업무를 하며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하는 일이, 예상했듯 미칠 것만 같았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내 삶이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매일 저녁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그들을 만나며 조금이나마 다른 하루를 만들어보려 발버둥쳤다. 나는 점심시간이건 퇴근 후건 틈만 날 때면 근처 대형서점과 중고서점으로 피신해 숨을 돌렸다. 내 마음대로 주어진 자유가 있었던 여행 생활을 하다, 모든 것을 오더 받고 수행해야 하는 사회 생활로 온 순간, 결박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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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녹초가 될때
계속 머리가 지끈거릴때
사무실에서 받은 꾸중과
혹은 작은 실수들 때문에
언짢을 때면
최근에 다녀온 여행 사진을
뒤척이다
작년에 갔다온 내일로 사진까지
내려가다
15년에 14년에 13년에
내 대학생활에 함께했던 답사팀까지
가끔은 내가
과거에 사는지
현재에 사는지
구분이 안될 때가 있다
인간은 늙으면 추억을 먹고산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고 좋았는데,
지금은 추억만 먹고 살게 될까봐
불현듯 두렵다
(16.07.21 블로그에 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