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철을 아시나요?
일년이 지나 학교에 다시 복학하였다. 학교를 떠나는 게 마냥 두려웠는데 이제는 하나씩 헤어질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언제부터 학교가 이렇게 예뻤을까. 역시 마지막에는 힘이 있다. 머리가 지저분해 자르려고 하면, 꼭 내 머리가 언제 이렇게 자연스럽고 예뻤나 생각이 들고 이사 날짜를 잡으면 내가 살던 도시에 정이 들었다는 걸 그제서 깨닫는다. 자주 찾았던 식당이나 빵집이 눈에 아른거리고 매일 지나단던 그 길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다. 지금 나의 교정도 그렇다. 오후의 햇살이 비치는 교정, 떠들썩하고 활기넘치는 캠퍼스, 학교 주변의 맛집, 모두가 부러워하는 찬란한 대학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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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한학기에는 복수전공인 문창과 수업, 문창과 필수 교양만 남았다. ’문사철‘. 문학 역사 철학, 보통 인문학이라고 분류되는 대표 학문을 묶어서 이르는 말이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땐 취업이 잘 안되는 학과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더 많이 쓰였다. 그런 전공을 한 개만 가져도 걱정인데 나는 무려 두개나 가지고 있는 ‘문학’ ‘사학’ 전공자였다.
고3때 사학과를 지망했다고 하자 평소 좋아했던 교회 한 어른이 ‘경제학과’나 ‘경영학과’를 가야한다며 나를 말렸다. 우리 부모도 내가 사학과 가는 걸 반대하지 않으셨는데 (생각해보니, 지나가는 말로 아빠는 기술을 배워야하지 않냐고 하긴 했다) 취업이 안된다는 이유로 나의 선택을 부정적으로 말했다. 실용적인 곳을 가야한다는 맥락이었다. 자신의 아들도 그래서 치위생학과를 갔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오빠였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다니 안타까웠다.
내 결정에 확신이 있던터라 진학에 망설임은 없었지만 그 어른이 한 말은 두고두고 머리속에 남았다. ‘내 선택이 잘못된 걸까?’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의 결정이었을까’ 이런 작은 의심이 한구석에 자리잡았다.
사학과에 입학해 전공 수업을 들을 때 정말 행복했다. 고등학교 시절 문과 이과를 나누면서 어려운 과학을 더이상 배우지 않아서 좋았는데, 대학생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과목만 들을 수 있게 된 거나 다름 없으니까! 하지만 사학과를 나와서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학과생의 삼분의 일 정도는 공무원 준비를 했다. 공무원 열풍이 분 때이기도 했다. 다른 삼분의 일은 대학원에 가거나 교사를 준비했다. 다른 삼분의 일은 일반 회사에 들어갔다. 나는 가방끈을 더 늘릴 생각은 없었고 공무원은 더 생각이 없었다. 그럼 일반 회사를 가야하는데 앞에서 말했듯 회사에 취업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막연히 ‘글쓰는 사람’ 이 되고 싶었다.
운이 좋게도 학교에 문예창작학과가 있어서 복수전공할 수 있었다. 우리학교 문창과는 하이레벨이었는데 수시 전형으로 들어온 친구들은 대개 공모전 입상을 한 화려한 수상 전력이 있는 친구들이었고, 나머지 정시로 들어온 친구들도 대부분 예고 출신이었다. 뼛속부터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그들과 함께 경쟁을 하니 박탈감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소설 쓰는 일은 너무 희열이 느껴졌다. 복수전공을 시작한 뒤로, 책만 읽던 나는 조금씩 글도 쓰기 시작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돈 버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설가가 되기엔 밑천이 너무 부족했다. 같은 문창과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실력이라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낼 수 없었다. 그럼 글을 쓰면서 매달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뭘까. 드라마 작가도 회차당 돈을 받기 때문에 매달 월급을 받는 일은 아니다. 드라마 보조 작가로 우선 시작해야하는데 한달에 얼마 받을지도 알지 못한다.
방송작가는 그렇게 시작했다. 글을 써도 매달 다달이 따박따박 돈을 받을 수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