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8시간 일한다. 점심시간까지 포함하면 직장에 9시간 있는다. 내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야근을 하지 않고 정시 퇴근을 하는 직장은 심지어 거의 드물어 보인다. 정시 퇴근은 당연하기보다 요즘은 복지로 여겨질 정도다. 나 또한 세 번의 직장 중 두 직장에서 잦은 야근을 경험했다.
돈을 잠시 내려놓고 하루 네 시간만 일해 보기로 했다. 직장을 다닐 때 하루 네 시간이나 주 4일만 일하는 삶을 꿈꿔왔다. 4시간은 8시간의 절반인 셈이니 엄청 파격적인 생활 패턴인 셈이다.
나는 현재 정규직으로 주 5일 하루 4시간만 일한다. 확실히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다. 노동 시간, 노동량을 줄임으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도 함께 줄일 수 있었고 물리적 비중이 줄어들다 보니 일의 의미도 간소화되었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남는 시간엔 그동안 매번 미루어왔던 일을 시작했다. 그런 일들은 회사에 다니느라 뭐 하느냐 3-5년째 미루었던 일들도 있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생산적인 것이든 비생산적인 것이든 관계없었다.
아직 몇 달 지나지 않아 섣불리 판단을 하기엔 어렵지만 현재까지는 삶에 만족하고 풍요로움을 느낀다. 솔직히 언제까지 이 감정이 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삶은 실험 중에 있고 적어도 앞으론 이 실험을 계속할 의향이 있다는 것. 일에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어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실제로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가득 보내니 피곤해도 기분이 좋고, 다른 것에 아쉬움이 줄어들었다. 예쁜 옷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고 관계로 인한 허하고 외로운 마음도 줄어들었다. 하고 싶은 것들로 여전히 빼곡히 바쁘더라도 노동할 때와는 다른 여유가 있는지, 타인에게도 조금 더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 좋다.
친구의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전 같으면 신중하게 답하기 위해 퇴근할 때까지 미루거나 업무 도중에 분주한 마음으로 연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잠시 내가 하던 일을 중단하고 그의 마음을 살피고 상황을 상상해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적절한 단어를 골라 진심을 담아 걱정과 위로의 말을 건넸다. 친구는 위로와 응원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했다. 마음이 늘 항상 백 퍼센트 온전히 다하지 않더라도 다른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내가 그에게 좀 더 가득 힘을 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마음의 여유가 갑자기 확 늘어나거나 마냥 행복한 건 아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불안정하기에 늘 신경 쓰고 걱정할 일이 많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여유를 확보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집중해 본다. 또 다른 중요한 것을 내려놓고 가져온 것이기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것은 관계이거나, 자아나 이상이거나.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서 다시금 삶을 정비하려 한다. 가족에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해주고 싶은 것 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친구의 생일이라면 내가 무리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좋다.