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잡스. 방송작가
사람은 적응의 동물. 누구나 그렇듯,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고 세달이 지나자 몸과 마음이 적응이 되었다. 여전히 전화 통화를 하는 일은 스트레스였지만 매일 똑같은 일상에 서서히 안정감을 느꼈다. 삶의 규칙적인 패턴이나 습관이 생겼다. 틀에 박힌 생활은 절대 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퇴근 후 시간을 즐기는 요령도 생겨났다. 학생이었던 시절엔 매일 과제에 시험 공부에, 아르바이트, 교회 활동 등 낮이건 밤이건 제대로 마음 놓고 쉬지 못했다. 직장을 다니고 나선 퇴근 후에 마음껏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과제나 시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6시 이후로 완전한 자유의 몸. 보상심리에 오히려 저녁엔 어떻게 더 잘 놀 궁리를 했던 것 같다. 퇴근 후 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이 된다는 이 사실이 낯설면서 반가웠다.
돈이 주는 안정감도 맛보았다. 최저임금 정도의 월급이었지만 항상 알바만 하던 나에겐 적지 않은 액수였다.어릴 적부터 배우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는데, 대학생이 된 뒤로 알바를 해서 충당하긴 했지만 늘 생활이 넉넉하진 않았기에 자주 배우고 싶은 일을 다음으로 미뤘다. 어느 날은 너무 듣고 싶은 글쓰기 강좌가 있었는데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게 너무 속상해 참다 참다 엄마 앞에서 눈물을 터뜨렸다.(결국 엄마는 자신이 조금씩 모은 돈으로 그 강의를 등록해주었다).이제 부모를 원망하지도, 욕구를 억누르지도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돈이 주는 자유로움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받던 용돈도 처음으로 끊었다. 한달에 한 번 엄마, 아빠를 모시고 외식을 했다. 온전히 내 힘으로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계산대 앞에 자신있게 섰던, 감격스러운 첫 순간. 학창시절, 상장도 받아오고 반장도 되어봤지만 꼭 부모님께 처음으로 효도를 하는 기분이었다. 자식 키우길 잘했구나, 아직 애인줄 알았는데 내 자식이 다 컸구나, 부모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소비에 대해서도 관대해졌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조금 덜 고민하며 죄책감 없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라? 공부하면 스트레스만 받는데 일을 하니까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아도 돈이 나오잖아! 이때부터 학생보다 직장인이 더 좋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돈까지 준다고? 최고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으로 학생보다 직장인이 낫다는 것이지, 일하는 게 좋다는 건 아니다. 직장인보다 백수가 낫다. 직장을 다니면 없던 병도 생기고, 그만두면 있던 병이 낫기도 하기에
중국어 공부를 하고 예전부터 눈여겨 봤던 소설 작법 강의를 들었다. 라디오와 음악을 듣고, 책과 영화를 보았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 때 내가 행복하고 즐거워하는지 알게됐다. 무엇을 좋아하고 또 무엇에 관심 있구나. 어느새 일의 지루함도, 퇴근 후의 무료함도 사라졌다. 하나씩 하나씩 남이 해본거 안해본거를 했다.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였고 퇴근 후에는 나와 재밌게 놀았다.
첫 막내 작가 생활은 마치 인턴 생활 같았다. 학교를 벗어나긴 두렵고, 그렇다고 계속 머물러있긴 불안한 나에게 학생과 직장인 그 사이의 역할이었다. 학생과 사회인의 경계에 서서 불리할때면 여전히 학생이란 신분 뒤에 숨고 싶었다. 다행히 방송 생활은 나름 재밌었고, 졸업 후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은 꽤 반갑고 소중한 것이었다. 휴학기간 포함해 대학생활 6년 만에 드디어 진로랄게 정해졌으니까. 사회로 나갈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살면서 종종 ‘사회 부적응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도 내게 맞는 옷은 없었다. 내게 맞는 친구, 내게 맞는 꿈, 내게 맞는 애인, 내게 맞는 일자리, 내게 맞는 부모가 그랬다. 거대한 사회 구조 안에서 나는 쓸모 없는 부품, 어디에도 맞는 곳을 찾을 수 없는 나사 같은 것. 그런 기분이 때로 나를 휘감을 때면 어느 별로 가야할까 공상에 빠지곤 했다. 홀로 우주를 헤매는, 뾰족하고 날 선 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